[이상호의 경제서평] 사회민주주의 눈으로 본 시장경제


■ 제 3의 길과 그 비판자들
(앤서니 기든스 지음/박찬욱 외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 )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고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등장한 것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내 놓은 '제 3의 길'이 그것이다. IMF 관리 체제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화의 산물이라는 분석과 함께 국민의 정부가 국정의 기본 철학으로 제시한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는 제 3의 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가 '제 3의 길'을 주창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에 동조하면서 국내에서도 제 3의 길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지식인 사회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일단 좌도 우도 아니라는 용어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어떠한 주의나 주장이 영향력이 크면 그에 대한 비판도 크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제 3의 길에 대한 비판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제기됐다. 좌파와 우파의 특성을 교묘히 절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3의 길'이 출간된 지 2년 후에 나온 이 책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이다. '제 3의 길'에 대한 우파의 비판은 이 이념이 여전히 복지 국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 되는 명분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종전의 좌파 정책과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좌파는 제 3의 길이 선거를 위한 전략적 대응이라고 평가한다. 무정형한 정치적 기획이고 확실히 규명하기 어려우며 방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의 한 형태로 전락하고 있으며, 특히 전 세계적 시장과 관련한 신자유주의의 기본적 틀을 수용하고 있어 시장이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말고는 특유한 경제정책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제 3의 길을 '가면을 쓴 신자유주의'에 불과하고, 블레어 총리는 '가방을 든 대처'와 비슷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항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저자가 신경 쓰는 것은 우파의 비판이 아니라 이 같은 좌파의 지적이다.

저자는 제 3의 길이 단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적당히 절충해 중간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화와 지식 경제의 부상,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사회구조와 생태 환경 및 일상 생활에서의 중대한 변화 등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 성장과 사회 정의, 개인과 공동체, 시장과 국가를 조화시키는 실용주의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시장의 경우, 제 3의 길도 이를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상승효과를 추구하고, 공익을 고려하기 위해 일정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신 혼합경제 입장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 정의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5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화를 한낱 주어진 개념으로 보는 제 3의 길은 소득과 부, 권력의 불평등에 대항하지 못한다는 미국과 유럽에서 제기된 비판을 소개한 후, 그렇지만 제 3의 길이 불평등과 기업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책임 없이 권리 없다'와 '가능한 곳이면 어디든 인적 자원에 투자하라'는 기본 명제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계약의 구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화와 지식 경제에 대해 단순하게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이것들은 많은 잠재적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방어적 태도보다는 적극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비판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비판과의 화해다.

옮긴 이는 제 3의 길에 대한 논의가 '사회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진보의 열망을 저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가다듬는 뜻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이 다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는 이유다. 다만 여러 사람이 나누어 번역을 해 다소 읽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흠이다.

이상호의 경제서평

입력시간 2002/11/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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