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패트롤] "주가 그래프에 인생이 담겼어요"

주식 투자 강의서를 낸 팔방미인 고승덕 변호사

고승덕(45) 변호사의 사무실 창가에는 ‘삼관위민(三冠爲民)’이라는 커다란 휘호가 걸려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그가 3대 고시(외무고시,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직접 써준 글귀이다. 하지만, 휘호 옆에서의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그는 극구 사양했다. 쑥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경와우 TV에서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제목을 ‘천재 고 변호사의 증권고시패스’라고 붙였을 때도 천재라는 명칭은 빼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방송사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선지 결국 천재라는 이름을 붙이더군요. 너무 부끄럽다구요. 거기다가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아직도 변호사를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땐 정말 섭섭합니다.”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선 여전히 그를 천재나 팔방 미인으로 믿고 있다. 3대 고시를 석권한 수재, 승승장구하는 변호사라는 기존의 이미지 옆에 코미디 프로 출연자,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 정치 지망생, 예능 프로의 패널 등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그러한 과정에서 다소간의 혼란을 겪었다.

“그간의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한번도 남의 시선을 의식해 본 적도 없고요. 마음이 가는 대로 제가 하고싶은 것은 반드시 해봐야해요. 대신 선택한 일이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금방 잊고 낙천적으로 생각하죠.”


리얼타임에서 효과적 매매전략 제시

그런 그가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자신의 강의를 바탕으로 주식 관련 서적을 출판한 것이다. <고변호사의 주식강의 1, 2, 3>이 바로 그 책. 분석원리, 실전기법, 선물 옵션 등을 담은 이 시리즈는 고 변호사 만의 독특한 주식 기법을 담아내 많은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의 투자 기법은 바로 주가 지수 그래프를 이용한 파동 원리. 지수가 올라가면서 장이 활발해지면 그래프의 고점과 저점이 높아지고 그 반대의 경우는 고점과 저점이 낮아진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파동 원리 분석법으로 종합주가지수 차트, 나스닥 차트를 분석하고 일봉 차트, 월봉 차트, 1시간봉 차트, 30분봉 차트, 5분봉 차트, 1분봉 차트 등 모든 주가 차트와 거래량 그리고 보조지표를 분석하고, 실시간으로 주가 추세 분석과 매매 신호 포착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그의 주장은 주가 700선 붕괴와 연이은 폭락장을 예견하면서 많은 투자자들과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기존의 주식 분석 책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쓰여진 이론들을 바탕으로 한 것들입니다. 지금은 HTS(Home Trading System)로 몇분안에 사고 파는 게 가능한데, 엘리어트 파동이라든지, 일봉 분석 같은 것을 이론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남들은 미사일과 탱크를 몰고 전쟁을 하는 데, 조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뻐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파동원리는 30분봉과 5분봉을 이용해 리얼타임에서 효과적인 매매 전략을 짜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주식에 대해 남다른 애착과 흥미를 가진 것은 1993년 우리나라 최초로 상장 법인 부실감사로 인한 주주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를 거두면서부터였다.

“당시 소송을 진행하면서 주식에 대한 공부를 어느 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술적 분석에 관하여 공부하게 된 계기는 99년 상반기에 제가 직접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당시 저는 증권사 직원에게 삼성전자 주식을 사달라고 돈을 맡겼는데, 알고 보니 제 돈이 저도 모르게 작전 세력의 이른바 설거지에 이용됐더라구요.”

설거지란 작전 세력이 작전주를 고점에서 털 때, 그 물량을 개미가 맡긴 돈으로 사서 받아주는 것을 말하는 증권가 은어. 그의 돈이 설거지에 사용된 시점은 정확히 최고점이었고, 그는 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운이 나쁜 것처럼 둘러대는 증권사 직원을 보고 고 변호사는 심한 분노를 느꼈다.

“모든 주식이 오르던 99년 하반기에 다들 돈을 벌었다고 야단인데 나만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증권사 직원의 부정을 알고 소송을 하게 되면서 시중에 나온 모든 주식책을 탐독했죠. 그래서 직원의 행위에 고의성 내지 중대 과실이 인정되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습니다. 그러자 그 쪽에서도 꼼짝을 못하더군요.”


개미투자자 입장, 체험 반영

결국 그 사건은 적당히 합의하고 말았지만 고 변호사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특히 자신처럼 법을 아는 사람도 그렇게 당할 수 있는데 일반 개미 투자자들은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 후 그는 본격적으로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수백만 개미 투자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돕기 위해 자신 역시 개미 투자자가 되어 산 체험을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주식 시장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대항해 그만의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그는 주식 시장의 약점을 알면서 조금씩 수익을 얻기 시작했다. 그에겐 일종의 손해 배상금인 셈이다. 또한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자신의 파동원리를 공감하고 함께 투자를 의논할 수 있는 웹사이트 개미들 닷컴(www.gamiddle.com)도 열었다.

현재 회원은 모두 9,000명. 이들과 함께 고 변호사는 개미들이 즐거울 수 있는 새로운 주식 시장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이제까지의 시장을 단계별로 나눈다면 1단계는 작전 세력이 활개를 칩니다. 2단계는 외국인들이 들어와 장을 주도하면서 또 하나의 작전 세력으로 변질되는 거죠. 3단계는 개미들이 나름대로 힘을 모으면서 개별 종목 장세를 시작합니다.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많은 덕을 봤었구요. 하지만 이제 시장은 4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흐름을 알고 시장보다 강한 종목을 타고 가는 안목을 지닌 투자자들이 장을 주도하는 시대죠. 전 그 투자자들을 위해 파동원리 분석법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또 다른 파동원리는 인생도 주식 그래프와 같다는 것. 예를 들어 30분봉은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승을 예감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순간의 매도로 5분봉이 흔들리는 것에 동요되어 자신이 가진 물량을 던지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처럼 인생도 그런 잔물결에 흔들려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그의 인생관이 몇 년 전 그가 겪었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슬쩍 물었다.

“사실 그 때 겪었던 일들에 상처를 입고 자포자기했다면 오늘날의 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힘든 건 ‘내 인생이라는 주가 그래프가 조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조정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내 인생의 주가는 급락하고 만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낙천적인 마음으로 이겨냈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 다시 제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앞으로 정치만은 절대 할 생각이 없다고 강하게 부언했다. 덧붙여 그는 자신이 책을 쓴 이유가 세간에서 들리는 몇몇 악의있는 소문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했다.

“(몇 년전 이혼한 뒤) 제가 혼자 살자 별의별 소문을 다 들었어요. 심지어는 차마 들을 수도 없는 악의에 찬 소문까지 들려서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보란 듯 책을 썼죠. 책 쓰는 데 바빠서 다른 일은 할 겨를도 없었다구요. 실제로 하루에 2, 3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느라 고시 공부할 때도 없던 허리 병이 다 생겼습니다.”

앞으로 그의 계획은 자신의 파동원리를 인생과 종교, 철학 등과 접목한 책을 쓰는 것. 올 연말쯤엔 자서전 형식의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인생 급락ㆍ급등 마음먹기에 달려

“얼마 전에 주식 투자 강의를 하면서 투자자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주식 투자로 수백 억, 수십 억 번 분들은 하향곡선만을 겪다가 와신상담하면서 박스권 횡보를 거듭하다가 급등세를 탄 것이라고. 여러분도 지금은 박스권 횡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선 급락도 급등도 할 수 있다구요. 모두들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가 친필 사인을 해 준 책을 받았다. 그의 사인 옆에는 N자가 덧붙여져 있었다. 고 변호사는 그것이 주가의 급상승을 나타내는 N자형 그래프처럼, 인생도 급상승하길 바라는 뜻에서라고 말했다.

오유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11/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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