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벨소리ㆍ통화연결음 ‘개성시대’

“제~발 부탁이예요. 밤엔 부디 혼자 있게 해 주세요~.”

한밤중에 난데 없이 여자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니 전화를 잘못 걸었나?”라며 다시 전화 다이얼을 눌러도 ‘뚜뚜’하는 통화 대기음 대신에 여성의 간드러진 목소리만이 흘러나온다. 처음 전화를 건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되지만, 이내 수화기 저편에서 상대방이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으면 의문은 사라진다.

그런가 하면 요즘 ‘징글벨’이나 ‘루돌프 사슴코’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때이른 ‘캐롤’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거는 사람 재미있고, 받는 사람 폼 나는’ 핸드폰 벨소리ㆍ통화대기음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휴대폰 가입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선 이즈음 휴대폰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을 최신 유행 음악이나 엽기 멘트로 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여 개의 벨소리ㆍ통화대기음이 쏟아져 나온다. 자연히 업체들의 ‘관심 끌기 아이디어’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벨소리는 개성의 창구

‘휴대폰 벨소리를 들으면 유행이 보인다.’

요즘 휴대폰 벨소리에서 인기가 높은 곡은 국민드라마로 떠오른 ‘야인시대’의 엔딩곡 등 관련 OST다.

011ㆍ017 단말기에 벨소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트(www.nate.com)의 ‘마이벨’에 의하면 ‘야인시대’ 엔딩곡은 약 1만5,000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올 가을 최대 흥행작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김정은이 노래한 ‘나 항상 그대를’과 얼마 전 드라마 ‘내사랑 팥쥐’에 삽입되면서 큰 호응을 얻은 장나라의 신곡들도 벨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1월 들어서는 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양한 캐롤 음악이 벨소리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징글벨’과 ‘루돌프 사슴코’ 등의 귀에 익은 캐롤은 물론 머라이어캐리의 ‘all want for X-mas’ 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반영한 노래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반응을 타고 캐롤을 ‘나이트클럽’ 버전으로 바꾼 ‘캐롤 나이트메들리’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이정현의 신곡 ‘아리아리’, 채리필터의 ‘낭만 고양이’, 싸이의 ‘챔피언’ 등의 ‘최신 가요’도 한창 뜨고 있다.

남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신세대들에게 휴대폰 벨소리는 단지 전화가 왔다는 신호음이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창구’ 역할을 한다. 때문에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최신 유행 패션을 갈아입듯이 핸드폰의 벨소리를 바꾼다.

휴대폰 전문 월간지 이 15~19살 청소년 6,144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6.3%가 휴대폰을 사자마자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으로 ‘최신 벨소리를 내려 받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따라 똑 같은 벨소리를 싫어 하는 신세대들을 위해 벨소리를 자신의 취향대로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신규 서비스도 잇따라 나왔다.

인포허브(www.wowcoin.com), 야호커뮤니케이션(www.yahohpia.com), 다날(www.danal.co.kr) 등 벨소리 업체들은 최근 ‘나만의 소리’를 편집할 수 있는 서비스를 앞 다퉈 내놓았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노래의 장르와 악기, 리듬 등을 마음대로 바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을 완성할 수 있고, 작곡 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신이 직접 노래를 작곡해 자신만의 벨소리로 만들 수 있다.

또 40화음 단말기가 나오면서 단순히 벨소리는 차별화의 단계를 넘어, 음악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악기 반주와 가수의 노래 소리까지 원음 그대로 구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벨소리 교체 주기도 더욱 빨라졌다.

지난해 이미 500억원까지 성장한 벨소리 시장은 올해 1,000억원 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 번 다운로드 받는데 인터넷은 곡당 250~350원, ARS는 30초당 100원 정도의 요금을 내는 것으로 계산해볼 때 엄청난 숫자가 벨소리를 수시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야호커뮤니케이션 허성욱 전략기획팀 과장은 “벨소리를 다운 받는 사람들은 보통 한 달에 2, 3회 꼴로 벨소리를 바꾼다. 많게는 한 달에 40번까지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며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심리와 맞물려, 뭔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색다른 재미 전해주는 통화대기음

벨소리 서비스가 전화기 소유자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컬러링은 전화를 거는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서비스다. 전화 연결을 기다리는 단 몇 초간이지만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통화대기음 서비스는 휴대폰 기종에 관계 없이 원음을 그대로 들을 수 있고, 원하는 멘트를 벨소리보다 긴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때문에 벨소리에서는 좀처럼 표현하기 힘든 엽기발랄한 목소리 멘트 등이 자주 사용된다.

아기목소리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전화 받으러 오고 있어요~”라든가 “산다는 게 뭘까! 이번 겨울이 가면 나도 벌써 7살이 되는데…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을까?” 등의 통화대기음이 요즘 인기 있는 목소리 멘트. 성우 버전은 이젠 ‘고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간대별로 달리 설정을 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늦은 저녁에 전화를 걸면 대뜸 “누가 이렇게 밤에 전화를 하냐?”고 꾸지람을 주기도 한다.

‘‘최신 가요’와 ‘드라마ㆍ영화 음악’은 벨소리와 마찬가지로 최신 유행을 이끌고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과 겨울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음악이 벌써부터 큰 인기다. 다날 윤선영 부장은 “전화를 거는 이들에게 듣기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지는 크리스마스 음악을 선물해볼 것”을 권유한다.

통화대기음은 올 3월 SK텔레콤이 첫 선을 보인 이래 이동통신의 새로운 부가서비스로 ‘대박’을 터트렸다. ‘컬러링’이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반년도 채 안돼 2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모집했다. 이어 LG텔레콤은 7월부터 ‘필링’이라는 이름으로, 10월에는 KTF가 ‘링투유’ 브랜드로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월정액 900원을 내야 한다. 또 새로운 연결음을 내려 받을 때마다 700~1,200원의 정보이용료를 추가로 부담하게 돼, 매달 보통 2,900~3,300원의 요금을 부담하게 된다.




톡톡튀는 통화대기 멘트

- (아기 목소리로) 기다려~기다려, 기다려…너랑 통화 안 하고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우리 제발 그냥 통화하게 해주세요./ 통화료 2% 부족할 때

- (아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이 전화 주인공은 내 남자 친구랍니다. 참 멋있는 남자에요. 여자를 위할 줄도 알구요. 바로 우리~ 아빠에요./ 내 남자 친구에요(삼성카드 버전)

- 자아~ 전화가 왔어요. 받으면 기분 좋고 희소식만 가지고 오는 전화가 왔어요. 애들은 가라 가. 애들은 가고 꿔간 돈 갚으려는 사람, 나 좋다고 전화한 사람, 밥 한끼 사준다고 나오라는 사람은 절대 끊지 마시고…뭐 뜯어먹을 거 없나 하고 전화한 사람은 팍팍 끊어주세요.…/ 리어커맨, 전화가 왔어(계란장수 버전)

- 니, 내한테 반했나. 이리 와 봐라. 딱 걸렸어. 뽀뽀해줄까. 쪼옥~. 니 앞으로도 내한테 반해야 된대이. / 니 내한테 반했나( 개그콘서트 ‘따귀소녀’ 버전)

- (날아라 태권TV 음악이 깔리며) 안녕하십니까. 저희 주인님께서는 09시에 지구로 날아오는 운석을 막으시고…12시에는 안드로메다 지구 침략군에 맞서 싸우시고… 20시에는 원더우먼 슈퍼맨 호빵맨 등과 ‘슈퍼용사’ 친목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 지구를 구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못 받으시는 모양이니 지구를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음성 남기시길 바랍니다/ 무지 바쁜 긴또깡



휴대폰 액세서리·케이스도 개성만점

대학생 김혜은(21)씨는 틈만 나면 동대문 패션 상가나 명동 거리에서 핸드폰 액세서리를 수집한다. 오리, 악어, 강아지, 토끼, 돼지 등 깜찍한 ‘동물 인형’ 케이스 등이 그녀가 주로 구입하는 대상이다. “핸드폰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예쁘게 치장할 수 있어 1석 2조”라는 게 그녀의 얘기다.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는 김태환(31)씨는 얼마 전 갖고 다니는 휴대폰보다 두 배는 큰 크기의 하트 모양 핸드폰 줄을 구입했다. 김씨는 “사내자식답지 못하다고 놀림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애인과 함께 ‘커플용’으로 쓰기 위해 두 개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최근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포근한 느낌을 주는 ‘핸드폰 케이스’ 등 휴대폰 관련 액세서리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핸드폰 액세서리는 손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운 ‘동물’ 모양 케이스. 그 중에서도 ‘오리’와 ‘강아지’ 모양 케이스가 특히 인기 있다. 가격은 보통 6,000원~1만원 대. 빨강 파랑 노랑 검정 등 다양한 색상의 인조가죽 케이스는 남성들이 즐겨 구입한다.

핸드폰 크기에 따라 소형 중형 대형 등 갖가지 사이즈가 구비되어 있다. 가격은 8,000원. 이밖에도 향기가 나는 제품이나, 휴대폰 뚜껑을 열지 않고도 액정을 볼 수 있도록 ‘액정용 덮개’가 별도로 부착된 케이스 등이 등장했다.

휴대폰 줄은 종류가 더욱 다양하다. 미키마우스, 토토로, 엽기 토끼 등 만화주인공 캐릭터에서부터 참이슬 ‘술병’, 말보로 ‘담배’형 장식품, ‘부자 되세요’라는 의미의 ‘돈’ 모양 제품까지 일일이 종류를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강아지가 물고 있는 ‘뼈다귀’나 머리 부분에 줄을 달아 잡아당기면, 덜덜 소리를 내면서 위로 말려 올라가는 일명 ‘덜덜이’라 불리는 핸드폰 줄이 신세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보통 개당 3,000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

서울 명동 밀레오레 액세서리전문점 ‘GO.ZIP’을 운영하는 김원영씨는 “개성과 자기 연출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따라 남자들도 커다란 인형 액세서리를 거리낌 없이 구입해 휴대 전화에 달고 다닌다”며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서 포근한 느낌을 주는 핸드폰 케이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름에 비해 매출이 2배 이상 올라간 상태”라고 전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1/21 15:18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