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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정치판, 더 웃기는 비틀기

선거운동 빗댄 가상 정치소설, '이눔아~네가 대통령감이냐?'

“이죽창 후보가 일단은 약간 앞선 느낌이 드는군요. 여러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약 노문현 후보나 정몽축 후보가 단일화한다면 상황은 예측하기가 힘들게 되겠죠.” 잘 나가는 정치 평론가가 대선을 한 달 남겨둔 현재의 정치판 상황을 풀어 헤친 듯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소설 속에 나온 백범 김구의 것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헨리홍 어학원’ 원장 헨리홍(54ㆍ한국명 홍현희)씨가 대선을 앞두고 시사 풍자 장편 소설 ‘이눔아~, 네가 대통령감이냐?’를 펴냈다. 그가 특히 존경하고 한국인에게 친숙한 옛 어른 13명을 현재로 불러내 대선 정국을 논하는 가상 소설이다(LMC 코리아 펴냄).


한국의 선현 13명 입 열다

구한말의 지사 김옥균, 독립투사 김구, 월북 작가인 벽초 홍명희 등 구한말과 해방공간을 뜨겁게 산 사람들이 먼저 눈에 띈다.

또 조선시대 정치 개혁을 부르짖었던 정암 조광조,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매천 황헌, 석파 이하응 등 선비나 대정치인들이 뒤를 잇는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등 한국 성리학의 거유(巨儒)가 빠질 수 없다. 돋보이는 것은 사임당 신씨와 황진이가 조선의 여성계를 대표해 등장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까지 어우러진 가상 정치 소설인 셈이다.

대선이 한달 남았다. 이회창 후보의 약진에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뚜렷한 쟁점과 후보간 정책 대결 없이 정치 세력의 이합집산으로 캠페인은 변질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의 단일화 줄다리기,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결성 등 의원들의 잇단 이합집산 바람에 국민의 시야는 흐려져 간다.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 연합 등 2000년 총선에서 낙선ㆍ낙천 운동을 벌였던 시민 운동 진영은 11월 14일 ‘2002 대선 유권자 연대’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은 구태가 고개를 쳐드는 데 대한 국민적 반발을 반영한 것이다. 시민 단체들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적 검증을 내세웠다면 홍씨는 가상 소설로 운을 맞춘 셈이다.

오늘날 한국 땅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을 심판대에 끌어낸 뒤 선현들의 입을 빌어 준열한 비판을 가하는 이 책은 한발짝 떨어져 현실을 보게 하는 기능도 한다. 이죽창, 노문현, 정몽축 등으로 세 후보의 이름을 약간 비틀었지만 그들의 경력, 버릇, 최근 행적 등이 소설의 형태를 빌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이번 대선의 결정적 변수로 든 것은 노문현-정몽축 후보의 단일화 여부, 남북 관계의 변화, 군소후보들의 이합집산, 김대중 기피군의 추이 등이다. 이처럼 책은 현재 대선 정국을 겨냥하고 씌어졌지만, 리더십의 문제를 논하는 장면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예를 들어 동시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퇴계 이황이 “IMF 극복과 남북회담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단과 뒷거래 때문에 의미가 퇴색했다”며 국가의 틀과 도덕성의 기반을 지키고 굳건하게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을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당부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정치에 대한 염증 고스란히 담아

홍씨가 이 소설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8월 말.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당을 만들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구태가 재현될 게 빤히 보였죠. 웃기는 일 아닙니까?” 어려서부터 임금 수업을 받은 사람을 왕으로 추대한 과거 우리의 전통이 그의 뇌리에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의 상징이고 얼굴인 훌륭한 대통령은 어디 있을까를 생각하고 써 내려 갔죠.”

이 소설은 그의 생각만으로 짜여진 것은 아니다. “한창 원고를 쓰고 있던 10월에는 학원에 영어를 배우러 온 초등학생들한테 어떤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이끌게 됐으면 좋을까 물어봤죠.” 그랬더니 아이들 대답은 세 가지 방향으로 귀결됐다.

첫째가 정직한 대통령, 둘째가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셋째가 시험 덜 보게 하는 대통령이었다. 성인 학생들의 대답은 남 헐뜯지 않는 사람으로 집약됐다. 기성 정치판에 대한 염증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가 주저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박정희의 여자가 100명?’이란 제하의 내용이다. 1998년 모 의원이 한 여성지에 넘긴 사생활 관련 자료에 나오는 설이다. 이 이야기를 그는 뉴욕서 살던 시절 모 신문 편집국장에게서 들었다.

이밖에 그동안 항간에 떠돌던 유언비어성 유머도 간간이 삽입해 재미를 더 한다. 머리를 집어 넣으면 지능지수를 알려 주는 컴퓨터에 C대통령이 그렇게 했더니 컴퓨터가 “돌은 집어 넣지 말라”고 했다는 등 지난 시절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었을 정치적 객담도 군데군데 나와 있다. 머리가 나빴던 탓에 그렇게 지독한 독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DJ가 추락하는 데 대해 그는 “용현(用賢) 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말했다. 참모진이나 측근을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선인들이 DJ의 독선을 걱정하는 것으로 은유돼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혼자 판단 결정하는 일이지요. IMF 극복과 남북 정상회담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를 통해 이뤘다는 것 때문에 의미가 퇴색했습니다.” 책은 이번 대선은 참된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을 가려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설 중 황진이가 지은 ‘대통령’이란 삼행시는 정객들에 대한 일침이다. “대통령 해보겠다 이놈 저놈 날뛰기에/통일 소원 이루겠다 맹세하라 하였더니/영영 자신없다 머리 숙여 가더라”.


“후보들 재조명해보고 싶었다”

저자는 서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헐뜯는 꼴만은 이제 사라졌으면 한다. 난강이라는 이름의 선비로 등장하는 저자 홍씨는 이 책에서 “대통령을 마치고 난 뒤에 더욱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인물을 정녕 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언필칭 천기누설이라며 유명 역술인들의 ‘대권 천기누설’담이 스포츠지를 장식하는 때다. 무객이다, 검객이다, 서생이다, 그들이 제각각 내뱉는 알 듯 말 듯한 소리에 어지러운 건 국민이다. 홍씨는 “일부 철새 대통령 후보들에게 실망해 온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존경하는 선현들의 관점을 빌어 후보들의 장단점을 새롭게 조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때맞춰 나온 그의 가상 소설은 이 때 선인들의 목소리를 빌어 하나의 관점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비즈니스 영어’, ‘미국인도 울고 간 영어’ 등 12권의 영어 회화 관련 도서는 물론, ‘파도의 꽃’, ‘마지막 왕자의 첫 사랑’ 등 중ㆍ단편 소설집을 발표한 저자의 입담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홍씨는 1997년 독창적인 영어 발음 한글 표기법을 당시 문공부에 등록, 저작권 인가를 받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문학과 창작’ 12월 호부터 순종의 아들 의친왕의 파란 많은 삶을 그린 ‘마지막 왕자의 첫사랑’을 연재한다.

지금 저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각 선거 캠프로부터 “작전에 좋은 참고가 됐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11/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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