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낙엽송

소나무, 잣나무, 젓나무들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침엽수는 바늘 같은 뾰족한 잎을 가진 나무들로 모두 상록수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침엽수라고 하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상록성인 늘 푸른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잎갈나무나 낙우송 또는 낙엽송이 예외가 되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잎갈나무는 침엽수이지만 가을이면 물들고 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이다. 그래서 이름도 잎을 같다 하여 잎갈나무 또는 이깔나무라고 부르며 낙우송은 깃털처럼 잎이 떨어지는 소나무 종류이며, 낙엽송 역시 말 그대로 낙엽이 지는 소나무의 일종이다.

그냥 잎갈나무는 매우 친근한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 보기 어려운, 북한이 고향인 나무이다. 금강산 이북에서 자라고 백두산에 가면 그 울창한 원시림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한데 남쪽에서는 어디서도 자생하지 않는다. 대신 남쪽에서는 목재를 쓰기 위해 많이 심었던 일본잎갈나무가 아주 흔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가 바로 낙엽송이다.

낙엽송은 늘씬한 키에, 봄이면 새순이 연두빛으로 돋아난다. 여름엔 서늘한 초록빛 잎새가 되고 가을이면 너무도 멋진 황토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낙엽마저 다 떨구고 드러난 나무의 섬세한 가지의 모습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실 낙엽송을 많이 심었던 이유는 빨리 곧게 자라므로 예전에 철도침목이나 전봇대를 나무로 하던 시절에는 꽤 쓰임새가 있었다. 한때는 나무젓가락의 주 재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산에 이 나무를 심기를 권장하기도 했는데 나무 키우는 품은 비싸고 수입하는 목재는 싼 요즈음에는 낙엽송이 빨리 자란 탓에 조직은 물러 고급 목재로 쓸 수 없으니 이제는 목재로써는 영 대접을 못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낙엽송도 할말은 많다. 지금 사람들은 숲이 온통 부르니 예전 생각을 못하지만 산천이 온통 붉은 황폐지였던 시절, 낙엽송이 빨리 자라 숲을 이루고 산림을 푸르게 한 공로를 잊고 탓을 한다면 낙엽송은 우리에게 정말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그 숲의 때깔이 너무도 멋진 탓에 보고 느끼며 더불어 거니는 숲으로 다시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앞에서 말한 더없이 멋진 색깔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높디 높게 줄기를 뻗고 이와는 수평이 되도록 옆으로 길게 혹은 다소 아래로 쳐지도록 내는 가지의 미려함은 더 할 나위가 없다.

또 봄에 피는 병아리색처럼 고운 연노랑의 수꽃과 작은 암꽃,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작은 바늘잎이 마치 별빛처럼 사방으로 모여 달리는 모습, 때가 되면 비산하듯 흩어지는 낙엽, 귀여운 솔방울… 정말 사랑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잎깔나무와 함께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나무의 송진은 상처가 났을 때 고약으로 이용되었고 어린 눈으로 차를 끓여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한방에서는 잎을 다른 약재와 함께 임질, 통경, 치통 등에 처방해 썼다는 기록도 있다. 수피에서 염색 재료와 탄닌을 채취하기도 한다.

모르겠다. 낙엽송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고 일본잎깔나무를 왜 우리나무에서 소개하냐고 반문을 할지도. 낙엽송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이 1904년이라고 하니 이 나무가 이미 한 세기 가까이 이 땅에 살면서 곳곳에 숲을 만들어 그 많은 사람들에게 모습으로 혹은 색깔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이 길목을 사색의 오솔길로 인도했으니 넉넉한 마음으로 넓은 의미의 우리나무로 거두어 주는 일도 그리 탓 할 일은 아닐 듯 싶다. 낙엽송을 제대로 느끼기에 지금이 좋은 계절이다.

입력시간 2002/11/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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