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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신중현과 조지 벤슨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지난 글에서 올 가을에는 도통 문화적인 즐거움을 못 누리며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주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스산한 계절에 음악의 거장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앨범 ‘body and feel’을 들었고 천재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내한공연을 관람했으니 이 이상의 호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인생은 새옹지마여서 다음 주부터 악몽 같은 일상이 되풀이된다고 해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만 같다.

먼저 신중현의 앨범부터 살펴보자. “잇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노란 레인코트에∼”로 시작하는 ‘빗속의 여인’, 한국 록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미인’, 블루스의 풍취가 흠씬 배어나는 ‘석양’ 등에 이르기까지 신중현이 지난 50년 동안 발표했던 명곡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베스트앨범이거나 편집앨범은 아니다. 탁월한 기타리스트인 둘째 아들 신윤철과 함께 자신의 스튜디오 우드스탁에서 라이브로 녹음했다. 몸과 느낌을 강조하고 있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이 발표한 노래들을 통해서 현재 그의 몸이 느끼고 있는 감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신중현이라는 인간의 존재가 진하게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앙상블도 참으로 절묘하지만, 음악을 듣는 동안 필자를 소름끼치게 했던 것은 신중현의 목소리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신중현은 결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아니다.

노래방의 감각에서 보자면 음치의 발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음성은 샤우팅(터트리듯이 내는 발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몸의 안쪽을 향하면서 터지는 소리가 마치 신음처럼 겨우겨우 비집고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일렉트릭 사운드를 바탕으로 하는 록밴드의 연주를 염두에 둘 때, 신음소리와 같은 그의 보컬은 가히 부조화의 극치라 할만하다. 하지만 놀라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그의 목소리는 큰 소리를 내는 악기와 대결하지도 않고 그로부터 억압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악기들이 채워 넣을 수 없는 그 어떤 지점들을 타고 흐르며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느낌들을 곡 전체에 흩뿌려놓는다. 어쩌면 신중현의 앨범에서 귀곡성(鬼哭聲)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세출의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은 전형적인 흑인 할아버지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뚱뚱한 상반신과 상대적으로 날씬해 보이는 하반신의 몸매였지만, 가끔씩 선보이는 웨이브(흐르는 물을 연상시키는 몸 동작)는 예순이 다 된 노인네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유연했고 자연스러웠다.

입장과 동시에 바로 연주에 들어갔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공연이 2시간 남짓 계속되었다. ‘lately’, ‘tenderly’ ‘This Masquerade’ 등과 같은 친숙한 곡들이 완벽한 앙상블 속에서 연주되면서 박수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모든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는 괴력(?)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가 펼치는 안정적이면서도 화려한 연주는, 초절정 고수만이 가질 수 있는 유연한 카리스마의 분출 그 자체였다. 기타연주를 보다 많이 들을 수 있도록 레퍼토리가 짜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예정에도 없이 선물처럼 주어졌던 공연 관람이어서 즐거움은 더 컸다.

재즈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조지 벤슨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재즈의 거장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쌓았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정통 재즈보다는 R&B 팝 스타일의 곡들을 통해서 지나치게 대중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 같다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면서 조금씩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지 벤슨이 소울, 펑크, 락, 리듬앤블루스 등의 영역을 넘나든 것은 재즈의 경계를 유연하게 설정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갱신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재즈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서라도, 영혼의 자유로움을 표현한다는 재즈 본연의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인접양식들과의 대화와 소통이 요청될 수밖에 없었겠다는 느낌이 몸을 통해서 내밀하게 전달되었던 것이리라.

날이 차다. 인생과 문화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 두 거장의 건강을 멀리서나마 기원해 본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tan@empal.com

입력시간 2002/11/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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