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여주 신륵사

여강을 품고 여주의 역사를 지켜 본 아름다운 절집

조선 중기의 학자 김수온은 <신륵사기>에 “여주는 국도의 상류에 있다”고 썼다. 여기서 국도란 한강을 이르는 말이다. 육로보다 수로가 발달했던 시절, 부피가 큰 산물은 모두 뱃길을 이용해 한양으로 갔다.

여주는 사람들이 여강이라 불리던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해 있어 뱃길의 중심지 구실을 했으니 국도의 상류가 맞다. 경복궁을 지을 때 썼던 대들보도, 내륙지방에서 나는 산물도, 나라님께 진상하던 여주ㆍ이천 쌀도 모두 뱃길을 이용해 한양으로 옮겨졌다.

조선시대 4대 나루 중에 두 곳인 이포나루와 조포나루가 여주 땅에 있었던 것만 보아도 뱃길을 이용한 상업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974년 팔당댐이 생기면서 물길이 끊겨 여주는 더 이상 국도의 상류가 아닌, 그저 남한강 가의 작은 도시로 남게 됐다.

여강의 한 기슭에 자리해 여주의 역사와 함께 한 절이 신륵사다. 급하게 흐르던 남한강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휘어져 도는, 여주군 북내면 청송리에 위치한 신륵사는 여느 절과는 사뭇 다른 냄새를 풍긴다. 수많은 절들이 산자락에 기대어 있는 것과는 달리 강변에 세워졌다는 게 이채롭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에 밀려 속세를 등지고 대부분의 절들이 산 속으로 은둔한 반면에 유독 이 절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창을 거듭해 큰절이 되었다.

신륵사는 또한 절에서 바라보는 여강과 주변의 풍광이 기막히게 좋다는 것도 이채롭다. 여강과 접한 바위벼랑에 세워진 농월정에 올라보면 장중하게 굽이진 물줄기와 깎아지른 절벽이 절묘하게 어울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한 연유로 조선시대 여주 땅에 기거하던 세도가들이 다른 곳도 아닌 신륵사 농월정에서 풍류를 즐겼고, 염불소리가 울려 퍼져야 할 절에 풍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절의 운명치고는 참으로 기구하다 하겠다.

신륵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한 사료는 전하지 않는다. 절 이름을 신륵이라 지은 데는 몇 가지 연기설화가 있다. 미륵(彌勒)이, 또는 나옹화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이 그 중 하나이고, 고려 고종 때 강 건너 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나타나 행패를 부렸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온순해져 신력(神力)으로 제압했다 하여 신륵사(神勒寺)라 이름 지었다 한다.

신륵사는 또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 불렸다. 벽절이란 이름은 농월정 가는 길에 있는,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에서 유래했다.

신륵사가 그 이름을 드날리게 된 데에는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화상의 공이 지대하다. 나옹화상은 1396년 5월에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그가 입적할 때 온갖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오색구름이 산마루를 덮쳐왔고, 구름도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그의 몸에선 수많은 사리가 나왔고, 또한 용이 나타나 통곡을 했다. 나옹이 입적한 뒤 신륵사는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게 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대장각기비(230호), 보제존자석종(228호), 보제존자석종비(229호),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231호), 다층전탑(226호), 다층석탑(225호) 등이 모두 나옹화상과 관련이 있다. 되짚어보면 결국 나옹화상이 신륵사에 생명을 부여한 것이나 진배없다.

신륵사는 조포나루터 자리에 휑뎅그렁하게 서 있는 일주문의 볼썽 사나운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만 절은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짜임새가 있다. 게다가 보물을 일곱 점이나 품고 있어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신륵사를 벽절로 불리게 한 다층전탑이다. 높이가 10m 쯤의 이 탑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벽돌로 만든 완성된 탑이다.

다층전탑 외에도 관심 있게 볼 것이 많다. 대웅보전 앞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다층석탑에 새겨진 용과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에 새겨진 피리 부는 여인상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조각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소 왜소하기는 하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아한 모습의 조사당(보물 180호),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으로 나옹화상의 사리를 모셨던 보제존자석종비의 짜임새 있는 구도와 안정감, 진정한 예술품은 보는 이의 지적 능력과 관계없이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말없이 보여준다.

신륵사는 벌건 대낮보다 동틀 무렵, 여강이 붉은 보랏빛으로 물드는 저녁나절에 찾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강 너머로 석양이 질 무렵 농월정에 올라보면 행세 깨나 했던 세도가들이 하고많은 정자나 유곽을 제쳐두고 유독 신륵사에서 풍월을 즐겼는지를 알 수 있다.


  • 길라잡이
  • 여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영동고속도로 여주IC로 나와 여주읍내를 거치는 길과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로 나와 3번 국도와 42번 국도를 이용, 이천을 경유해 여주읍으로 드는 길이 있다.

    여주읍내에서 남한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우회전하면 신륵사다. 신륵사를 찾는 길에 용대리에 있는 세종대왕릉과 능현리에서 있는 명성왕후 생가도 둘러보면 여정이 알차다.

    여주의 이름난 먹거리는 대신면 천서리의 막국수다. 메밀을 주원료로 쓰고 있는 천서리 막국수는 매운 양념을 가미한 것이 특징으로 시원한 국물과 톡 쏘는 매운 맛이 입맛을 자극한다. 막국수와 함께 기름기를 뺀 담백한 편육을 곁들이면 상차림이 푸짐하다.

    천서리막국수(031-883-9799)는 막국수 4,000원, 편육 7,000원이다. 신륵사 관광지구내에 있는 용궁식당(031-885-2436)은 민물매운탕을 잘 한다. 4인 기준 4~6만원.

    입력시간 2002/11/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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