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이 한의학 산책] 불면증

한 겨울 긴긴 밤에 잠 못 이루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할 것이다. 불면증은 자는데 30분 이상 걸리거나 하룻밤에 자다 깨다 하는 일이 5번을 넘으며 새벽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일주일에 2, 3회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불면증이 몇 주 이상 이어질 경우 습관성이 될 위험이 있고 수개월 이상인 경우 만성불면증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과중한 업무와 복잡한 생활양식으로 수면부족에 시달리기 쉽다. 장기간에 걸친 수면부족은 신체리듬을 파괴하여 무기력증, 기억력 및 집중력의 감소, 의욕상실, 지구력 약화, 정서불안 등을 초래하고, 여성 생리 주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고통은 몹시 괴롭다. 고열, 통증을 동반하는 질병을 앓거나, 심장이 약하고 기력이 부족하거나, 신경이 약하고 과민한 사람들은 흔히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수면시간은 개인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가장 바람직한 수면시간은 6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아침에 개운한 기분으로 쉽게 깬다면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것으로 봐도 된다. 수면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것도 괜찮다. 낮에 잠간씩 조는 것은 좋지만 오후 3시 이후의 낮잠은 밤잠을 설치게 하므로 피해야 한다. 잠을 잘 때의 실내온도는 섭씨 18~23도가 적당하다.

수면 시간이 6시간 이상이라고 해서 다 좋은 수면은 아니다. 낮에 6시간 자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 인체는 자연계의 시계에 따라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 밤이라야 진정한 잠을 이룰 수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12시를 기준으로 생활해 왔다. 자축인묘로 시작되는 12지지(地支)를 각 시간 마다 배치했는데, 자시(子時)는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말하며 축시(丑時)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를 말한다.

각 시간마다 주관하는 경락(經絡)이 있는데, 인시(寅時)에는 폐(肺)가 주로 활동하며, 묘시(卯時)에는 대장(大腸)이 활동한다. 그래서 아침 5시에서 7시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대변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진시(辰時)에는 위장이 활동하고, 밤이 되어 해시(亥時)가 되면 삼초(三焦)가 활동하고, 자시(子時)가 되면 담(膽)이 활동하며 축시(丑時)가 되면 간(肝)이 활동하게 된다. 간(肝)의 역할 중에 장혈(藏血), 즉 피를 저장하는 과정이 있는데 잠을 잠으로써 이 과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이 곧 피 부족을 초래하게 되어 눈이 나빠지고 자궁이 나빠지고 혈색을 안 좋게 만든다.

뉴욕의 수면연구소는 수면부족이 극도의 무기력과 불안, 초조, 업무능률 저하 등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일본 후생성은 수면과 일의 능률에 대해 지속적인 시간외 근무로 수면시간을 단축시키면 일의 능률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만성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유발시켜 건강을 잃고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불면을 초래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잠에 대한 강박관념, 담배, 술, 잘못된 자세수면, 수면 무호흡증, 천식, 소화성 궤양, 편두통, 불안, 우울증 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이외에도 밤에 간식을 즐기는 것도 또한 깊은 수면을 방해한다.

위장은 밤에 쉬어야 하는데 음식물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커피나 차, 콜라 등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식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최근 컴퓨터에 몰두하다가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이 습관화되어 불면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쉽게 잠들지 못할 경우 한잔의 술이 도움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숙면을 이루지 못하게 하므로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매일 저녁 목욕을 하거나 단순한 리듬의 음악을 듣거나 독서, 명상 등을 통해 긴장을 푸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의 지나친 운동은 신경을 흥분시킨다. 잠을 못 자는 것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책을 읽는다든가 하여 잠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는 것도 치료의 한 방편이다. 무엇보다도 불면증이 있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권하고 싶다.

특히 한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여러 가지 다른 장기의 허실(虛實)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경섭 강남경희한방병원장

입력시간 2002/11/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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