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DMZ 환상에 칼끝을 들이대다


■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
(함광복 지음/ Eastward 펴냄)

‘비무장지대(DMZ)가 자연생태계의 보고라고!’

쓴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다. 강원도민일보의 함광복 논설위원이다.

DMZ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민족의 허리를 잘랐던 DMZ가 남북을 잇는 가교로 화려하게 변신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에 DMZ는 생태계의 낙원처럼 그려지고 있다.

함 위원의 DMZ 기행문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를 읽노라면 DMZ에 대한 이런 어설픈 상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함 위원은 DMZ 전문기자로 불린다. 1978년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후 그는 DMZ를 천착했고 DMZ 만으로 한국기자상을 두 차례 받았다. DMZ에 관한 학술세미나나 각종 언론보도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그의 눈에 비친 DMZ는 이렇다. “사실 그곳은 야생동물에게조차 결코 평화스러운 곳이 아니다. 산불은 그들의 서식처를 불태워 버렸고, 가랑잎 속에 몸을 감춘 발목지뢰, 나뭇가지에 매달린 부비 트랩도 먹이를 찾아 나서는 그들을 기다렸다…그곳은 평화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이상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까지 가공해 놓은 곳이다.”

그는 증오와 저주가 가득찬 DMZ를 평화와 생명운동의 장(場)으로 환치하려 한다. 그가 DMZ를 마치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파악하려는 시각을 경계하는 것은 이 같은 편협한 해석이 오히려 DMZ의 제자리 찾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책 제목 ‘할아버지, 연어…’는 일제시대 징용으로 끌려가 지금도 쿠릴열도 파라무셔 섬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노인 ‘킴씨’ 야기를 통해 DMZ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97년 DMZ 내 남강에 회귀성 어류인 연어를 방류할 것을 제안해 현재의 ‘연어사랑 시민모임’이 태동했다.

DMZ에 묻혀 있는 냉전의 유적들도 발굴된다. 가장 고약한 유적은 지뢰다. 저자는 지뢰를 ‘지능을 갖춘 고등생물’이라고 해석한다. 한번 입력된 명령은 죽어도 지키고야 마는 생명체이며 자신의 머리를 밟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죽지 못하는 생명인자가 입력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비열한 생명체를 죽이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 관용 같은 ‘지뢰백신’이 필요하다”며 지뢰를 캐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나무를 평화나무라고 명명해 보자고 제안한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11/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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