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희비쌍곡선 한국정치

혹 전화가 오지 않을까 조바심을 낸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만은 밖에 나가지 말고 언제 울릴지도 모를 전화를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지금쯤 그리고 아마 앞으로 하루 이틀쯤 노무현과 정몽준 후보간의 후보단일화 여론조사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글이 활자로 나갈 무렵, 후보 단일화 문제는 결판이 나 있을 것이다. 승리한 후보가 누구일까? 패배한 후보는 승복할 것인가? 아니면 ‘역선택’ 조항 때문에 결국 후보가 가려지지 않아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해당 후보자에게도 그리고 유권자에게도 여론조사로 후보를 단일화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막판에 몰려 더 이상 단일화의 수단이 없기 때문에 선택된 수단이기는 하지만, 한판의 여론조사에 의해 그 승패가 갈리는 이 방식은 사실 도박에 가깝다.

그러나 더 이상 시간도,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그 모든 당사자는 불가피하게 이 한판의 도박에 운명을 걸기로 한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아마 정당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했던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황당하다고 할까, 아니면 기상천외라 할까? 다른 정치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오직 한국정치에서만 가능할 그러한 일이 지금 한국정치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2002년 대선과 이후 한국정치의 미래는 도박과 같은 이 한판의 여론조사에 의존하게 되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일까? 정당정치가 발전한 선진국 정치의 경우, 그 정치란 사회의 균열을 반영하는 한편 사회의 요구와 지지를 대변하는 정당들의 경쟁으로 전개된다.

그런 만큼 사회적 기반에 의존치 않는 정당정치란 존재하기 어렵다. 뜬구름과 같이 선거 때마다 그 모습이 변화되는 한국정치와는 달리, 그들에게 있어 정당정치의 뿌리 위에서 일관성 있게 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위로부터 정치인들의 경쟁과 대립 구도가 만들어지면 사회의 유권자들은 그 구도에 따라 구획되고 갈라진다. 이를테면 지역주의 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이에 따라 전국의 유권자들은 구획되고 갈라졌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치에서, 특히 대통령 선거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후보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는가의 문제이다. 대통령 후보간의 경쟁 구도가 짜여지면 이에 따라 정당과 유권자들이 이에 따라 재편되고 구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만은 유독 대선 후보의 경쟁 구도가 유동적이다. 그것은 한나라당 후보는 이회창으로 일찍 확정되고 굳어졌지만, 민주당 후보는 국민경선을 통해 노무현 후보로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스스로가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 밖에서 정몽준 후보의 부상은 민주당의 이러한 분열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그 결과 민주당 안팍에서 만들어졌던 이 같은 유동적 상황은 결국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의 해결책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 시도는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 후퇴를 의미한다. 정당정치가 제대로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한국정치는 대통령선거 시마다 이합집산을 면치 못할 것이며 철새 정치인을 양산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라는 웃지 못할 사태를 다시 초래할지도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서 현실적으로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정상적인 정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희극적인,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너무나 비극적인 이러한 에피소드를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ㆍ 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11/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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