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세대 역사 속으로

'한강의 기적' 몸소 실천했던 아날로그 경영인들

최근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로 재계에는 1세대 경영시대의 별들이 하나씩 지고 있다. 창업 세대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잇달아 일으켜 세우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창업세대 들은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쌀가게와 자동차 수리점(현대), 정미소와 설탕판매(삼성), 포목점과 치약(LG), 직물장사(SK) 등 작은 점포에서 시작해 대그룹을 이뤘다.

196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건설 중공업 전자 자동차 무역 운송 식품 화학 에너지 등 국내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일으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산 증인들이었던 창업세대는 대부분 별세했다.

지난해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작고한 것을 비롯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LG그룹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선친)은 69년에 각각 타계했다.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형 종건 회장(73년 작고)의 뒤를 이어 창업 1.5세대로 SK그룹을 이끌다 98년 별세했다. LG그룹 공동창업자인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도 올 7월 유명을 달리했다. 현대차ㆍ금호ㆍ한화ㆍ효성ㆍ대림 등은 2세대가 총수를 맡고 있고 3세대 경영이 이뤄지는 곳도 두산ㆍ코오롱ㆍ동국제강 등이 있다.


창업신화는 남 달랐다

창업세대들은 맨주먹으로 창업해 거대 기업을 일군 성공신화로 꼽힌다. 그런 만큼 뚝심과 추진력을 경영의 근본으로 삼았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74년 울산조선소 건설을 시작함과 동시에 배도 건조하는 등 세계 조선업계에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거북선이 새겨진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만으로 그리스에서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구인회 LG 창업주는 1947년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 비누 치약 샴푸 등의 생필품을 만들며 국내 화학공업의 기반을 닦았다.

58년 전자쪽으로 눈을 돌려 금성사를 세운 구 회장은 라디오 선풍기 세탁기 냉장고 흑백TV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하는 등 강력한 추진력으로 전자산업을 선도했다.


미래를 보는 비전이 뛰어났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제일제당 제일합섬 삼성전자 등 당대의 유망한 업종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궜다.

특히 80년대에는 일본 미국 기업들의 비웃음을 사면서도 반도체 산업에 투신, 삼성전자를 D램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다. 73년 선경 창업자이자 형인 고 최종건 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자리를 물려받은 최종현 SK 회장은 ‘석유에서 섬유까지’ 일관 생산체계를 구축하는데 앞장섰다.

80년 대한석유공사 민영화 과정에서 쟁쟁한 재벌을 제치고 인수에 성공했고 84년에는 한국이동통신마저 인수, 그룹을 재계 3위로 이끌었다. 창업 세대들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산업보국(産業報國)의 일념으로 경영에 전념했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경제와 한국기업들이 살아날 길은 수출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재계 1세대 중 아직 경영 일선에서 뛰는 총수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꼽힌다.

1942년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46년 히카리 특수화학 연구소를 인수해 제조한 ‘껌’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그룹의 토대를 닦았다.

국내에도 롯데를 세운 신 회장은 롯데칠성음료ㆍ호텔롯데ㆍ롯데쇼핑ㆍ롯데월드 등을 잇따라 설립, 식품ㆍ유통분야의 국내 최고기업을 만들어냈다. 신 회장은 요즘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준기 동부 회장도 아직 건재한 창업세대다. 삼척산업을 경영하던 선친 김진만 회장과는 별도로 69년 미륭건설을 창립했다. 김 회장은 이후 동부그룹을 금융ㆍ건설ㆍ철강 등 22개사 매출액 7조원 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김 회장은 최근 아남산업을 인수해 반도체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신규사업에 골몰하고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12/02 15:45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