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의원 맏딸 이명주씨 '이인제 의원님~' 출간

'정치인 마누라'보다 '여성 정치인' 이 더 좋아

“성공하면 대박이고 아니면 완전히 실패야. 아빠의 본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욕만 먹고 구설수에 휘말리다 끝나는 거야.”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맏딸 이명주(23ㆍ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씨가 아버지와 가족에 관한 얘기들을 담은 원고를 들고 처음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들은 말이다. 그래도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원고를 남겨두고 돌아섰다.

이 원고가 ‘이인제 의원님, 우리 아빠 맞아’라는 제목의 예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온 지 2주. ‘명주씨’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람들이 거의 그렇겠지요. 정치인의 가족은 뭔가 특별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아빠와 저를 비교적 잘 안다고 하시는 분들도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죠.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분들이 격려와 칭찬을 보내주세요. 정치인 가족도 별 다를 게 없구나 하시면서, 아빠와 딸이 이렇게 다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그러시네요.”

그녀는 덧붙여 책에서 “너무 착한 딸인 척 한 거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늘 바깥일로 바쁜 아빠 엄마를 대신해 궂은 집안살림을 도맡아 해내는 ‘가정부’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이인제 의원이 대전지법 판사와 변호사를 할 때 명주씨 가족은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정계에 입문한 뒤로 부러움은 질시로 바뀌었다. 자연히 이 의원과 가족들을 왜곡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버지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었던 시간들이다. 때문에 착한 딸은 “누가 아빠더러 정치하랬냐”라며 “아빠가 정치하니까 가족들이 다 힘든 게 아니냐”고 대들기도 했다.

책을 쓴 동기도 이러한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를 벗기는데 중점을 뒀다. “세인들이 말하는 아빠와 진짜 나의 아빠 이인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말하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선거 때만 들고 일어나는 엄마에 대한 낭설도 변명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아빠는 뽀뽀쟁이 로맨티스트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이 의원은 사랑스런 개구쟁이(?)다. 착한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틈만 나면 안고 뒹굴며 뽀뽀를 하는 괴롭힘으로 표현하는 정(情)이 많은 가장이다.

또한 누구보다 소박하고 인간적 사람이다. 딸이 해주는 비빔국수 한 그릇에 바깥일에서 오는 시름을 풀어내며 환한 미소를 짓고, 결혼 기념일엔 사랑의 징표로 꽃과 아내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들고 오는 로맨틱한 면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명주씨는 원인을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선거 과정에서 찾는다.

“상대방 후보와 경쟁하면서 본 모습이 왜곡되게 전해지는 것 같아요. 상대방을 깎아내리려고 하다보니 트집을 잡아내 유포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정적인(negative) 전략이 몹시 싫었지만, 이제는 이도 하나의 전략이다고 인정한다. “이러한 편견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도 정치인의 몫”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숙해졌다.

이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경기도지사를 하실 때였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는데 아빠가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안절부절 하시더군요. 낮에는 공무원들과 같이 재해현장을 방문하셔서 피해대책 마련에 부심하시면서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서도 잠시도 눈을 못 붙이시고 걱정을 하셨지요. ‘비가 이제 좀 그쳤으면…’ 하시면서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만 찾을 것 같은 이 의원을 명주씨는 누구보다 ‘어진 지도자’라고 옹호한다.

정치인에게 부인은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다. 반대로 부인은 가정보다 나라에 더 큰 관심을 둔 남편을 위해 끝없이 인내하고 희생해야 한다. 명주씨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자리가 바로 이 ‘정치인 마누라’다.

어머니 김은숙씨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다.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인데 정치인 부인이라는 이유로 욕을 먹어요. 엄마 나름대로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아빠의 뒤에서 묵묵히 고생만 하시잖아요.”


미래의 ‘여성 정치인’으로 능력 쌓고싶어

대학교 졸업반인 명주씨는 앞으로 공부를 좀 더 할 생각이다. 정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다. 여성 정치인에 뜻을 두고 있냐고 물었더니 “정치는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 의원의 가르침 때문이다.

“정치는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능력을 쌓은 다음에 그 능력을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하는 것이래요. 물론 국민들이 저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조건에서요. 그래서 전 우선 그런 능력을 쌓기 위해 노력해볼 작정이에요.”

‘여성 정치인’을 외조할 멋진 남성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자 명주씨는 “안 그래도 남자 친구 없는데, 기사 나가면 더 안 생길 것 같다”며 웃는다.

대학시절을 마무리하며 못 내 아쉬운 점은 ‘연애’ 한 번 못 해본 것이란다. 연애는 제쳐두고 흔한 미팅 한 번 못 나가봤다. “친구들이 부담스럽다고 끼워주지도 않지만, 제가 나갈 자신도 없었어요. 저 별로 안 예쁘잖아요.(웃음)”

명주씨는 재치 있고 똑똑했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듯 했다. 당돌하리 만큼 당찬 면도 있었다. “이인제 의원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이 의원에 대한 지지와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아빠의 딸로서 보다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며 “많은 분들이 아빠에게 기대를 거는 이상 맏딸인 나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기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2/02 17:21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