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음이 빚어낸 아름다운 이웃사랑

사랑의 재활용품 매장 '아름다운 가게' 1호점

“오늘은 어떤 값진 물건들이 들어왔을까?”

오전 10시 20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www.beautifulstore.org). 문을 열기까지 10분이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가게 앞에는 20여 명의 고객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뚝 떨어지는 기온에도 아랑곳 없이 닫혀진 매장 유리창 너머로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는 모습들이 진지하다.

주부 김미형(59ㆍ서울 도봉구 방학동)씨는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와 9시부터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일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손수건 한 장 못 사고 그냥 돌아갔다”며 “필요한 물건도 사고 이웃도 도울 수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매장에 들어갔어도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구입할 수는 없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3개 이상은 판매할 수 없다”는 가게의 원칙 때문이다. 이로 인해 “물건을 더 사게 해달라”고 조르는 고객과 “팔 수 없다”고 맞서는 점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애물단지에 새 생명이

일반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얼마나 대단한 명품이길래’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다름아닌 ‘재활용품’이다.

“더 이상 쓰지 않아 골치 아픈 ‘애물단지’로 전락한 물건들도 아름다운 가게에 오면 새 생명을 얻은 듯 빛을 발합니다.”

사랑의 재활용품점 ‘아름다운 가게’는 10월 17일 문을 열었다. 개점 당시에는 “중고물품가게가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겠어?”하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6평 남짓한 아름다운 가게는 연일 물품을 기증하려는 사람들과 구입하려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개점 후 본격적인 판매가 이루어진 10월 18일 하루 동안에만 무려 1,20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이후에도 매일 500~600명의 고객들이 찾아온다.

가게의 인기 비결은 중고 물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새 것처럼 손질해 싼 값에 판매하는 것이다. 헌 옷이나 책, 가방, 신발, 주방용품, 가전제품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들이 모두 대상이 된다.

의류는 1,000~1만원, 보온밥솥이나 전기 프라이팬 등 주방용품은 3,000원~8,000원, 인형과 장난감은 작은 게 500원, 큰 게 보통 2,000원 선에 판매된다. 대학생인 김선희(20)씨는 “중고 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들렸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며 “앞으로 자주 찾아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곳의 손님들은 싼 값에 물건만 구입하러 오는 게 아니다. 주부 홍미례(40ㆍ서울 성북구 정릉동) 씨는 “집에 쌓아두고 있는 물건이 많다”며 “어느 수준의 물건을 기증해야 하는지 둘러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값진 땀방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름다운 가게를 돕는 이들도 많다. 매장 근처 사무실 건물 1층에 있는 ‘창고’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와 상근 간사들은 기증품을 분류하고 수선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

이 가게의 기획홍보국 한정혜 씨는 “창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빨간 고무장갑이 필수품”이라며 “험한 일을 하다 보면 허기를 심하게 느껴 여자 자원봉사자도 점심 때 밥 두 세 공기를 뚝딱 비우곤 한다”고 전했다. 또 세탁물을 1회 400~500벌씩 수거해 무료로 세탁해주는 ‘크린토피아’와 물건 택배를 맡아주는 ‘대한통운’ 등 기업체들의 온정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가게가 진짜 아름다운 이유는 “재활용을 통해 물건의 소중함을 배우고 이웃과 서로 돕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기증 받아 판매되는 수익금은 모두 불우이웃과 공익사업을 위해 쓰여진다.

아름다운 가게는 앞으로 매장 한 켠에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 등도 마련할 계획이다. 점장인 이혜옥(47)씨는 “물건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넉넉한 이웃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생활문화공간으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장 운영시간은 오전 10시 30분~오후 8시이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다. 아름다운 가게에 물건을 기증하려면 02-3676-1004로 전화하면 된다.


아름다운 자원봉사자

“물건만 사지 말고 아끼던 물품을 선뜻 내놓은 기증자들의 사랑을 느껴보세요.”

‘아름다운 가게’의 자원봉사자로 개점 첫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해온 우명옥(65) 씨는 “마음이 고운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현장이 너무 좋다”면서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루종일 서서 판매하다 보면 오후에는 다리도 붓고 몸도 무거워지기 마련. 하지만 이웃들의 따뜻한 정이 느껴져 마음은 어느 ㎈릿?가볍다고 한다. “진짜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라고 가게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중ㆍ고등학교 교사로 30년간 재직했던 우씨는 4년 전 정년 퇴직을 한 뒤 동네 복지관 등지에서 꾸준히 자원봉사 활동을 펴왔다. “젊어서 나 개인을 위해 살았으니, 사회생활을 끝낸 말년에는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틀에 한 번 꼴로 매장을 찾는 일산 능곡의 한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방문할 때마다 양손 가득 기증할 물건이 든 보따리를 들고 오는 고객이다. “물건을 주시는 것도 고맙지만,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며 오시는 정성에 더욱 감동을 받았어요.”

깨끗하게 손질돼 거의 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가죽 코트 등 겨울용 의류와 클래식에서 가요에 이르는 각종 음악CD, 도서 등이 그녀가 대표적으로 소개하는 아름다운 가게의 인기 상품이다. 특히 옷을 고르는 손님에게는 “몸에 잘 맞는다” “이 옷보다 저 옷이 어울린다”는 등 조언이 필수적.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기요~”하고 점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쏜살같이 달려간다.

앞치마를 두르고 굽이 낮은 단화를 신은 모습이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정겹다. 가만히 서 있어도 힘들 텐데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을 떠는 모습에 힘들지 않느냐고 했더니 “운동도 되고 좋지요”하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나이 들어 집에서 그냥 쉬면 뭐하겠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가게에 나오고 싶어요.”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2/02 17:44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