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불견 정치판에 돌을 던지는 심정"

'투표함 닷컴' 이상석 대표, 투표참여 'VOTE 티셔츠 입기' 캠페인

“투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면 ‘꿈’은 이미 이루어진 겁니다.”

벤처기업 ‘투표함닷컴’의 이상석(31) 대표는 최근 기표 도장 무늬를 한 ‘O’자와 투표하는 손 모양의 ‘E’자 디자인이 인상적인 투표하자는 뜻의 ‘VOTE!’ 티셔츠를 고안해 내놓았다. 이씨는 “16대 대선을 앞두고 갑갑한 현실에 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모험을 감행했다”고 밝힌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VOTE! 티셔츠 입기’ 운동. 다소 엉뚱해보일 수 있는 이 캠페인성 사업은 지난 여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Be the Reds’ 셔츠 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월드컵 4강 진출이 확정되던 날에 친구들과 함께 자축 술자리를 가졌어요. 그 자리에서 ‘축구로 전 국민이 하나된 이 벅찬 감동을 어떻게 하면 이후의 암담한 정치현실 속에서도 이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논의가 일었죠.”


‘Be the Reds’셔츠에서 착안

치열한 고민 끝에 이씨와 친구들은 ‘붉은 악마 티셔츠’ 붐에 착안, 투표참여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는 캠페인을 시도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캠페인 뿐 아니라 사업으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창업에 들어갔다.

9월말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사무실을 임대해 사원 5명이 자금지원과 생산관리, 홍보와 사이트 운영 등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뛰고 있다. 한 친구는 결혼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뒀던 적금까지 털어 내놓았다.

디자인은 ‘Be the Reds’ 셔츠를 만들었던 박영철(40)씨가 맡아서 도안을 해줬다.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죠. 저희 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이틀 밤을 꼬박 새가면서 작업해 준 거예요.”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한 사업이 자칫 특정 정당의 홍보용으로 전락할까 하는 우려로 셔츠 색깔과 홍보 문안을 고르는데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이나 노무현 후보를 연상시키는 노락색 등은 일찌감치 디자인 단계에서 배제했다. 중앙선관위에도 여러 차례 문의해 선거법 저촉여부를 확인했다.

“반응은 어떠냐”는 질문에 이씨는 “생각만큼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일단 옷을 구입하신 분들은 디자인이 너무 예쁘고 옷이 따뜻해서 좋다고 만족해 求?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프로그래머 출신이어서 사업 경험이 없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다. 옷감을 선택하고 공장에 맡기는 모든 과정이 낯설다. 더욱 큰 문제는 판매처 확보와 영업. 티셔츠의 가격을 품질에 비해서 저렴하게 책정한 탓에 ‘마진율’이 적어 웬만한 상점에서 판매하길 꺼린다고 한다.

“‘좋은 일’의 차원에서 시작했으니까 옷을 더 잘 만들고 저렴하게 판매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요.” 때문에 ‘VOTE!’ 티셔츠는 현재 ‘투표함닷컴’(www.letsgovote.com)의 사이트에서만 판매한다.

사이트에는 티셔츠 구입 방법 외에도 선거 관련 각종 통계와 자료가 올라와 있다. 각 후보들의 사이트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배너를 마련했다.


공약사항 이행여부도 감시할 것

“선거에 동참하자는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투표는 뭐 하러 하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대할 때가 있어요. 정치인들의 추태를 보면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죠.

하지만 그럴수록 악착같이 선거에 참여하는 게 옳은 길인 것 같아요. 꼴불견인 정치 현실에 항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투표’ 아닌가요?”

그래서 ‘젊은 표심’을 잡기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수능시험을 막 끝낸 새내기 유권자가 투표 참가 선언을 하면 티셔츠를 무료로 준다.

일반인도 ‘VOTE!’ 티셔츠를 입고 찍은 예쁜 사진과 함께 선거 참여 선언을 하면 제주도 여행권, 디지털 카메라 등의 푸짐한 상품을 준다. 12월 대선이 가까워지면 가두 판매와 함께 보다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을 벌일 계획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투표함닷컴’은 계속 사업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씨는 “대선 후보로 내걸었던 공약 사항 이행 정도를 체크해 리포트할 예정”이라며 “투표율을 높이는 것과 사업의 적자를 모면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2/03 11:53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