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10대] 거침없는 납치, 살인…철없는 흉기들

기성세대 뺨치는 범죄행각, 대중매체 따라하기·가정불화 원인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어요.”

게임에 빠져 친동생의 생명을 뺏은 중학생 양모(15)군의 경찰 진술이다. 10대 청소년들이 대담해지고 있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 폭력이나 살인도 서슴지 않는 등 기성세대에 버금가는 잔인함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들이 살해한 시체와 한집안에서 사흘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한 청소년들이 경찰에 붙잡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선정적인 대중매체나 인터넷 유해 사이트들이 청소년들의 ‘따라하기’를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라고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살인도 인터넷 게임하듯

11월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1동. 서민들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주택가다. 낯 시간에는 행인들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한가로이 골목을 거니는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만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웃에서 혼숙 중이던 10대 남학생 2명이 여학생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웃간의 왕래가 부쩍 줄었다. 자녀들의 귀가 시간도 대폭 앞당겨지는 등 흉흉한 기운이 나돌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김모(52)씨는 “요즘 학생들이 모여있는 것만 봐도 겁이 난다”며 “어른인 제가 이 정도인데 어린 학생들은 오죽하겠냐”고 불안한 감정을 토로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학생들은 모 신인가수의 팬클럽 회원들이다. 11월 초 부산 콘서트장에서 처음 만나 안모(15)군의 자취방에서 혼숙을 시작했다. 살인 동기는 뚜렷하지 않다. 평소 거짓말을 일삼는 홍양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폭력을 휘둘렀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징적인 점은 사건 이후 보여준 학생들의 대담성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살인 이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체와 동거 생활을 했다.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심심하면 온라인 게임을 즐겼다는 것이다.

사건을 조사한 한 경찰 관계자는 “사람을 죽여놓고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아 적잖이 놀랐다”며 “심지어 현장 검증 때도 뉘우치기보다는 자기네들끼리 히죽거려 혼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담ㆍ잔인해지는 범죄유형

사실 요즘 10대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동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납치한 중학생의 사례는 10대들의 대담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얼마전에는 학원비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딸이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는 어이없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치정에 얽힌 살인극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경북 포항 북부경찰서는 최근 임신한 여자친구를 목졸라 숨지게 한 고교생 김모(17)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군은 임신한 여자친구가 낙태비를 요구하자 홧김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TV나 영화 등 선정적인 대중매체들이 청소년들의 ‘따라하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분석한다. 청소년들의 범죄 이면에는 조직폭력배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선정적인 화면을 내보인 영상 매체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관리계 조태준 경사는 “조폭 신드롬의 계보는 모래시계, 친구, 야인시대 등을 통해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며 “그러나 조폭에 대한 잘못된 시각으로 인해 청소년들 사이에 폭력에 대한 동경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초 학교 안에서 벌어진 교실 살인 사건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이 어떻게 까지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모(14)군은 평소 말이 없는 학생으로 학우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평소 급우들을 괴롭히는 친구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박군은 경찰에서 “영화 ‘친구’를 보고 살인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고 진술했다.

몇 달 전에는 경북 봉화의 고교생 김모(18)군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폭행의 원인은 아버지의 잔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은 벽에 걸려 있던 거울로 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친 뒤 다시 아궁이에 있던 불붙은 연탄을 아버지의 어깨에 퍼붓는 등 상식 이하의 폭력을 휘둘렀다. 알고 보니 김군도 영화를 보면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못한다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되면서 게임으로 인한 폐해도 잇따르고 있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얼마전 초등학생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양모(15)군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군의 범죄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서 비롯됐다.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싶어 범행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첫 번째 희생양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친동생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의 뇌 회로는 근본적으로 자제할 수 있는 기능이 부족하다. 때문에 잔혹 게임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광주 YMCA는 양군 사건 이후 광주지역 중고생 565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범죄 관련 설문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설문 응답자 중 32.8%가 인터넷 게임 등의 가상 체험을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김진세 원장은 심할 경우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원장은 “장기간 폭력 게임에 몰두할 경우 마음속에 내재된 공격성이 표출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며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당부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에서 풀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랑의교회 이찬수 디렉터는 “청소년 범죄가 매년 10만건 이상 발생하지만 대부분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화목한 가정이 청소년의 탈선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2002/12/0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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