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10대] '가출남녀'가 설 곳 많은 사회

인터넷 서핑으로 '방·일자리' 해결. "두려움 없다"

“5만원에 방 같이 쓰실 분 구해요. 여자면 더 좋구요.”

“집 나와서 돈 떨어진 분 L주유소에서 일자리 구한대요.”

올해 10월 가출한 인천 K중 3학년 정모(15)양. 집을 나서기 전 정양에게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된 자신의 방 컴퓨터로 몇 시간만에 가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정양은 “방문제가 가장 걱정됐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며 기뻐했다. 수백개의 ‘동거할 친구를 구한다’는 가출사이트 게시판을 참고해 휴대폰 번호로 연락해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방장’은 6만원을 제시했지만 5만원으로 깎고 부평에 있는 월세 20만원짜리 방에 입성했다. 그 방에는 이미 정양 또래의 4명의 ‘가출남녀’가 모여 있었다.

가출을 지속하기 위한 일자리도 가출방 ‘일자리 코너’에서 이미 확보했다. 게시판 공고에 소개된 주유소, 만화방, 음식점 등 3곳을 저울질하다 결국 돈을 가장 많이 주는 주유소로 낙찰, 전화로 연락해 바로 ‘구두계약’을 맺었다.


인터넷이 가출 길라잡이

인터넷 가출 사이트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가출 전에 방, 일자리, 친구 등 가출에 필요한 ‘3대 요소’를 인터넷 가출방을 통해 미리 확보해 안정적인(?) 가출생활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전처럼 가정문제 등으로 ‘욱’하는 심정에 일단 집을 나서고 보는 대책없는 가출학생은 줄고 ‘유비무환(有備無患)’식 가출행태가 보편화되고 있다. 다음, 프리챌 등 유명포털사이트에는 ‘가출정보’를 제공하는 커뮤니티가 수십개씩 개설돼 있다. 이들 사이트 검색창에 ‘가출’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많게는 100여개에 이르는 가출 관련 리스트가 뜬다.

‘X홈’이란 가출방은 회원수만 2,500여명에 이르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9,000여개를 넘는다. ‘동침할 분 모집’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17세 이상이구요, 적어도 돈 5만원이상 있어야되구요, 지금 남자여자 다 있어요”라는 구체적 조건까지 제시했다. 또한 노골적으로 같이 잠자리를 원한다는 원색적인 글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다른 커뮤니티인 ‘가출하자’에서는 2달 동안 850여명에 이르는 회원수를 확보하고 있었다. 개설자인 김모(16)씨는 인사말을 통해 “나는 초등학교만 마친 사람”이라며 “현재 더 큰 방으로 이사할 계획이니 연락해 달라”며 자신을 ‘가출 길라잡이’로 소개했다. 이 커뮤니티는 선배 가출자들이 ‘연락처’라는 메뉴를 따로 만들어 예비 가출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가출 여성 청소년이 성범죄의 주요 대상

가출방에는 청소년들만 회원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어른들이 회원으로 가입, 돈없고 일자리를 찾는 여성 가출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가출짱’이라는 가출방에는 다방에서 일할 사람을 모은다며 올라온 글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한달 수입은 최소 180(만원)이구요. 다방 일하면 술집일보단 덜 힘듭니다”라거나 “집 나오면 돈이 제일 걱정이죠. 저희 다방은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이고 믿을 수 있습니다”라며 여성 청소년을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 글은 애교 수준이다.

“룸 살롱에서 일할 분 급구, 월수입 500(만원) 보장”, “단란주점 영계 구합니다” 와 같은 직접적인 구인광고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여성 가출자들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성범죄의 주대상이 됐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여성 가출 청소년의 경우 지난달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조사결과 3명중 1명은 성폭행을 당했거나 성매매를 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성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다.

서울 YMCA 청소년 쉼터 박금혜(33) 실장은 “가출사이트로 인해 정보 공유가 늘어나면서 가출이 장기화, 만성화되고 이로 인한 성범죄 등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청소년들의 새로운 가출행태를 시급히 파악해 교육프로그램 정비 등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철원 기자

입력시간 2002/12/03 13:36


강철원 str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