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巨匠] 4ㆍ3의 소설가 현기영

삶의 편린에 실린 역사의 기록 '바다와 술잔'

“노소동락이지요. 한 번 마시면 끝을 보고 맙니다. 아마 알코올이 핏속에서 포화 상태가 됐을 겁니다.” 30대의 두 문학 후배에게 불려 가 집부근 호프집에서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신 11월 20일 밤 이야기를 하는 소설가 현기영(62)이 사람 좋은 웃음을 환하게 피어 올린다.

그리고 “문청(문학 청년)때부터의 고질병”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루전인 19일에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로부터 진짜 제주귤을 소포로 받은 터라 기분이 최고로 좋았던 터였다. 농약 기운을 쐬지 않아 껍질이 까칠한, 도시 사람은 볼 수 없는 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껍질은 말려 두었다 고뿔 걸리면 다려 먹을 거요.”

언제나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그가 소문난 두주불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현장의 ‘하드 코어’에 서 있다. 주변 사람들은 동료이면서 동지다. 영일이라곤 있을 리 없는 민족문학작가회의(민문작) 이사장 직책을 떠 맡아 오고 있는 것도 사람 좋아 하는 업보다.

그의 사귐은 깊고 오래다. 제주 오현고 10년 후배인 화가 강요배는 1987년 모 신문에 ‘바람 타는 섬’을 연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글에 옷을 입혀 오고 있다.

1999년 발표한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실천문학사)는 11월 5일로 14쇄를 찍었을 만큼 두터운 울림을 얻어 내고 있다. 130여편의 짤막짤막한 소설들은 4ㆍ3 사건, 한국전쟁 등 살을 에는 단장(斷腸)의 순간들이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 속에 용해돼 있다.

요컨대 이것은 현기영의 자전적 장편(掌篇)들이 모여 이뤄 낸 하나의 장편(長篇) 소설인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편린은 아무 생각 없이 하나 뽑아 내도 그렇듯 우리 민족 공통의 정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11월 11일 발행된 비슷한 부피의 책 ‘바다와 술잔’은 13년만에 펴내는 에세이집이다. 여기서는 모두 41편의 산문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소설적 윤색 없이 생생하게 투영된다. 자신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은 일과 사람에 치여 미처 돌아다 볼 틈 없었던 자신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이 책을 위해 강요배가 제주의 찬란한 풍광을 그린 유화들이 글과 어우러져 묘한 감흥을 준다. 1989년 첫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가 역사와 정치 등 거대 담론을 주제로 다뤘던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10년이면 변하는 것은 강산만이 아니다.


'글로 제주를 통째로 사버린 사람"

이순(耳順)에 이르니 역사와 삶의 무게에 치였던 젊은 날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지상에…’에서와 같은 일체의 노장이 문학적 빗장을 해제하고 펴 낸 모처럼의 산문집을 누구보다 동년배 문인들이 반긴다.

시인 신경림은 “서로 탁 터놓고 술도 마시고 떠들고 하면서 한 일주일 함께 여행 다녀 온 느낌”이라 했고, 소설가 박완서는 “글로써 제주도의 바다와 바위와 바람을 통째로 사 버린 사람”이라는 헌사로 한 잔 술을 대신했다.

그는 지금도 그 곶의 앞바다 속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벤자리, 북바리, 우럭, 볼락, 쥐치, 용치, 코생이 따위의 토종 물고기들과 놀던 젊은 때를 그린다.

“나이 들면 퇴영적으로 되는 법인가 보죠.” 요즘 그는 고향 생각을 많이 한다. 고향 집 부근 용두암 근처 해안이 꿈에 자주 등장한다. “젊을 때는 바다 위에 누워 있으면 동동 떴죠. 1㎞에 달하던 방파제를 따라 거뜬히 헤엄 치고 다녔어요.”

그러나 한 곳만은 까만 공허로 남아 있다. 그가 태어나 탯줄을 묻은 함박이굴 마을이 그것이다.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오직 검은 잿더미의 폐허로만 의식에 각인돼 있는 곳이었다. 역사가 ‘4ㆍ3 사건’이라고만 하고 묻어두고 싶어했던 사건이다.

정부는 ‘치안 유지에 입각한 정당 방위’라며 묻어 두고 싶어 했던 대규모 작전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개인적 삶은 민족이라는 커다란 톱니에 물려 간다. 호사한 관광객 행렬이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

“무고하게 죽었다고 신고된 사람만도 1만6,000여명이에요. 당시 치러졌다는 재판이란 게 최소한의 요식 행위도 갖춰지지 않은 불법적 즉결 재판이었죠.” 그는 ‘레드 헌트’라고 했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빨갱이로 날조하여 사냥했다는 것이다.

11월 20일 ‘제주 4ㆍ3 사건 진상 및 희생자 1,715명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4ㆍ3 특별법)’이 발효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겨우 첫 단추 하나를 풀었을 뿐이라는 반응이다. 1979년 그 엄청난 빨갱이 사냥에 대한 최초의 소설 ‘순이 삼촌’ 발간 이후 보름만에 보안사에 끌려가 사흘 밤낮 몽둥이 찜질당하고 유치장 신세까지 한달 져야 했던 그에게 현대사의 폭력은 육체에 고스란히 각인돼 있다.


의식 깊은곳에 각인된 4·3의 아픔

1981년의 4월 3일은 ‘4ㆍ3’이 현실, 비현실의 통로로 그를 엄습했다. 제주도 유학생들이 자택으로 몰려 와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느냐”며 행동을 요구하더니, 그날 밤에는 ‘순이 삼촌’까지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나타나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발을 빼려는 자신을 힐책하는 것이 아닌가.

‘4ㆍ3’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헌트’를 만든 인권운동가 서준식이 1998년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수면위로 부상하는 듯 했던 역사의 폭력은 현기영에게 영원한 현재형이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쓰는 것이 범죄라면 그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라고 했던 브레히트의 싯구는 영원한 화두죠.”

그에게도 시대는 영원한 화두다. 언제나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하고 살아 온 그에게 또 하나의 문제 의식이 싹틔운 사건은 한일 월드컵이었다. 그는 “붉은 악마들은 80년 6월 항쟁 당시 시청 앞에 모였던 군중과는 질적으로 판이했다”고 말했다.

80년을 규정지웠던 집단주의는 공동체 정신의 폄하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규정되는 현재다. 문학은 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이 시대, 월드컵 당시의 정체 모를 열기는 그렇다면 ‘공동체 연습’이었나?

지금 그는 포스트모던 사회를 관통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풍속도를 준비 중이다. 젊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자폐증과 간질을 앓다 3년만에 죽어 버린 아이를 가졌던 젊은 부부를 현재 한국 사회 한가운데로 관통시킨다.

라디오 PD인 부인은 아이의 죽음을 잊어버리기 위해 일에 미쳐 살고, 철학과 교수인 남편은 폐과 위기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총장은 그가 철학과 신설 강좌로 제출한 ‘서태지학 계획안’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안기부 출신의 국회의원이 ‘서태지학’에 ‘박정희학’을 접합시킨 제 3의 강좌를 부추긴다는 줄거리까지 와 있다.


자본주의 문명에 휘둘리는 현실에 '경고'

그는 “지금 한국의 풍습은 소돔과 고모라를 뺨치는 묵시록적 상황”이라며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가는 자본주의 문명에 휘둘려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에의 향수, ‘친구’ 등 조폭 영화의 인기가 바로 대중 속의 파시즘에 대한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들이 그 파시즘적 세계에 몰입하는 것은 ‘개인적 죽음의 두려움을 잊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도시 노인층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시골 사람들 조차도 이제 자연과 어두움을 두려워 하는 세상 아닌가요?” 현대와 탈현대, 자연과 문명, 인터넷을 통한 상품 소비 등 현재 한국이 그려내고 있는 회로도가 구상중인 소설인 셈이다.

지금 그의 노트에는 몇 가지 단서들이 거친 글씨로 메모돼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추억이 없는 세대이며, ‘헬로 키티’(팬시품)로 통일되고, 남의 시선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군집이다. TV에 나온 것은 모두 진실로 여긴다.

그는 “순환ㆍ반성ㆍ예측이 가능했던 전통 사회의 가치관이 과격하게 폐기된 채, 여전히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요즘 컴퓨터로 글을 쓴다. 3년 전에 냈던 ‘지상에…’가 볼펜으로 쓴 마지막 육필 원고다. 컴퓨터로 글쓰기는 약간의 변화를 불러 왔다. “모니터 화면에 집중하니 자꾸 눈이 아파와요. 그래서 컴퓨터로 쓰고부터는 긴 소설은 안 쓰고 에세이를 자주 서 신문에 발표하게 되더군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펜으로, 에세이류가 아니라 긴 글을 쓰고자 한다. “컴퓨터 글쓰기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데는 능하지만, 인간의 정서까지 담을 수는 없죠. 펜으로 쓰면서 줄을 긋고 지우는 맛도 있어야 하는 건데….” 서울대 영어교육과 2년 후배인 부인 양정자(58ㆍ교사)는 시인이기도 하다.

‘망할 년 망할 놈/남녀평등하게 싸운’ 남편의 분노 속에서 ‘제주 사나운 바다와 애사(哀史)’를 읽어내는 따뜻한 감성으로 술과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보듬고 있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11/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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