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안과 밖] 축구가 갖는 의미와 왜곡의 복잡성

한국·브라질 대표팀 경기, 노림수 있었나?

상호 작용하는 여러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구조나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물을 가리킬 때 ‘복잡성(complexity)’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 주위의 모든 현상은 이러한 복잡체계의 예이다. 이런 체계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는 지식과 도구가 복잡성 이론이다.

스포츠도 단순히 경기결과를 뛰어 넘은 복잡성을 가진 하나의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히틀러의 독일올림픽은 게르만민족과 나치즘의 선전장이었고, 1980년대 우리의 프로스포츠는 3S(Sports, Screen, Sex) 정책의 하나였다. 가깝게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은 미국의 ‘전국체전’으로 전락되었다. 이처럼 스포츠는 그 안에 의미의 왜곡과 확장을 가지고 있다.

그 뜨거웠던 2002 한ㆍ일월드컵이 마지막 불꽃을 태운 이번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경기를 ‘복잡성 이론’으로 들여다보자. 11월 20일 열렸던 이 경기는 대권경쟁과 시들해진 축구열기로 흥행이 걱정되었던 경기였다. 하지만 만원관중과 뜨거운 경기내용은 단숨에 걱정을 날려버렸다. 이게 또 스포츠가 가진 묘미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휘둘린 레드의 정체성

한ㆍ브라질전의 첫 번째 복잡성 현상은 레드(Red)의 ‘정체성’이다. 지난날 이처럼 레드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월드컵 기간은 그 동안 감추고 외면했던 팔레트의 레드컬러가 캔버스에 선명하게 칠해진 시간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그 그림과 색에 대해 평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레드는 밝고 건전하고 힘과 미래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책상머리의 이론이 아닌 움직임으로 보여준 유쾌한 반란이었다.

근데 지금 11월말 현재 그 레드는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홍보의 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뛰어들었던 기업들의 스폰서행렬은 온데 간데 없었다. 스포츠 그 자체의 뜨거운 열정을 사랑한다던 그들은 다른 정치논리로 애인을 걷어찬 것 같다.

붉은 악마는 어떤가. 여전히 상암을 붉게 물들인 그들이지만 ‘으뜸악마(회장)’의 사퇴사건은 안타깝다. 레드의 정체성과 붉은 악마의 의미를 찾고 이야기했지만 모든 게 엉터리였다는 증거다. 특정대권후보의 도구로 붉은 악마 회장을 이용하려 했다는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경기에서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 후보의 경기참석이 논란이었다. 미묘한 시점에서 하나의 선거운동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우리와 경기를 한 축구선진국 브라질의 경우를 보자.

8월 21일 브라질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브라질의 여당 대통령 후보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다 곤욕을 치렀다. 언론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서 비난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선 직전에 축구장에 나타난 그에게 국민들은 투표로 말했다. 결국 브라질의 여당 후보는 선거에서 패배했다. 단순히 축구선진국만은 아닌 브라질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번 한ㆍ브라질 경기는 다시 한번 지난 월드컵의 레드와 축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경기였다.

이번 경기의 두 번째 복잡성 현상은 김호곤과 자갈로의 1승이다. 한국과 브라질의 감독으로 맞붙은 두 감독이다. 둘 다 승리를 목표로 했던 건 당연하다. 그러나 둘에게 1승의 의미는 다르다. 자갈로 감독의 1승은 A매치 100승을 장식하며 공식적인 은퇴를 하는 영광스런 승리를 뜻한다. 반면에 김호곤 감독은 히딩크 이후 갑자기 업그레이드 된 한국축구의 흔들림 없는 수성과 발전을 향한 첫 승이다.

결과는 자갈로의 브라질이 3:2로 짜릿한 승리를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경기결과나 자갈로의 용병술이 아니다. 축구 선진국 브라질이 유지하고 있는 축구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대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냉정하고 살벌한 전쟁터다. 따라서 싸움터의 장수는 승패에 따라 운명을 달리한다. 하지만 히딩크가 해낸 것처럼 지도자를 믿고 따르며 아낌없는 지원은 또 다른 이야기다. 어떻게 전쟁터에 나선 장수를 한번의 승패나 장기적인 계획 없이 흔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내심이 명장을 낳는다

이런 점에서 자갈로의 A매치 100승은 단순히 승수 쌓기를 떠나서 한 명의 훌륭한 지도자 완성의 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지도자 완성? 너무나 우리에게 먼 얘기다. 선수의 성장도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가 지도자 완성은 당치 않는 이야기다. 1998 프랑스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의 경질과 이번 부산아시안게임 후 박항서 감독 퇴진은 그 보기다.

이런 점에서 김호곤 감독의 앞으로 발길은 중요하다. 나름대로 협회와의 관계정상화와 선수 추스르기에 나선 그의 마음은 복잡함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비록 첫승을 놓치며 자갈로의 100승을 눈앞에서 본 그다. 하지만 이제 복잡한 실 타래를 푸는 그의 현명함과 축구협회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세 번째 복잡성은 선수들의 드리블과 발길질만큼 복잡하다. 3:2의 5골은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안정환과 호나우두가 그들이다. 호나우두는 두골과 그가 얻어낸 페널티킥으로 브라질 승리를 이끌었고, 안정환은 하나의 어시스트와 한 골로 그의 식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한ㆍ일 월드컵 때도 뛰어난 활약은 보인 둘이지만 월드컵은 둘에게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퇴출 위기에 몰렸던 호나우두는 극적인 부활을 알리며 축구무대로 화려하게 재등장을 했다.

반면에 안정환은 월드컵으로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지만 ‘알림’에 그쳤다. 무엇이 이유인가. 여기에 복잡함이 있다. 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러기에 스포츠는 거대해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가 월드컵 후 한국 축구선수들의 계속된 유럽진출 실패를 에이전트의 능력부족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FIFA Players’ Agent라고 하는 선수에이전트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발급한다. 단순한 선수관리가 아닌 협상이 에이전트의 능력을 판가름한다.

하지만 협상하면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다른 경제 외교 현안에서도 보듯이 말이다. 우물안 개구리식의 계획과 협상은 결국은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안정환 뿐만 아니다. 이천수, 유상철과 이번에 은퇴식을 한 홍명보, 황선홍 등 대부분의 스타 선수들이 피해를 입었다.

물론 차두리와 송종국, 이을룡 등이 해외친출에 성공했지만 이을룡에서 보듯이 해외진출 결과뿐만 아니라 성실한 계약이행 여부 등 여러 각도에서 성공여부를 판단해야 될 것이다.

축구공은 둥글다고 했다. 축구 그 자체가 가진 복잡한 경기내용은 예측불허의 승부를 낳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축구 그 안과 밖도 복잡성을 띠고 있다. 이번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는 단순히 월드컵 4강의 실력을 입증한 우리 경기결과가 다가 아니다. 경기 안과 밖의 복잡한 현상을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풀어나갈 방법을 찾는 귀중한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이형진 스포츠칼럼니스트ㆍ임바디 대표

입력시간 2002/12/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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