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찍을 후보가 없다??

70년대 말 전방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주임상사급 부사관들이 ‘초’를 쳐가며 흥미위주로 들려주었던 것인데, 핵심은 전장에 선 인간의 전투심리에 관한 것이다.

요약하면 아무리 간 큰 남자라도 막상 적과 딱 마주치면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옆 전우가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 그 순간 눈에 핏발이 서면서 상대를 정조준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뜬금없이 “웬 군대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 국정원 도청문서라는 걸 내놓으면서 더욱 가팔라진 대선구도를 보며 군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판에서 느끼는 인간의 심리나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게임인 대선에 임하는 후보들의 마음가짐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특히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 ‘2중’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1강’이었던 한나라당에 ‘질 수도 있다’는 불안심리가 퍼지고 있으니 선거판 자체가 살벌한 싸움판으로 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이번 선거전에서 상대의 심장을 겨냥한 첫 정조준은 한나라당의 국정원 도청 폭로가 될성싶다. 폭로 문서에는 노무현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도 있다. 지금의 노무현이 있게 한 3월의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노 후보가 본선 경쟁력이 더 있다’고 미리 분위기를 잡아주는 정권 실세들간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노 후보는 DJ정권의 치밀한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꼭두각시’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국정원과 당사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함을 지르지만 이미 좍 퍼진 뒤다. 그래서 민주당의 눈에는 전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상황으로 비쳐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쪽도 눈에 핏발을 세우며 적(?)을 향해 총구를 정조준해야 할 때다.

이쯤 되면 공정한 경쟁이니 정책대결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흑색선전과 정치공작, ‘네거티브 선거전략’만이 존재할 뿐이다. ‘너 아니면 나’라는 양강구도의 선거판에서 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선거 초반부터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다. 의혹수준에 머물러 있는 ‘도청’이 ‘단(單)풍’ 등 건전한 모든 선거이슈를 뒷전으로 밀쳐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어떤 바람을 기대한다는 것도 어려운 듯하다.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또다시 포탄이 떨어지지 않듯이 지난 3월 민주당의 국민경선에서 몰아쳤던 ‘노풍’의 재현은 쉽지 않은 상황이고, 그나마 ‘單풍’도 도청에 밀렸다.

한때 노 후보의 지지도를 거의 50%대 가까이로 끌어올렸던 ‘노풍’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386세대를 중심으로 “오랜만에 투표소에 갈 마음을 내키게 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말로 명쾌하게 정리됐었다. 이제 ‘2중’의 단일후보로 노 후보의 지지도가 다시 상승세를 그리고는 있으나 386세대의 마음을 다시 잡아끌기에는 역부족이다.

후보 등록과 함께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우리 주변에 다시 등장했다. 지하철 역 입구에 줄지어선 아줌마 홍보원들이며 고성능 스피커의 후보 로고송, 벽에 붙은 웃는 얼굴들… 2002년을 보내는 송년회의 주제도 그렇다. 잠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 이회창이가 되는 거야?”라는 화두로 모든 대화는 쉽게 선거로 넘어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으로 선거는 하나마나 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후보 단일화로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막상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40대 주변의 이야기다.

후보를 선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미국에서도 효능이 입증되는 ‘Favorate Sun’(고향사람 밀어주기)이 있는가 하면,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도 있고 정책노선에 따른 선택도 있다. 바람직한 것은 후보 정책을 분석한 뒤 신성한 1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회창ㆍ노무현 후보의 정책을 분석한 것들 가운데서 경실련의 분석이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피부와 와닿을 것이다. 이회창을 89년 독일 통일 당시 총리를 지냈던 기민당의 ‘헬무트 콜’형으로, 노무현을 영국 총리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형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콜은 시장 자율과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의 대표인사로, 좌파 출신의 블레어는 좌우 구별없이 실용주의적 노선을 강조하는 ‘제3의 길’주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어 비교가 손쉽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에서는 콜과 블레어 중 누가 나을까? 역시 어렵다. 통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콜이 시원시원하고, 민주화로 보면 블레어에게 마음이 끌린다. 가혹한 군사독재로부터 격렬한 민주화 운동, 수평적 정권교체, 남북정상회담 등 모든 것을 보고 겪은 40대 표심이 더욱 헷갈릴 수 밖에 없다. 두 후보의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일까.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2/12/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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