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때린 LG '찬바람 야구'

김성근 감독 전격 해임, 팬들 "구단 만행" 분노 봇물

“토사구팽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감독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칼을 들이대는 비정한 풍토에 환멸을 느낍니다.”

프로야구 LG트윈스가 내년시즌 코칭스태프 인선과 관련, 의견충돌을 이유로 김성근(61)감독을 전격 해임조치하자 이에 대한 역풍이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김 감독은 올시즌 중위권 정도의 전력을 갖춘 쌍둥이의 투타를 조련,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켜 ‘김성근식 야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특히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선 고비마다 절묘한 대타작전으로 상대의 넋을 빼놓았다. 오죽했으면 적장(敵將) 삼성 김응용 감독이 “마치 야구의 신(神)과 경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LG구단측은 지난해 레이스 초반 9승25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내고 속수무책이던 이광은 감독의 후임으로 김성근 감독을 ‘대행’으로 전격 영입했다. 작년 시즌이 거의 끝날 때까지 대행체제로 살림을 꾸린 김성근 감독은 49승7무42패로 5할이 넘는 승률로 비교적 선방했다.


시즌 초 이미 찍힌(?) 김감독

구단측은 LG특유의 신바람 야구 재현은 김성근식 ‘테이터 야구’에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2년간 4억5,000만원의 파격적인 대우로 정식 감독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김 감독을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데이터를 중시하는 관리야구로 쌍방울을 96, 97년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등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임”을 자랑하며 추켜세웠다.

김 감독은 구단측 기대이상의 성적으로 화답했고 올시즌 한국시리즈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그러나 팀 사정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LG의 올 성적은 기적에 가깝다. 시즌 시작전부터 구단측은 선수들과의 연봉재계약에 필요이상의 소모전으로 일관하면서 김 감독과 돌이킬 수 없는 불편한 관계로 접어들고 말았던 것이다. 연봉재계약이 부진함에 따라 자연히 팀 훈련스케줄까지 차질을 빚게 되자 김 감독은 구단 어윤태(55) 사장에게 “선수들 기를 살려주기 위해선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어 사장이 말로만 “알았다”고 할뿐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주전인 이병규 김재현마저 연봉조정 신청을 하며 구단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김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갈등은 구단이 아니라 어윤태 사장 개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문제였다. 구단은 내게 무척 잘해줬다. 스프링캠프를 코앞에 둔 시점까지 연봉협상이 지지부진해 문제가 심각했다. 보다못해 내가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선수 관리차원에서 연봉협상을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사장을 만나기 위해 감독실에서 2시간을 기다렸으나 사장은 만나주지 않았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다. 일부에서 내가 어 사장을 문전박대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어 사장에게 연봉문제를 어느 정도 매듭 짖기 전까지는 스프링캠프에 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협상이 벽에 부딪쳐 동요하고 있는 선수들을 달래가며 훈련을 시켜야 할 입장인 나로서는 당연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사장이 막무가내로 찾아온 것이다. 내가 반갑게 맞이할 상황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그림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나아가 구단측은 LG가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자 상당히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감독 경질수순을 밟고 있는데 저렇게 승승장구하면 경질할 명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LG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어 사장은 “올해 LG가 보여준 야구는 LG 신바람 야구가 아니라 김성근 야구였다”며 공개석상에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사실상 감독교체의 운을 뗀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어윤태사장 처사에 비난 쏟아져

감독교체 충격파가 너무 강한 탓일까? 팬들의 분노는 아직까지 수그러질 조짐을 보이지 안는다. LG의 홈페이지(www.lgtwins.com)는 물론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 등에도 구단의 처사를 성토하는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일부 극성 팬들은 ‘김성근 감독 유임 릴레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 내년 시즌 LG 경기의 관전 보이콧은 물론 어윤태 사장과 유성민 단장의 퇴진 운동까지 부추겨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 사장은 “나는 그분에게 안 좋은 감정은 조금도 없다.

다만 장단기적인 계획에 따라 구단을 운영하는데 자기 사람만을 너무 고집해 감독직에 맞지 않았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파문진화에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결국 이번 사건은 겉으로는 구단과 김 감독 사이의 내년시즌을 둘러싼 의견충돌이지만 속으로는 올해초 선수 연봉재계약을 둘러싼 감정충돌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LG는 11월 25일 내년 시즌 보류 선수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김성근 감독이 뽑았던 선수들을 대부분 방출했다. 또 김 감독의 권유로 최근 제주도에서 테스트 받고 있는 다른 팀 방출 선수들과도 계약할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범 수석코치와 이철성 작전코치는 이미 김 감독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상태. 일본인 코치들도 재계약대상에서 제외됐다.


이광환 전 감독 내정설

LG구단측 관계자는 “어차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신임감독이 결정되는 대로 새 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LG는 김 감독의 후임으로 이광환 전 감독을 사실상 내정한 상태다. 경기 외적인 갈등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란 성적마저 스스로 걷어찬 LG구단이 과연 내년시즌에 어떤 모습으로 팬들에게 ‘신바람 응원’을 이끌어낼지, 아니 이끌어낼수 있을지 궁금하다.


코칭스태프 구성 둘러싼 갈등

LG가 김성근 감독을 전격적으로 해임한 직접적인 원인은 코칭스태프 인선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해마다 스토브리그에 들어가면 이 문제를 놓고 감독과 구단측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은 야구계의 공공연한 비밀.

야구단의 인사권인 사장이 코치 인선에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과 야전사령관인 감독이 직접 자신의 참모를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경우 구단과 감독이 권력을 분산했다. 일단 감독이 벤치 코치를 비롯해 투수코치 타격코치 작전코치 등 주요 코칭스태프를 자신과 호흡이 맞는 사람을 임명하는 대신 나머지 코치들은 구단에서 지명한다.

하지만 감독이 대개 다년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구성에 자기 색깔을 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코치 인선에 관여하는 구단측 관계자도 대부분 선수 출신의 단장이기 때문에 감독과 불협화음을 내지는 않는다.

일본은 감독에게 현장 지휘의 전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프런트의 몫이지만,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야구전문가인 감독에게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권을 쥐고 흔드는 일본 프로야구 감독들 가운데 일부 감독들은 구단주 못지않은 권력을 행사하며 자신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후배, 제자들로 사단을 구성해 팀이 바뀔 때마다 이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단 자신과 뿌리가 달라도 그 구단이 배출한 스타선수가 코치로 있을 경우에는 충분히 예우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박천호 기자

최형철 기자

입력시간 2002/12/08 16:22


최형철 hc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