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부럽지 않은 조연들



감칠맛 나는 연기로 극적 재미 배가, 성공·흥행 좌우

화려한 각광, 지대한 관심, 그리고 엄청난 수입. 그것은 주연(主演)의 몫이다. 그래서 탤런트나 배우 등 연기자들은 주연을 하려하고 주연을 꿈꾼다. 하지만 조연(助演)과 단역 없는 드라마나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시청자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 작품의 성공을 가져오는 조연이 작품의 성공과 흥행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색깔과 연기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스타덤에 오르는 조연의 스타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청률 50%대를 기록하며 신드롬까지 일으키고 있는 SBS ‘야인시대’에선 극중 주인공인 김두한 역을 하는 주연보다 쌍칼 역의 박준규, 구마적 역의 이원종, 왕발 역의 이재포, 무옥 역의 이혁재 등 조연들의 인기가 더 높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의 강도는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팬클럽에서 쉽게 확인된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스타 반열에

‘야인시대’에 이어 시청률 2위에 올라있는 MBC 일일극 ‘인어 아가씨’의 고부간으로 나온 김용림과 사미자, KBS 일일극 ‘당신 옆이 좋아’의 김창완 반효정, ‘결혼합시다’의 주현과 조형기, SBS사극 ‘대망’에서의 임현식과 박영규, SBS주말극 ‘흐르는 강물처럼’의 강부자 송기윤 등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칠맛 나는 연기로 극적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밖에 MBC 아침 드라마 ‘황금마차’의 금보라, KBS 아침 드라마 ‘인생화보’의 김형자 권귀옥, SBS 미니 시리즈 ‘별을 쏘다’ 의 박상면이 주연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있다.

드라마에서 조연의 역할은 주연에 못지않다. 주연의 주도적인 흐름으로 야기될 수 있는 단순한 스토리 전개와 단선적인 극적 구도에서 탈피, 드라마에 다양한 내용과 성격, 극적 재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조연의 몫이다.

또한 최근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로 인기를 끈 상당수 젊은 스타들의 연기력 부재를 조연들의 노련한 연기력으로 보완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신선한 젊은 스타들의 이미지와 조연들의 연기력이 조화를 이루는 드라마가 요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연 연기자들은 크게 주연으로 활동하다 조연으로 나서는 연기자와 조연 전문 연기자 그리고 가수, 코미디언 등 다른 분야에서 활옳求?연기자로 활동 영역을 확대한 연기자로 구분된다.

1992년 MBC 미니 시리즈 ‘질투’를 시작으로 젊은이 위주의 트렌디 드라마의 안방극장 점령 현상은 주연 자리에서 중견 연기자의 설 자리를 잃게 했다. 10~20대 주인공을 내세워 이들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의 범람과 30대 이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의 부족은 주연급 중견 연기자들의 조연 진출 현상을 부채질 한 것이다.

이순재 최불암 김영애 고두심 주현 반효정 임동진 한진희 이효춘 김창숙 노주현 등이 화려한 젊은 날의 주연을 뒤로 한 채 조연으로 제 2의 연기인생을 꽃 피우고 있는 연기자들이다.

또한 연기 시작부터 조연 전문으로 시작해 인기를 얻은 연기자가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코믹함과 개성 강한 자신만의 조연 연기 스타일을 구축해 독자적인 연기 세계를 펼친다. 30여년 넘게 조연 연기를 선보여온 영원한 ‘순돌이 아빠’ 임현식, 영화와 스크린을 오가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연 연기를 선보여온 김지영과 김영옥 나문희 박원숙을 비롯해 최종원 최주봉 조형기 정원중 박광정 권해효 박상면 등이 조연 전문 연기자로 스타 반열에 오른 탤런트들이다.

코미디언, 가수로 활동하다 연기에 뛰어든 조연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코미디언으로 연예활동을 시작해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 ‘야인시대’의 이재포와 이혁재, ‘흐르는 강물처럼’의 조혜련, ‘인생화보’의 권귀옥 등 코미디언 출신 조연 연기자들은 탤런트나 영화배우에 못잖은 연기력으로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될 감초 연기를 하고 있다. 박미선 이경실 김국진 서승만 김효진 서춘화 등도 드라마에 출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수의 연기자로의 영역 확대에서 가장 괄목할 조연 연기자는 산울림의 멤버인 김창완이다. 신세대 가수인 핑클, SES와 신성우 등이 연기를 선보였지만 대사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드라마의 부실화를 초래한데 비해 김창완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뛰어난 연기력과 소박한 이미지로 시청자뿐만 아니라 제작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동안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있어 명조연들이 있었기에 작품은 탄탄해졌고 볼거리도 풍성했다. 1960~1970년대 개성강한 악인역을 해낸 허장강을 비롯해 문오장 김순철 박주아 1980년대 박원숙 김수미 김상순 임현식 주현 최종원 명蘊?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조재현 정원중 박광정 박상면 공형진 등이 명조연으로 각광받고 있다.

30여년 동안 1,0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해 다양한 색깔의 연기를 해온 ‘조연의 지존’임현식은 “연기란 극복하는 것이며 언제 어떤 역을 맡아도 자신 있다. 조연이었지만 내 연기 인생에 3진 아웃은 없었다. 출연작에서 최소한 일루타를 쳤으며 홈런도 날렸다”며 조연 연기자로서 자부심을 드러낸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

조연들이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사회의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권위주의와 궁핍으로 얼룩졌던 시대에는 권력과 부와 외모 등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주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회가 유연해지고 민주화되면서 시청자들은 실수도 하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며 환호한다.

보다 인간적이고 사람냄새 나며 나와 비슷하다는 동일시의 감정을 강하게 풍길 수 있는 조연들에게 눈길이 더 가는 것이다.

또한 좋은 학벌에 전통적으로 사회가 인정하는 직업과 지위를 갖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상도 조연 전성시대의 한 원인이다.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완벽하면서도 보편적 이상을 실현하는 주연보다는 개성이 잘 발현되는 조연들에 호감을 더 갖게 된다.

드라마 내적으로는 이미지에 기대어 연기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는 연기력이 없는 스타 연기자의 범람에 대한 시청자의 반발심도 조연이 각광받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연들은 연극무대나 오랜 단역생활을 거쳐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공통점이 있다. 극중 상황을 장악해 주연 등 다른 캐릭터와의 조화를 이루는 조연들의 연기력이 표출해내는 극중 인물들은 살아있는 역동성을 갖기에 시청자들은 쉽게 몰입하게 된다.

분명 조연들이 주목을 받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주연보다 더 많은 땀을 기울이면서도 늘 시청자의 관심권밖에 놓여 있었던 조연들.

드라마 성공의 과실이 모두 주연에게만 돌아가고 조연들에게는 무관심한 것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1등 지상주의와 동일선상에 있다. 1등(영웅)이 사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주연만이 드라마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조연들이 드라마를 완성하는 주요한 세력이다. 이제 비중이 작은 역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조연들이 각광을 받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조연으로 머물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로 연결됐으면 한다.

주연에게 쏟아지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는 뜨거운 만큼 순간적이지만 조연(助演)의 빛은 은은하고 은근하다. 그래서 생명이 길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2/12/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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