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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도 이긴 夢의 정치

노 후보 명예 선대위원장 수락, 單風 위력 확산 조짐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그냥 도우러 가는 게 아니라 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러 가는 것이다. (노 후보가) 당선되면 5년 동안 우리가 국정을 책임진다는 생각과 자세를 갖고 임해야 한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는 11월30일 당무회의에서 이같이 밝히며 대선 공조의 의욕을 내비쳤다. 설악산 구상을 마치고 돌아온 정 대표가 이번 대선에서 노 후보와의 공동선거운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식 천명한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제2의 DJP야합’이고 ‘재벌과 노동자의 만남’이라고 폄하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단풍(單風)의 위력이 메가톤급으로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정치사에서 선거공조가 성공한 예는 지난 대선의 DJP연합 밖에는 없다. 1987년에는 후보 단일화도 성사되지 못했고, 92년에는 같은 당내에서 조차 소속 인사들이 힘을 합하지 못했다. 이종찬 의원은 탈당했고, 박태준 의원도 외유 길에 올랐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에도 이회창 후보에 맞서 이인제ㆍ이한동ㆍ이수성 후보가 2위 후보 밀어주기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이인제 의원이 딴 살림을 차렸다.

유력 정치인들의 공조는 각자 계산법의 현격한 차이로 제대로 이행될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90년 내각제 비밀 합의문까지 써가며 합당한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총재의 민자당도 결국 약속을 이행치 못했다.

97년 대선공조를 이뤄 정권을 인수한 DJP연합도 국민과의 약속인 내각제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권력을 나눠준다고 아무리 철썩 같이 약속을 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그런데도 정 대표는 선뜻 노 후보의 선대위 명예위원장 직을 수락한 뒤 공동 유세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과연 양당간 실무 회담에서 무슨 합의가 이뤄졌고, 노-정 두 후보간 어떤 거래가 있었을까.


김민석ㆍ김행씨, 한때 당내 원성 높아

민주당과 국민통합21 양당은 11월25일 새벽 노 후보로의 단일화 결과를 발표한 뒤 공조여부를 놓고 한동안 잡음이 무성했다. 민주당은 “졌으니 따라오라”는 식의 강공책이었고 국민통합21 측은 “여론조사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내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여론조사 패배에 따른 당내 책임론도 강하게 작용했다.

당초 여론조사의 설문조항에서 국민통합21 측은 ‘이 후보와 경쟁해 승리할, 전국적 고른 지지를 받는 후보…’라는 문구를 주장했고, 민주당은 ‘이 후보에게 대항할 후보’만을 고집하다 결국 ‘전국적 고른 지지’와 ‘승리할’ 부분은 빠지고 ‘이 후보와 경쟁할 후보’로 결정됐다.

역선택을 감안한 무효화 기준도 처음에는 이 후보의 최근 2주간 평균 지지율을 하한선으로 했다가 막판에 국민통합21 측에서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쪽으로 사실상 민주당의 의견을 수용했다.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여론조사 문구가 합의되고 막상 근소한 표 차이로 패하자 패자 쪽에서는 협상 책임자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협상 대표였던 김민석 전 의원을 겨냥해서는 “민주당의 지령을 받고 입당한 트로이의 목마”라는 근거 없는 비난이 쏟아졌고, 김 행 대변인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전신인 민자당 출신의 위장 입당”이란 악소문도 퍼졌다.

당사자들은 펄쩍 뛰며 해명했지만 그럴듯한 배경설명과 함께 한동안 단일화 패배에 따른 모든 원성을 두 명이 뒤집어 써야 했다. 당 관계자는 “예선탈락이란 허탈감에서 정 대표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화풀이 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오히려 그런 괴소문은 단풍을 염려한 한나라당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11월28일 후보단일화 이후 당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정 대표는 “여론조사에 대한 내부 평가는 꼭 하겠다”고 전제한 뒤 “내가 자만했고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말로 당원들을 안정시켰다. 그러고는 곧바로 당직자들과 선거공조 방안과 당 진로 등에 대한 대책논의에 들어갔다.

단일화 패배이후 방향타를 잃고 헤매던 국민통합21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고리로 민주당과의 협상을 재개했다. 제왕적 권력을 소유하는 대통령의 힘을 총리 등 내각으로 분산시키자는 게 골자이다. 개헌시기를 놓고 주저하던 민주당은 결국 17대 국회에서 발의하는데 동의했고, 이에 정 대표는 선대위 명예위원장을 맡기로 화답했다. 비로서 선거공조의 마지막 관문이 열린 것이다.


양당,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합의

양당의 합의 사항은 △노 후보와 정 대표는 대선승리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분권형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개헌을 추진한다 △이 개헌은 17대 총선의 양당 공약으로 제시하고 17대 개원 국회에서 발의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부내용은 선거이후 확정되겠지만 합의내용을 보면 외치(外治)를 담당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책임지는 국무총리의 이원집정부제 형태를 띠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대통령과 총리를 나누며 공동여당을 지속한 DJP 연합체제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분권형 개헌에 합의했다고 해서 정 대표가 팔 걷어붙이고 선거판에 다시 뛰어들었을까. 그 이외는 아무런 ‘당근’이 제시된 것이 없을까. 물론 양당은 비밀합의나 이면 거래 등은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정 대표로서는 와해분위기에 휩싸인 당을 결속시키기 위한 그럴듯한 비전 제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정 대표가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DJP연합과 같은 공동여당체제. ‘노 대통령-정 총리’란 가설과 함께 내각의 상당 수를 정 대표의 몫으로 떼어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정 대표 입장에서도 당보다는 정부 쪽 자리에 더 솔깃한 데다 현 정권에서 자민련이 상당수의 장관직을 가져갔기에 정 대표도 당내 인사들을 본인 휘하에 결속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이 경우 90여명의 현역 의원을 보유한 민주당과 정 대표 1명만이 현역인 양당의 당세를 놓고 얼마만큼 조화롭게 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얼굴마담으로서의 총리 임명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합당 후 대표직 제의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 다단한 당내 역학구도를 감안할 때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국 남은 대선기간 정 대표가 어떤 강도로 노 후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지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나설지 여부가 양자간 합의 수준을 짐작케 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정 대표, 밑져도 남는 장사?

노 후보의 신계륜 비서실장은 “단일화 경쟁에서 진쪽이 이긴 쪽을 위해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50대 두 사람이 함께 유세를 하면 고령의 이 후보와는 분명히 차별될 수 있다”고 선거공조의 효과를 자신했다.

혈투를 벌이는 PK지역에서 울산이 근거지인 정 대표의 노 후보 지원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구나 부동층이 많은 수도권과 충청지역에서 노-정 두 명이 손잡고 유세를 다닐 경우 세대교체론과 새정치 구현이란 이미지 심기가 한층 수월해 진다.

노 후보 측에서 보면 분명 정 대표의 지원은 천군만마를 얻는 격이다. 만일 당선된다면 권력분점을 놓고 한차례 격전이 불가피하지만 청와대로 가는 길에는 정 대표 지원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란 고리로 선거공조에 합의한 정 대표 입장에서도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자신의 주요 정책비전을 노 후보의 대선공약으로 관철시킴으로써 ‘야합’이 아닌 ‘정책연대’라는 명분을 갖게 됐다.

또 노 후보와 정체성과 이념을 공유하고 상호 보완하는 동등한 파트너로의 인식을 심는 데 상당부분 성공함으로써 당내 결속과 대선후 정치권 재편 과정에도 유리한 입지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본인의 차기 대선을 겨냥한 이미지관리에도 성공했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경선에 깨끗이 승복해 구 정치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당초 약속대로 노 후보 지원에 나서 본인이 주장한 새 정치를 실현케 된 경우가 됐다.

선대위 명예위원장 사무실도 민주당내로 정했다. 민주당에서 제3의 장소를 물색해주겠다고 했지만 정 대표가 “굳이 돈들일 필요 있느냐”며 거절했다고 한다. 국민통합21을 운영하면서 나타난 ‘짠돌이’ 근성을 또 한번 유감없이 발휘했다.

돈 안쓰는 정치, 약속을 지키는 정치, 깨끗이 승복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정 대표 입장에서는 대선에서 이기면 최소한 2인자 자리 보장, 지더라도 차기 대선의 강력한 주자로서의 참신한 이미지 유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양손에 쥔 상황이다. 대선공조를 통해 얻을 것은 다 얻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2/12/0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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