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명콤비를 기다리며…

부부도 아니면서 오랜 세월을 같이 붙어 지내는 연예인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콤비라고 부른다. 사실 콤비란 말이 꼭 연예계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에서도 호흡이 잘 맞는 복식조가 있을 경우에 그냥 콤비보다 한단계 높은 환상의 콤비라고 불렀다. 어떤 때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콤비를 거론하기도 한다. 5공 비리가 모두 밝혀졌을 때 전대통령 내외를 가리켜 환상의 콤비라고 확실히 인정을 해주지 안았던가.

채플린도 영화를 하면서 25년간이나 콤비를 한 배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연예계에도 많은 콤비들이 있었다. 얼른 떠오르는 사람들이 ‘홀쭉이와 뚱뚱이’로 유명했던 양훈 양석천 선생이다. 생긴 모습 자체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두 분은 먹고 살기 조차 힘들던 시절에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코미디언 남철 남성남도 콤비의 대명사처럼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들은 ‘왔다리 갔다리’춤으로 최고의 호흡을 보여 줬었다.

남철 남성남은 동성이었지만 이성간에도 콤비를 이루어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일자(一字)눈썹을 휘날리며 쓰리랑 부부에서 김한국과 명연기를 펼쳤던 김미화의 콤비는 거의 예술의 수준이었다.

TV쪽에서 김한국 김미화 콤비가 있었다면 라디오에는 싱글벙글 쇼에서 십수년이 넘게 입을 맞춰온 강석 김혜영 콤비가 있다. 서로의 눈빛만 봐도 오늘 기분이 어떤 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 지를 정확히 맞출 수 있다는 전설적인 콤비다.

사실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오랜 세월을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콤비로 인식되던 사람들이 헤어져서 각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예를 많이 보지 않았던가. 얼마전 ‘클놈’이라는 개그 콤비가 당분간 떨어져서 활동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방송국에 입사해 다시 뭉친 클놈의 염경환 지상렬 콤비는 독특한 웃음을 무기로 개그계의 확실한 콤비로 자리잡았었다.

그 지상렬이 무명시절에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SBS개그맨 공채시험에 합격해서 세상을 다 얻었다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것도 잠시 프로그램에 캐스팅이 되지를 않아서 정말 할 일 없이 방에서 뒹구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자식이 방송국 공채시험에 합격해서 바로 스타가 될 줄 알았던 부모님의 실망이 더 컸다. 어떻게 하든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라도 잡아서 방송활동을 하려고도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급기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다 폐지되는 바람에 기댈 언덕조차 없어져 버렸다.

결국 지상렬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취직이라도 해서 먹고 살기 위해 이력서를 써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몇통씩 이력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구인광고를 낸 회사에 이력서를 접수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갑자기 급한 생리현상이 와서 가까이에 있는 비닐 하우스로 달려가 큰 볼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휴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전전긍긍하다가 개그맨으로서 순발력을 발휘해 몇통씩 서서 넣고 다니던 이력서를 꺼내 그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다음날 지상렬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상렬씨 이력서 보고 전화 했는데요.”

취직이 됐다는 전화연락으로 생각한 지상렬은 너무나 기뻤다고 한다. 그런데,

“야! 싸가지 없는 놈아! 나 비닐 하우스 주인인데 빨리 와서 똥 치워.”

하루라도 빨리 지상렬 염경환 콤비가 다시 뭉쳐서 일상의 피로에 지친 우리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연예계의 콤비들이 잘 나가는 걸 보면서 ‘우리도 콤비를 이뤄서 뭔가 해보자’는 굳은 맹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한 놈은 남의 집을 털고 한 놈은 밖에서 망을 보는 엉뚱한 콤비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고, 새로 뽑히는 대통령은 전국민과 좋은 콤비를 이루어서 제발 이 나라가 사는 재미가 느껴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입력시간 2002/12/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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