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민주당 막바지 '전투배치' 총력전

한방에 보낼 히든카드로 '마지막 승부'

대선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비축해 놓은 화기(火器)를 모두 꺼내 들고 총력전에 돌입했다. 상대 후보를 겨낭한 폭로 정치는 물론, 온갖 흑색선전과 유언비어 등을 동원하고 있으며, 지역의 맹주격인 인사들을 앞세운 지역감정 자극에도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또 군중동원 선거에서 미디어 선거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는 만큼 각 진영은 유권자들의 눈과 귀가 번쩍 뜨일만한 각종 ‘작품’을 내놓고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전처럼 선거자금 동원이 여의치 않아 이회창ㆍ노무현 두 후보의 측근들조차 실탄 부족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들어간 뒤부터는 하부 조직까지 일정 규모 이상 지급된 것으로 전해져 진정한 ‘마지막 승부’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붓는 상황이다.

선거일이 1주일 여 남은 현재까지는 이ㆍ노 두 후보 진영 모두 선거판 전체를 강타할 메가톤급 무기의 사용은 자제하고 있다. 팽팽한 것으로 나타나는 양측의 지지율이 어느 한쪽으로 현저히 기우는 위기 상황이 도래하지도 않았거니와 공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선거일을 3~5일 앞둔 시점)도 아직 며칠 남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두 후보 진영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날리기 위한 ‘카운터 펀치’를 일단 수중에 감춰둔 채 아끼고 다듬고 조율하고 있다. 선거전의 히든카드일수록 상대 후보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네가티브식 공격 형태라는 것은 자명한 일. 과연 그들이 포켓 속에 깊숙이 숨겨놓고 있는 핵무기는 어떤 것일까.


유언비어와 악성 루머전 난무

양측의 진검 승부에 먼저 포문을 연 쪽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 등이 중심이 돼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을 제시하고 나섰다. 공개된 자료에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사개입 여부와 국민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의도적으로 띄우기 위한 여권 실세들의 통화내역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 도청 공방은 득표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초 도청 공작이란 곧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민주당 및 노무현 후보로 연결시켜 ‘낡은 정치’를 운운하는 노 후보에게 타격을 줄 심산이었지만 이 같은 의도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수그러든 편이다.

민주당측도 가만있을 리 없다. 당장 기양건설로부터 20여억원이 이 후보 수중에 들어갔다며 맞불을 놓고 나섰다. 한나라당의 선공에 대한 후속 대응책이었지만 도청공방에 이어 이 역시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표적을 노 후보 개인으로 좁혀 집중타를 날렸다. 노 후보의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이 있고 땅 투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서민 대표라는 이미지를 훼손시키기 위한 회심의 한 방을 날린 것.

이규택 한나라당 원내 총무는 12월5일 노 후보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동아건설과 삼애인더스 보물사업 허가 및 주가 조작에 개입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용호씨의 삼애인더스 보물선 사업에 대한 허가 여부가 노 후보의 해수부 장관 취임 후 결정됐고, 동아건설이 보물선 인양 계획을 50억원에서 50조원으로 뻥튀기 발표를 했을 때 주무 부처인 해수부가 “보물가액의 공식자료는 없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주가 급등에 영향을 미치게 한 것이 노 후보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김영일 사무총장도 “노 후보는 친인척을 통해 한려해상국립공원내 1,900여평의 토지를 매입, 불법 호화별장 및 커피숍을 신축케 하여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강조했으며, 남경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수십억원대 재산은닉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집중 공격했다.

이에 노 후보측도 얼마 전 작고한 이 후보 선친의 재산문제와 이 후보의 화성·보령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반격 태세를 취했다.

이해찬 민주당 선대위 기획본부장은 “이 후보 선친의 재산이 왜정 때부터 모은 적산가옥을 포함해 엄청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누구에게 상속됐고 증여됐는지 밝혀야 한다”며 “이 후보가 1987년 선산용으로 샀다는 화성 땅(7,000여평)을 1억원이 안 되는 것으로 신고했는데, 그 땅의 가격은 적어도 30억원에 달한다”고 공격했다. 이재정 유세본부장도 “이 후보의 충남 보령 땅 8,000여평도 차액을 노린 부동산 투기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당은 이렇듯 중앙당 차원의 인신공격과 폭로 등 공중전은 말할 것도 없이 밑바닥 여론 흐름에 영향을 끼칠 지구당 조직과 ‘구전 홍보단’을 통해 중앙당이 언론에 공개한 폭로 소재를 확대 재생산하거나 중앙당이 체면상 차마 나설 수 없는 유언비어와 흑색선전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양당 모두 “자신들은 하지 않고 상대 당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발뺌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은 ‘팩트’(FACT)요, 상대방 주장은 ‘모략’이라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전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전가의 보도, 지역감정 자극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동서간 지역감정의 대립이 이번에도 강력하게 휘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양당이 나서서 ‘우리가 남이가…’식의 노골적인 지역정서를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다. 일종의 탐색전에 그치고 있지만 서로가 ‘상대 당이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이런 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반사이익을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당선되면 호남을 향한 정치보복이 있을 것’ ‘이 후보가 당선되면 DJ가 다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어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라고 한다. 광주시지부 관계자는 “이 후보의 외가가 전남 장평이고, 광주 서석초등학교에서 5학년까지 다녔는데 무슨 정치보복이냐는 대응논리를 펴고 있으나 잘 안 먹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울산에서도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현대그룹이 힘들어진다”는 루머가 시 지부에 접수되기도 했다.

민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 영남지역 유권자들을 겨냥해 ‘호남에서 이 후보 선거 벽보가 다 찢겨 없어졌다’ ‘이 후보가 호남을 방문하면 계란세례를 맞을 것’이란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고 한다.

또 ‘노무현은 DJ양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호남만 챙길 것’ ‘노 후보의 부모는 원래 호남 사람’이라는 말도 나도는 실정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자칫하면 역풍이 불 수도 있는 지역감정 자극 부분은 선거일 3~4일을 앞두고 전혀 의외의 이벤트성 사건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92년의 ‘초원복국집 사건’ 같이 엉뚱한 일로 점화될 수도 있고, 계산된 시나리오에 의한 작품성 사건을 통해 촉발될 수도 있다. 양당 모두 결정적인 시기에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기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의도적인 지역감정 조장에 앞서 지역민심을 끌어당기는 것에는 지역의 맹주나 유력가들을 앞세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 후보는 텃밭인 TK지역은 박근혜 의원을 앞세워 표 단속에 나섰고, 노 후보가 파고들고 있는 PK 지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 선언을 내세워 수성에 들어간 상태. 여기에 박태준 전 총리도 영남권 결속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무주공산인 충청도 이 후보는 IJP(이인제-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등에 업고 민심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인제 총재대행은 97년의 경선불복을 사과하고 과격ㆍ급진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며 연일 노 후보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노 후보는 아성지대인 호남 방문조차 꺼리고 있다. 자칫 호남에서 절대 지지를 받는다는 인상을 줄 경우 선거구도가 동서간 지역대립으로 고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출생지인 PK 지역에서는 ‘부산=노무현’이란 등식을 앞세워 “선거에서 이기면 제2의 김대중 정권도 아니고 민주당 정권도 아닌 노무현 정권이 출범된다”고 현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있다.

또 충청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 이야기를 떠올리며 ‘손잡고 5년간 국정을 책임질 파트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또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 공약 등을 내세워 민심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네가티브성 이전투구에는 일단 한나라당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집중 포화를 받은 바 있어 재탕삼탕의 신상공격은 큰 파괴력을 주기 어려워 보인다. 또 지난 5년간 야당 총재를 지내면서 민주당으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아와 깜짝 놀랄만한 폭로전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一發必死’ 히든카드 뭔가?

반면 노 후보는 사실상 처음으로 공개성토를 받는 것이라 이 후보에 비해서는 조금 불리한 양상이다.

그러나 폭로전 자체가 국민에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는 데다 미디어선거로 무게 중심이 옮아가면서 유언비어나 악성 루머 자체가 구 정치의 산물로 인식돼 큰 충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 후보가 “상대 당의 근거없는 네가티브 공격에 반응하지 말고 자제하라”는 지시가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먹혀드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공공연히 “아직 공개하지 않은 자료가 엄청나게 있다” “노 후보를 한방에 거꾸러뜨릴 비책이 있다”고 떠들고 있다. 민주당도 이에 대해 “공연한 허풍에 불과하다” “선거전이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가지. 아직 마지막 뚜껑을 열지 않은 도청자료 중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는 것을 골라 공개하는 것과 지역간 동서구도로 선거전을 고착화하는 것, 정치노선에 따른 색깔론을 부각하는 것 등이다. 선거일 3~4일 가량을 앞두고 터지게 될 한나라당의 비장의 무기는 이 세가지 내용을 한번에 담고 터질 수도 있다.

반면 민주당 측에서는 뚜렷한 히든카드없이 기존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천군만마격인 정몽준 대표의 적극 협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네가티브대신 포지티브식 선거에 주력하면서 구 정치와 신 정치의 대결로 선거구도를 각인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핵무기가 어떤 내용인지, 또 얼마만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지 잔뜩 긴장하는 표정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2/16 16:08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