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반미시위 확산의 이유

12월 7일 전국 곳곳에서 미군 전차에 의해 사망한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항의시위 참여자가 전국 43개 지역에 10만명에 이른다 한다. 나아가 이번 주말에도 항의시위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에는 15만명이 참여, 한미주둔군협정(SOFA) 개정을 위한 대규모의 항의시위가 전개되리라는 전망이다.

‘전국민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같은 항의사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반미라는 용어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는 ‘반미운동은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이때의 반미는 일종의 금기(taboo)로서 우리 행동이 넘어서서는 안될 일종의 성역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만큼 그것은 정도에 관계 없이 급진적인 운동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 오래된 금기와 성역이 요즈음 여지 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반미는 사용하는 사람과 세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야말로 미국 때문에 우리가 존재했고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과 세대,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탓에 친미적인 것이 엘리트적이고 특권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반미운동의 이 금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반공적 기성 세대 또는 친미적 엘리트층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사회심리적으로 뿌리 깊은, 따라서 무의식에까지 파고든 대미 종속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민주화운동 세대가 그들이다. 자국민 살해의 신군부세력을 비호했던 미국의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인 태도를 목도했던 광주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던 그들은 반공주의 한국사회에서 반미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들은 이 같은 반미운동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일뿐더러 민족통일운동의 일환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이러한 운동이 처음부터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끌어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여중생 사망에 대한 항의시위가 보여주듯, 지금의 반미운동은 광범위한 대중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심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없다. 그들에게는 광주로 인해 분노해야 했던 기억도 크지 않다. 그러나 먹고 살만해 졌고 민주화도 일정 정도 이룬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당당한 자존심이다. 이미 지난 동계올림픽의 오노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그들에게는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다.

한일 월드컵대회에서 수많은 ‘붉은 악마’들이 ‘아시아의 프라이드’(Pride of Asia)를 외쳤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냉전 해체 이후 미군의 한국 주둔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해가고 있다. 더구나 남북이 화해를 이루어가는데 그들은 장애로 인식될뿐더러,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한국민에게 전쟁 위협에 대한 우려를 증대시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앳된 두 여중생에 대한 미군 전차의 압살과 그 처리에 있어서의 비인간적이고 고압적인 미군 당국의 태도는 마침내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폭발하게 만든 것이다. 왜 우리가 우리 땅에서 남의 군대에 의해 이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반미 항의시위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시대와 의식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으나, 낡은 의식과 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반미운동은 안된다’는 금기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들릴 뿐이다. 뿌리 깊은 심리적 종속에서 비롯되었던 그 금기는 이제 해체될 때가 되었으며, 그것은 이번 두 여중생 사망에 대한 항의시위의 대중적이며 전국적 확산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해구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12/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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