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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巨匠] 옥수수 박사 김순권

[우리시대의 巨匠] 옥수수 박사 김순권

"옥수수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

“결국 공생(共生)하자는 거죠.”

테이블 앞에 쫙 펼쳐진 옥수수밭의 풍경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대구 경북대 안의 연구소와 군위의 비닐 하우스를 오가던 김순권(57)이 서울 종로구 와룡동 인선빌딩 5층 국제옥수수 재단 이사장실에서 하는 말이다.

사진은 황해북도 황주의 3,000만평 부지의 긴등벌 전경이다. 한반도 최대의 옥수수 농장이다. 그의 슈퍼 옥수수를 중심으로 작물과 벌레가 사이 좋게 공생하고, 갈라졌던 남과 북이 화해와 공존의 물꼬를 트는 곳이다. 공생이고 상생이다.

재단이 설립된 1998년 3월 이후 매년 이어져 온 공동 연구는 공생의 논리가 일궈낸 찬란한 성과다. 2001년 3월 발표된 ‘북한 적응 슈퍼 옥수수 남북 공동 개발 사업 보고서’는 농업 부문에서의 첫 공동 학술 보고서이다.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

그는 공식적으로 경북대 국제농업연구소 소장 겸 석좌교수이자, 국제 옥수수 재단(www.icf.or.kr) 이사장이다. 그러나 그는 “나는 그저 촌 농부일 뿐”이라며 “남북을 왔다 갔다 하며 필요하면 목숨 바치겠다는 것”이라고 자신을 낮추려 든다. 투박한 경상도 말투는 끝내 고쳐지지 않는다. 1년에 20억여원의 예산을 갖고 100여개의 NGO와 긴밀한 유대를 맺으며 통일의 그날을 향해 앞장서는 단체의 장 같지 않다.

푹푹 찌는 여름날, 키를 넘기는 옥수수 밭에 들어가 있으면 숨통이 헉헉 막혀 온다. 또 웬 벌레는 어찌 그리 달라 붙는지. 그러나 그는 북한 ‘동무’들과 옥수수 밭을 누볐다. “북한 동포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정말 부지런들 해요. 이제 옥수수만 잘 되면 세계가 깜짝 놀라 우러러 볼 겁니다.” 그가 이 일에 혼신의 열정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는 9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27차례 북한을 다녀 왔다. 날수로 따지면 238일이다. 외부인으로 북한을 저토록 속속들이 다닌 사람은 없다. 2002년의 경우, 북한 내 66개 협동 농장에 들렀다. 연구소로 보자면 25개 중 12곳을 들렀다. 올해는 슈퍼 옥수수가 시험장을 떠나 북한의 협동 농장에서 처음으로 착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최근 5년 동안 북한의 25개 연구소와 1,100여개 협동 농장에서 연구한 2,700여종의 슈퍼 옥수수 중 136종을 골라 본격 시험 재배에 들어간 것이다. 이번의 새 종자로만 3,000~5,000톤의 수확이 예상된다. 총생산량은 20억톤(국제가 2,000만 달러)을 내다보고 있다.

그의 슈퍼 옥수수는 단일 품종이 아니다. 토양과 기후 등 곳곳마다 조금씩 다른 조건에 대한 실측과 연구를 거쳐 나온다.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이다. 완전 무농약 농법으로 옥수수의 생산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방법이다.

“태풍이 와도, 왕가뭄이 와도 견디는 옥수수죠. 병이 와도 10%만 망가집니다.” 자생력과 저항력을 증진시켜준 결과다. 왜 이렇게 신품종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가야 하는가? “그러지 않으면 계속 들이닥치는 병과 벌레를 못 이기기 때문이지요.”

그의 북한 내 활동은 철저하게 공개되고 있다. 2002년 9월 9~17일의 제 27차 방북의 경우, 농촌진흥청 강원도 옥수수 시험장 민황기 박사, 친환경 농약 연구 업체인 동부화학의 김운섭 사장 등 모두 7명이 동행했다.

제 28차인 2003년 1월 10일로 잡힌 평양의 북한 농업 과학원 방문길에도 인근 연구자들이 함께 한다. 그는 꼼꼼하게 보고서를 작성해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북한 활동 경험을 공유하려 애써 왔다. 여지껏 활동의 대부분은 경북대 과학기술부가 펴낸 모두 1,500여쪽 분량의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김정일 "김순권을 학습하라"

“필요하면 목숨까지 바쳐 남북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돈으로 식량을 사다 주는 것은 일시적 효과는 보겠지만, 북한 토양에 맞는 옥수수는 1년을 버틴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목표하는 바는 명료하다. 북한의 자존심을 세워주며 식량을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의 눈높이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그는 사실 어느 누구 못지않게 분단 현실로 인해 깊이 상처 받은 사람이다. 그것은 맨 먼저 코흘리개 적 한국전쟁으로 들이닥쳤다. 울산에서 반농ㆍ반어로 근근이 연명하던 그의 부친은 쳐내려 온 인민군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참 뒤인 1979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유엔 산하 식량농업연구소(IITA)에서 연구 중일 때도 함께 있던 북한측 직원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놔 출장을 갈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던 기억은 또 다른 분단의 서글픔이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연구 중이던 1980년 4월은 서글픔이 공포로 변했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현지인에 의해 납치될 뻔했으나 겨우 빠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그의 마음 씀씀이는 대승적이다. 무엇보다 과학도의 관점으로 봤을 때 북한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인구가 남한의 반인데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은 30% 많다는 객관적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처녀림에다 땅도 비옥하지요. 종자 혁명만 하면 충분히 먹는 것은 물론, 세계에 내다 팔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99년 8월 염천 아래 황해북도 황주의 룡천 협동 농장 옥수수 밭에서 팬티 차림으로 1주일 밤낮 꼬박 땀흘리는 남한 학자의 소문을 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순권을 학습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작물의 저항력을 혁명적으로 증진시킨 친 환경적 농법 덕택에 그는 나이지리아에 있던 92년 그곳 대통령의 추천으로 노벨상 후보자로 추대되기도 했다. 서양학자들이 100년에 걸쳐 죽이려다 실패한 나이지리아의 기생 잡초 ‘스트라이가(악마의 풀)’문제를 해결한 공로 때문이다.

에이즈처럼 돌연변이를 끝없이 일으켜 인간의 손을 피해 나가는 골칫거리를 그는 함께 살아도 끄덕 없는 작물을 개발해 이겨냈다.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등의 방법을 쓰지 않고 순수 육종법으로만 개발한 옥수수였다. 바로 그가 강조하는 ‘공생의 원리’ 다.


북한은 세계적인 농사모델 될 것

그가 “뒤떨어지거나 나쁜 사람이라도 없애려 하면 부작용만 불거진다”고 말할 때, 어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것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낸 금과옥조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북한은 앞으로 농약을 가장 적게 쓰고 엄청난 수확을 올리는 세계 최고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 앞에 닥치는 것은 과학자의 가운이 아니라 보기 좋게 그을린 농군의 팔뚝심이다.

경북대의 생명과학연구소와 군위의 옥수수 농장 사이를 시계 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그가 12월 4일 아침 7시 비행기로 서울에 왔다.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국제 옥수수 재단도 들러 볼 겸, 통일교육원이 초빙한 강의에 나갈 겸 해서다.

이날 전국 중등학교 교사 70명을 대상으로 1시간 동안 펼쳐진 그의 강의는 자신이 그 동안 접한 북한과 북한 사람에 대한 경험담이었다. 또 5시에는 재단 이사회에 참석해 최근 방북 활동에 대해 보고도 펼쳤다.

그는 남북에 걸쳐 교회에 적(籍)을 두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도다. 주일을 꼭 지켜야 하는 신자가 북한 생활을 거뜬히 한 것은 평양에 있는 교회 덕분이다. 평양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수백 명 신도의 봉수교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도 60여명의 칠골교회다. 봉수교회가 일종의 대외 홍보용이라면 칠골교회?정치의 입김이 없는 작은 교회다.

그가 신자가 된 내력에는 이 우직한 과학도의 소년기가 어른거린다. 중학교 2학년 때 짝사랑 하던 여학생을 따라 무작정 교회를 나갔던 그는 현재 독실한 크리스천이 돼 대구 모교회의 장로로 있다.

오랜 유엔 근무 중 얻은 아이들 셋은 미국서 공부했다. 맏아들 용철(29)은 뉴욕에서 회사를 경영 중이고, 딸 주애(27)은 하버드 대학에서 교육학 연구에 종사 중이다. 막내 현철(22)은 뉴욕 코넬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의 부인 한은실(52)은 한신대 신학과에 편입한 만학도로 상담 치유 전문가를 꿈꾸고 있다. 요즘 그의 가족은 TV의 토크쇼에 출연하는 등 옥수수 박사에 쏠린 세간의 관심 값을 치르고 있다.

북한에 슈퍼 옥수수를 심자는 그의 목소리는 ‘국제옥수수재단 기독교 후원회’ 등 산하 단체들의 협력으로 커다란 울림이 돼 동심원을 넓혀 간다. 서해안 침투, 핵문제 등 예측 불허의 사건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에 대해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부인, 아이, 빤스만 빼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라”는 것이다. 현실에 눈떠야 한다는 뼈아픈 충고다. 시급한 현안인 핵 문제와 관련, 그는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걱정이 없을 리 없다. “북한 정권을 위해서라도 코앞에 닥친 식량난을 해결 해야 할텐데…”. 자신의 슈퍼 옥수수는 절반의 우리를 구하고, 마침내 공생의 대원리를 구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12/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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