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투혼 코리아텐더, “그들에게 승리는 곧 생존이다”

재정난·스타 부재 속 선두권 질주, 농구 코트의 대반란

프로스포츠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돈이 있어야 성적을 올릴 수 있고 투자를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승리를 돈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이 또 스포츠다.

올해 메이저 리그에서 부자구단 뉴욕 양키스 연봉 총액의 절반도 안 되는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듯이 ‘챔피언은 투자 순서‘라는 정설이 뒤집히는 일도 다반사로 생기기 때문이다.

10월26일 개막한 2002~2003 국내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도 ‘헝그리 팀’의 대 반란이 화제로 떠올랐다. 개막 직전까지 재정난으로 시즌 참여조차 불투명했던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가 거칠 것 없는 선두행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

인천SK와의 개막전 승리를 시작으로 코리아텐더는 팀 창단 3년만에 최초로 단독선두로 올라서는 등 2라운드까지 18경기에서 12승6패로 원주TG, 대구동양과 함께 공동선두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대구 동양이 꼴찌에서 우승 신화를 일궈냈듯 올 시즌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코리아텐더의 ‘헝그리 투혼’의 비밀은 무얼까.


동가식 서가숙, 투혼만은 최고

코리아텐더 선수들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다른 팀 선수들보다 30분씩 일찍 나와 몸을 푼다. 다른 구단에 모두 있는 전용체육관이 없기 때문이다. 동수원에 있던 전용체육관과 전용 숙소를 6월 울산 모비스에 팔아넘겨 슈팅이라도 한 번 더 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나와야 한다.

결국 부산아시안게임의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10월, 코리아텐더는 올 시즌 정규리그 참가가 불투명할 정도의 위기에 봉착했다. 모 기업의 지원중단으로 6월부터 한국프로농구연맹(KBL)으로부터 받아오던 7억8,000만원의 차입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시즌 참가가 결정됐지만 구단 지원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시즌 개막 때까지도 전용연습장이 없어 경희대, 명지대 등의 대학체육관은 물론 심지어는 ‘적진’인 서울 삼성의 전용체육관까지 전전, 눈칫밥을 먹으며 연습을 했다. 시즌 전 코리아텐더가 유난히 연습경기(12경기)를 많이 치른 것도 다른 팀의 연습 파트너 역할을 해야 체육관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습경기 성적은 10승 2패. 그러나 전문가들은 팀 사정이 열악한 코리아텐더를 하위권으로 분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청천벽력으로 구단은 운영자금을 위해 개막을 불과 이틀을 앞둔 10월 24일 팀내 유일한 억대 연봉선수인 포인트가드 전형수(24)를 울산 모비스로 2억5,000만원에 현금 트레이드해 버렸다.

자신에 넘쳐있던 초보 감독 이상윤(40)감독 대행도, 전형수도, 남은 선수들도 눈물을 끌썽거릴 정도였다. 이 감독대행에게 “꼴찌를 해도 좋다. 팀만 유지해 달라”고 통사정하던 구단.

그러나 시즌 뚜껑이 열리자 ‘오기로 똘똘 뭉친’ 코리아텐더는 어마어마한 태풍을 일으켰다.


스타 부재, 믿음의 농구로 극복

코리아텐더 선수단 12명의 연봉 총액은 6억7,400만원. 삼성 서장훈(4억3,100만원)과 주희정(2억5,000만원)의 연봉을 합친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샐러리캡(11억5,000만원)의 50%정도 밖에 소진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구단이다.

전임 진효준 감독의 뒤를 이어 지난 시즌 코치에서 올 시즌 감독 대행으로 승격한 이상윤 감독대행의 경우 월봉 6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7,200만원. 대행일 망정 어엿한 프로팀 사령탑이건만 웬만한 팀의 코치들 연봉 수준도 되지 않는다. 팀 사정상 코치를 둘 여력이 없어 주장 김용식(29)이 플레잉코치로 벤치에 앉는다.

코리아텐더의 주전 멤버인 정락영(25), 진경석(23), 황진원(24) 등은 웬만한 농구광이 아니라면 이름이 낯선 선수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스타 플레이어의 부재는 약점이 아니라 코리아텐더의 최대 강점이다. 이 감독 대행은 “자신이 뛰지 않으면 팀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주전들이 모두 20대 초ㆍ중반의 ‘젊은 팀’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코리아텐더 선수들은 경기 중 엄청난 운동량을 자랑한다. 코리아텐더의 경기에서는 상대 센터가 리바운드를 시도하면 세명, 네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에워싸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포인트가드 정락영은 수비 때면 상대 가드의 첫 패스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상대 코트 최전방까지 넘어가는 압박수비를 자주 구사한다. 스타플레이어가 있다면 결정적 고비에서 1대1 공격을 시키겠지만 조직력이 최대무기인 코리아텐더는 상대를 곤란에 빠뜨리는 패턴 공격(일정한 약속을 정해 놓고 공격하는 것)을 어느 팀보다 자주 구사한다.

종종 구단의 속을 썩이는 다른 팀의 외국인 선수들과 달리 코리아텐더 용병들의 성실함도 상승세의 원인이다. 지난 시즌 원주 삼보에서 뛰던 코리아텐더의 용병 안드레 페리(31)는 올 여름 코리아텐더 유니폼을 입게 됐을 때 한숨부터 쉬었다. 멤버들의 면면을 보니 포스트시즌 행은 꿈꿀 수도 없었고 개인기록이나 챙겨 돈이나 챙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자신의 태도를 180도 바꾸게 됐다. 엄청나게 열심히 뛰는 팀 동료를 보니 태업(?)은 꿈을 꿀 수도 없었던 것. 페리의 평균 득점은 지난 시즌 21.3점에서 올 시즌 15점으로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이 감독 대행은 “ 페리가 득점에 욕심을 내지 않고 골밑으로 상대 수비수를 유인해 외곽의 국내 슈터들에게 패스하는 모습은 지난 시즌과 크게 달라진 면”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다른 용병 ‘성실 맨’ 에릭 이버츠(28)는 여전히 비이기적인 선수의 대명사다. 지난 10월30일 대구에서 열린 지난 시즌 챔프 동양전에서는 발목 부상으로 쉬라는 벤치의 충고도 불구하고 테이프를 칭칭 감고 코트에 나서 18점을 올리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상대팀의 집중견제가 시작되면 돌풍이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할 수 있었던 원인은 첫째 선수 전원이 자기희생을 자처하고 동료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코리아텐더 선수들의 태도로 들어도 지나치지 않다.


돌풍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코리아텐더의 돌풍은 어디까지 갈까. 일단 현재로서는 이변이 없는 한 6강 플레이오프행은 무난하다는 전망이다. 12월9일 현재 코리아텐더의 잔여경기는 34경기. 반타작만해도 6강 안정권인 30승이 가능하다.

포인트 가드 정락영은 최근 경기당 5개씩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형수의 이적 공백을 메꾸고 있고 스프링리그 득점왕 출신 신인 진경석은 정확한 외곽 슛과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올 시즌 코리아텐더의 최고 스타는 슈팅가드 황진원이다. 중앙대 시절 송영진(창원LG), 김주성(원주TG), 박지현(대구동양) 등의 빛에 가렸고 프로 첫해인 지난 시즌 삼성에서 LG로, 다시 코리아텐더로 2번이나 유니폼을 바꿔 입는 등 운이 트이지 않았지만 코리아텐더의 주전으로 등장한 올 시즌에는 자신의 기량을 활짝 펼치고 있다.

게임 평균 16점, 3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포지션(슈팅가드)에 비해 큰 키(188㎝)임에도 민첩한 수비(가로채기 28개)로 ‘깜짝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어려운 구단 상황에?“열심히 뛰어야 좋은 조건으로 팀을 매각할 수 있다”고 투지를 불태우는 코리아텐더.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처럼 헝그리 투혼으로 무장한 코리아텐더의 돌풍의 끝은 어디일지 올 시즌 프로농구의 최대 화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왕구 기자

입력시간 2002/12/17 14:20


이왕구 fab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