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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김수철(上)

[추억의 LP여행] 김수철(上)

부모 속 깨나 썩이던 '작은거인'

국악과 록의 크로스 오버를 끊임없이 시도해온 김수철은 스스로를 한국 대중음악의 작은 거인에 올려 놓았다.

‘작은 거인’ 2집에서 들려 주었던 헤비메탈 사운드는 록의 본산인 영국에서도 찬사를 받는 등 한국 록의 ‘작은 혁명’으로 평가될 만큼 튀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그의 음악이 소중한 이유는 우리 가락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등 그의 히트 곡들은 대중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으며 ‘서편제’등에서 시도한 음악실험은 우리의 영화음악도 진일보시켰다.

1957년 4월 서울 중구 초동에서 보수적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김수철은 어린 시절 딱지치기, 쥐불놀이를 좋아한 개구쟁이였지만 서울을 벗어난 기억이 별로 없다. 산과 바다 등 자연에 대한 동경이 늘 마음속에 남았다. 그의 음악이 독특하고 무한대의 가락을 넘나드는 것도 상상의 날개를 펼치길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잔상이 살아나기 때문은 아닐까.

그가 음악에 빠진 것은 1972년 장충중 2학년 여름이었다. 형을 졸라 기타를 배우고 싶었으나 아버지 때문에 실패했고, 나중에 TV에 나온 가수들의 연주화면을 보면서 코드를 흉내내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기타를 익혔다. 그의 연주 모습이 독특한 것은 이 때문.

그 해 겨울 그는 ‘내 인형’이란 노래를 작곡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4월과 5월, 어니언스, 김세환 등의 대중가요를 한번 듣고 기타로 복기할 만큼 실력이 늘었다. 그 후 지미 헨드릭스, 딥 퍼플 등 진보적이고 비트 강한 음악을 들려주는 록그룹들에 열광하면서 전기 기타를 잡았다.

김수철은 “보수적인 가정이라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심야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기타 줄에 종이를 낀 뒤 소리를 상상하면서 매일 밤 코드를 잡았다”고 털어놓는다. 당시 그의 별명은 ‘김석봉’이었다. 용산공고에서 3인조 밴드 ‘FIRE FOX’를 결성했는데, 연주 중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습에만 열중한다고 해붙여진 연습벌레의 닉네임이었다.

그의 실력은 고 3때 최초로‘청소년을 위한 축제’에서 발휘됐다. 이 축제는 명동성당에서 최초로 록을 연주한 진기록을 남긴 기념비적 무대다. 그는 귀청을 얼얼하게 하는 하드코어 록사운드로 경건한 성당을 뒤집어 놓았다.

용기를 얻은 그는 형편없는 가발을 뒤집어쓰고 무교동의 클럽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로코 모션 등 팝 레퍼토리를 연주와 곁들여 노래하자 곧바로 OK사인이 떨어졌다.

김수철은 “방학 때는 매일 가발을 쓰고 ‘팔도강산’ ‘선비촌’에서 일당 2,500원을 받고 노래했다”며 “당시 무교동에는 통기타, 록 길이 따로 있었다. 다양한 음악을 실컷 부른 무교동 시절이 좋았다”고 했다.

노래만 고집하는 김수철에게 어머니는 ‘시험만이라도 보라’고 통곡했다. 그는 도저히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어 광운공대 전자통신과에 들어갔다. 대학 입학 후 4인조 밴드 ‘퀘스천’을 결성해 YMCA강당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 시절 김수철은 주관이 분명했던 핑크 프로이드의 정신에 매료되며 진보적인 음악에 경도되었다.

1977년 TBC 연포 해변가요제에 출전했지만 2차 예심에서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77년 여름 KBS라디오 ‘젊음의 찬가’는 첫 방송출연. 대학 입학 무렵에 작곡한 ‘내일’등 네 곡을 불렀는데, 이 방송을 들은 한 선배가 드럼 최수일(동국대), 키보드 김근성(고려대 고인돌의 멤버) 베이스 정운모(국민대)을 모아 “네 사람이 뭉치면 거인 같은 힘이 생길 것”이라며 그룹 결성을 제의해 1978년 말 4인조 록그룹 ‘작은 거인’이 세상에 나왔다.

그로부터 몇달 후 ‘작은 거인’은 문화체육관에서 대담하게 리사이틀을 개최, 대학가의 신흥 인기그룹으로 부상했다. 눈여겨보던 PD메이커 골든 하머니는 1979년 데뷔음반 ‘작은 거인의 넋두리’발표를 주선했다. 당시는 대학가요제의 열풍시대. 등수를 매기는 대회가 싫었지만 1979년 한양대에서 열린 ‘1회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출전했다.

동요 풍으로 작곡해둔 ‘일곱 색깔 무지개’를 하드 록 사운드와 깡충깡충 뛰는 무대매너로 선보이자 객석이 뒤집어졌다. 열광적인 반응으로 금상의 영예를 안자 방송출연 요청이 쇄도하며 김수철은 대학가 최고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당시 기타에 흠집이 날까 봐 벨트를 옆으로 맨 것도 곧바로 유행이 되었다”고 말한다. 79년 라디오 주파수를 기타 잭에다 연결해 국내최초의 무선 전자기타를 발명한 전자공학도 이종 사촌형과 매일 같이 어울려 기타를 쳤다.

그 즈음의 에피소드 하나. TV 음악프로 ‘젊음의 행진’에서 펄펄 뛰며 광적으로 공연하는 김수철의 모습이 나오자 함께 TV를 보던 아버지가 “뉘 집 자식인지 부모 속꽤나 썩이겠다”고 혀를 찼다. 민망한 그는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도망을 쳤지만 나중에 자막에 이름이 뜨면서 아버지는 화를 불같이 내면서 사복을 몽땅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입력시간 2002/12/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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