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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이야, 너는 전쟁이 재밌니?"

[비디오] "아이야, 너는 전쟁이 재밌니?"


■ 희망과 영광

영화에 처음 빠져들 때는 배우, 줄거리, 장르가 영화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된다. 감상 목록이 길어져 제대로 영화를 보고 배울 수는 없을까 하는 욕심과 갈증이 생기는 단계에 달했다면 감독별 영화 보기를 권한다. 이 계단도 얼추 다 밟았다는 자신이 들면, 영화사의 고전부터 차례로 훑어 내려오는 방법이 있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즐겨 보는 아마추어에게는 이 정도만 해도 고급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존 부어맨 감독은 영국 출신으로 영화 평론가, TV용 시사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활약하다가 영화 감독이 되었다. 국내에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 전설을 장대하게 담아낸 <엑스칼리버>(1981년)의 개봉부터다.

<서바이벌 게임>(72)은 비디오로만 출시되었는데, 대형 화면으로 다시 보고픈 수작이다. <엑소시스트 2> <자도즈> <비욘드 랭군> <에머럴드 포레스트>로 평론가의 눈에 벗어났던 부어맨은,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제너럴>(98)로 명성을 되찾는다.

부어맨의 과거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마법이나 심령으로 인한 긴장 관계를 그린 영화 (<엑스칼리버> <자도즈> <엑소시트스 2>)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 (<에메랄드 포레스트> <서바이벌 게임>).

뒤늦게 dvd로 출시된 <희망과 영광 Hope and Glory>(15세, 스펙트럼)은 2차 대전을 맞은 런던의 한 가족 이야기다. 불가항력에 직면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 있어서는 위의 두 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희망과 영광>은 1987년 작으로, 부어맨이 자전적 경험을 직접 시나리오화해서 아카데미 시나리오상 후보에 올랐다. 작가로 짐작되는 성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지만, 정작 영화의 시점은 9살 소년이다. 비행기가 무차별 폭격을 가할 때마다 지하 방공호로 대피해야하고, 집이 폭격을 맞아 거처할 곳이 없어졌는데도, 9살 소년에게 전쟁은 별스럽고 신기한 경험으로 느껴진다.

다른 이의 불행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소년. 잿더미가 된 학교를 보며 환호성을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 위로 “감사해요 히틀러. 내 생애 가장 기쁜 사건입니다”라는 독백이 흐를만큼, <희망과 영광>은 전쟁을 거대한 모험으로 여기는 어린이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전쟁을 규모가 큰 놀이로 받아들이는 어린이의 시각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태양의 제국>의 소년이 부모와 헤어져 혹독한 수용소 생활을 겪으면서, 천진함을 잃은 소년으로 부모와 재회하는데 비해, <희망과 영광>의 소년에게는 전쟁이 성장의 통과 의례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희망과 영광>에는 낙천적인 대가족과 이웃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일까? 제목 <희망과 영광>은 전쟁 상황과는 동떨어진 과장이지만, “런던 공습기의 경험을 이처럼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그 때가 소년에게는 희망과 영광의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흑백의 가족 사진 위로 스윙 재즈가 흐르면서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영화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극장에서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도, 방독면 착용 연습을 하면서도 즐겁게 논다.

9살이 된 빌(세바스티안 라이스 에드워드)은 “멋진 날씨에 멋진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회상한다. 굳이 참전하겠다는 아버지(데이비드 헤이만)를 보낸 후 빌과 어머니(사라 마일즈), 누이와 여동생은 오랜 이웃과 궁핍하지만 즐겁게 지낸다.

구제 옷을 갈아입는 여자들을 훔쳐보고, 폐허에서 전쟁 놀이를 하며, 누이가 캐나다 군인과 사랑에 빠지고, 어머니가 옛사랑과 애달픈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지켜보는 빌. 집이 폭격을 맞아 괴팍한 외할아버지 댁으로 피신한 빌은, 이모들과 강가에서 전원 생활을 만끽한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 촬영, 시나리오, 미술상 후보에 올랐던 <희망과 영광>에는 아쉽게도 서플이 전혀 없다. dvd로 출시된 <엑소시스트 2> <제너럴> <테일러 오브 파나마> <엑스칼리버>를 보며 부어맨 감독의 영화 세계를 가까이 느껴보는 수밖에.

옥선희 비디오ㆍdvd 칼럼니스트 oksunny@ymca.or.kr

입력시간 2002/12/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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