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팔손이

누구나 식물을 보면 먼저 가지는 생각이나 느낌이 있다. 큰 키의 나무, 여린 풀, 좋은 계절에 피어나는 꽃, 소박한 우리 식물과 강하고 화려한 서양의 원예종…

12월인 지금도 따뜻한 남쪽 어딘가에 꽃을 피워 갈 곳을 잃은 곤충을 불러들이고 있을 팔손이가 바로 이런 생각들을 모두 바꾸어 놓는 식물이다. 또한 자연의 무궁무진함을 대함에 있어서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우선 11월에서 12월에 걸쳐 꽃을 피워내니 겨울 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고, 실내에서 키우는 관엽식물들처럼 상록성인 잎이 넓고 반짝이며, 우유 빛의 꽃송이들은 풍성하기 이를 데 없어 외래식물로 착각하지만 분명 이 땅에 자생지를 두고 자라는 우리의 자생식물이다.

보통 키는 커야 허벅지를 넘기지 않는다. 조금 억센 풀이려니 생각하지만 이 역시 목질을 가진 나무이니, 이를 두고 상식적이지 않은 식물이라고 해야 할까?

팔손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작은 키 나무이다. 자생지에서는 4m까지 자라기도 한다고 한다. 고향은 통영 아래 펼쳐진 남쪽의 섬들. 그 중에서도 한산면 비진도라는 섬의 팔손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이외에 한산도, 원랑도, 마안도 같은 섬들에서 자란다. 옛 기록에는 이런 자생지의 팔손이들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를 서술되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채취하는 바람에 풍성한 군락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자생지가 있는 먼 뱃길을 따라가지 않아도 남쪽지방에 가면 담장이나 대문 옆, 잘 가꾼 마당의 한 켠이나 공원에 자리를 잡고 서서 꽃을 피우고 잘 자라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참 꽃을 피울 요즈음에 가 보면, 미처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마냥 떠돌아다니는 남쪽의 철없는 벌이나 파리까지 찾아와 붕붕거린다.

팔손이란 이름은 왜 붙었을까? 어린 아이 팔뚝만큼 큰 잎이 여덟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곱 개 혹은 아홉 개로 갈라진 칠손이나 구손이도 있다. 비진도에서는 이 식물을 두고 총각나무라고 부른다.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버리고 다시 바라보면 잎새처럼 넙적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투박한 섬 총각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하다.

꽃말은 ‘비밀’이다. 섬 총각의 가슴엔 섬마을 분교의 여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비밀이라도 숨어 있었던 걸까?

이 즈음 이 너른 잎들은 꽃들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한 배려 인 듯 아래로 약간 처지고 그 줄기의 끝에서 꽃들이 뭉쳐진 줄기가 흰 기둥처럼 올라와 펼쳐진다. 꽃 한 송이는 크기를 말하기 불편할 만큼 작지만 이런 꽃들이 공처럼 둥글게 모이고 다시 원추형 꽃차례로 달려 온 주위를 환하게 한다. 꽃이 달렸던 자리에 달리는 녹두 알만한 둥글고 까만 열매도 푸른 잎과의 조화를 멋지게 이루어 낸다.

팔손이는 생약이름으로 팔각금반이라고 부른다. 진해, 거담, 진통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하나 성분 속에 독성이 있어 의사의 지시 없이 쓸 수 없는 식물이다. 잎을 우려낸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면 류머티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공주의 반지를 몰래 끼워 보았다가 그 손가락을 감추느라 팔손이가 되어버렸다는 전설을 가진 이 특별한 남녘의 식물이, 찬 날씨로 움츠려 들었던 우리의 마음을 조금은 넉넉히 해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2/12/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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