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사물에 숨어있는 본질찾기


■ 탁자위에 세계
(리아 코헨 지음/하유진 지음/지호 펴냄)

일요일 아침. 보스턴의 '어떤 날'이라는 카페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우뚱거리는 나무 탁자위에는 두툼한 일요일판 신문 뭉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담긴 커다란 유리잔이 놓여 있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고, 등장하는 것들도 일상적인 물건이다. 그러데 의문이 생긴다. 그것들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커피 종이 유리잔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냥 이야기하기 쉽게 선택된 것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해도 상관이 없다. '사소한 것들이 빚어내는 기적- 한장의 신문, 한 자의 커피도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라는 이 책의 부제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3명의 노동자를 등장시킨다. 벌목공보다는 "숲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32세의 브랜트 보이드는 캐나다 뉴브런즈윅의 플럼워십에 산다. 미국 오하이오주 랭카스터의 루스램프는 59세로 유리공장 선별포장실의 밤 교대 근무 책임자다. 15년재 이 일을 하고 있다. 26세인 바실리오 살리나스 마르티네즈는 멕시코 오악사카의 풀루마 이달고에 잇는 커피 농장에서 일을 한다. 저자는 이들의 노동과 가족, 주변 풍경을 통해 종이 유리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들여다 본다. 마치 비디오 카메라로 찍듯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각각의 역사도 이야기한다. 유리와 종이, 커피의 진정한 발견자는 번개와 말벌과 염소라는 것이다. 4,000~5,000년이나 된 유리의 역사, 105년 중국의 채륜이 발명한 종이 제조법과 한국 승려 담징에 의한 일본으로의 전파, 커피의 대중화를 이룬 17세기 중반 커리하우스의 모습 드잉 펼쳐진다.

저자가 알고 싶은 것은 사물에 녹아있는, 또는 숨어있는 본질적인 그 무엇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포장되거나 끈으로 묶인 상태의 물건을 원하며 또 얻는다. 그리하여 원재료와 이것과 관련된 사람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 그들만의 진실된 이야기들은 감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상품으로서 물신화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것들이 교환가치라는 입장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생각이다.

따라서 가격표라는 겉포장 아래 들어있는 모든 상품들은 해독이 임박한 비밀문자이며,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그것을 만든 일꾼들과 그것이 만들어진 상황에 관한 이야기속에 들어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유리잔은 실용성을, 커피는 현대적 세련을, 신문은 시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체성 이면에는 뭔가 좀 더 근본적인 것이 함유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가격과는 별개로 순결무구한 욕망들로 이루어진 계보라는 것이다.

유리잔 어딘가에는 냉각가마 사이를 거드름을 피우며 오가고, 봉급에서 십일조를 떼어내며, 자신의 찻잔에다 콩을 키우고, 늑대와 대화를 나누는 루스가 숨어있다. 커피의 어디쯤에는 라드기름 깡통으로 커피콩을 퍼담는 바실리오가 숨어있다.

그 옆에서는 그의 아들 딸들이 열매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도우며, 라임 열매에서 벌레를 흔들어 떨어내고, 개들이 넓은 안마다에 펼쳐놓은 커피콩을 살금살금 밟고 지나간다. 신문지 어딘가에는 매섭게 추은 아침 벌목기에 기름칠을 하고, 조류도감에서 딱다구리를 찾아보며, 집에서 피클과 과일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하루가 끝날 무렵 딸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느느브랜트가 숨어있다. 유리잔과 커피와 신문을 앞에 두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거나 떠오리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극히 일부를 살펴보았을 뿐이라며, 이들 사물의 어느 구석에서도 아직 만나보지 못한 어머어마한 수의 일꾼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당신의 눈길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피어난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책을 덮으면 파블로 네루다의 시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가 왜 책을 열자마자 실려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모든/사물들을/나는 사랑한다/그것들이 정열적이거나/달콤한 향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모르긴 해도/이 대양은/당신의 것이며/또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유리잔들, 나이프들/가위들…/이들 모두는/손잡이나 표면에/누군가의 손가락이 스쳐간/흔적을/간직하고 있다/망각의 깊이 속에/잊혀진/멀어져 간 손의 흔적."

이 책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고 하고, 미시사 연구서 같기도 하다. 특장이지만 이 때문에 읽는데 다소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하다.

입력시간 2002/12/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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