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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아날로그 세대의 선택은?

국민의 선택을 며칠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죽을 맛이라고 한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선거 양상에다 박빙의 승부까지 겹쳐 유권자들은 안방에서 느긋하게 선택의 순간을 즐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선 후보들과 그 진영은 변덕 심한 민심과 시시각각 변하는 지지율에 피가 마르고 속이 탄다.

숨이 막히기는 앞서가는 후보도, 추격하는 후도도 마찬가지다. 92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른 빌 클린턴 후보의 선거 참모 조지 스테파노폴러스는 정치 회고록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마지막 순간에 유권자들이 새로운 인물에게 기회를 주기보다 익숙한 악마에게 돌아설 지도 몰랐다. 우린 그해 봄 영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중략) 제임스(제임스 카빌 클린턴 대통령 정치 고문)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중략) 우리의 걱정은 선거 전주 목요일, 절정에 달했다. 부시(대통령)는 그 전날 오하이오 순회 유세를 하러 갔다.

그리고 밤샘 여론조사 결과 만 하루만에 17포인트 앞서던 것이 오히려 3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선거일 전에 광고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우리는 여론조사로 뒷받침된 살해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번 대선의 특징중 하나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각 후보 진영이 여론조사에 목을 맨 일이다. 선거전략은 물론 유세지역 선정도, 광고문구도 여론조사에 따라 이리저리 바뀐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미리 읽는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젊은 노 후보가 이 후보보다 훨씬 앞선 듯하다. 20~30대의 디지털 세대를 지지층으로 하는 노 후보의 유세장이나, 선거광고, TV지원유세, 기자회견 등은 마치 CF를 보듯 깔끔하고 감성적이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광고로 내보내고, 즉흥적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입영하는 장정을 여자친구들과 함께 배웅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고고 스텝을 밟는 장면 등은 92년 클린턴의 대선 캠페인을 다시 보는 듯하다. 섹소폰을 부는 클린턴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여전히 아날로그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종일관 부패정권 청산, 정권교체 등을 부르짖는가 하면 노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이슈를 뒤따라 가느라고 헉헉댄다. 상대는 ‘새 정치’ ‘희망의 정치’를 이야기하는데, 국정원 도청이니 ‘DJ 양자’니 하는 네거티브 전략에 매달리니 측은하다. 아직도 세상이 크게 바뀐 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세상이 바뀌긴 바뀐 걸까? 투표날이 가까워질수록 부동층이 느는 ‘이상 기류’는 세상이 바뀐 탓일까? 아니면 아날로그 세대가 몸을 사리기 때문일까? 후보를 내지 못한 충청권은 그렇다 치고 대구ㆍ경북권, 수도권에 부동층이 늘고 50~60대 중ㆍ노년층이 찍을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니, 이런 선거판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세대대결이 뚜렷한 이번 대선에서 50~60대는 이 후보의 지지층이다. 그간의 표심을 보면 대구ㆍ경북권도 이 후보의 표밭이다. 이들이 부동층화한 것은 노 후보로 지지를 옮겨가는, 그만큼 세상이 변해가는 과정이거나, 몸조심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민주당은 전자에, 한나라당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막판에 터져나온 미국의 북한 화물선 나포사건이나 북한의 원전 전면 재가동과 같은 ‘북풍’은 어디로 향할까? 아날로그식 판단으로는 이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전개다.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가 노 후보에게 득표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주변에는 “이젠 그 따위 ‘북풍’에 국민이 현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아날로그 세대가 크게 늘었다. “그런 걸 고질병이라고 합니다. 비무장지대의 철책선도 걷히는 판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 정도라면 세상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정치학 용어 중에 ‘정초(定礎ㆍ주춧돌)선거’(founding election)라는 게 있다.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는 계기가 된 선거를 의미하는데, 그 이후의 선거부터는 계속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된다. 만약 노 후보가 승리하면 이번 선거도 ‘정초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서 여촌야도와 독재-민주화 구도란 경향이 97년 대선으로 사라졌듯이 지역색, 색깔론, 보수-진보 등 지금껏 우리의 선거판을 지배해온 많은 경험칙은 사문화되고 없어질 것이다. 또 클린턴이 92년 대선 승리로 미국의 전후세대를 사회주도층으로 끌어올렸듯이 노무현 정권도 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를 ‘포스트 민주화-통일 주도세력’으로 끌고 나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이제 며칠 후면 알게 된다.

이진희 부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2/12/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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