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더균의 개그펀치] 돼지고기 두근

사실 연예인이 되어서 진정한 스타로 대접을 받으려면 CF 모델이 되어야 한다. 방송 출연료만으로는 연예인으로서 품위 유지하는데 드는 돈을 충당하기가 힘든 데다 한 방으로 일어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친구집에 얹혀 살다가도 CF 하나 찍어서 꿈에 그리던 마이카족이 되고 근사한 원룸이라도 얻어 독립을 실현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톱스타들이야 억대의 몸값을 받으며 CF 모델로 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연예인들은 작은 돈에도 황송해 하며 CF 모델을 한다.

얼마 전에 개그우먼 C모양에게 전단지 광고모델 제의가 들어왔다. TV 광고보다는 모델료가 형편없이 낮지만 그래도 생각하지 않았던 돈이 생기는 일이라 C모양은 뛸 듯이 기뻐했다. 외국에서 수입한 개 사료를 선전하는 전단지 광고인데, 평소에 개를 좋아하던 C모양은 “이런 좋은 일이 있을려고 개를 그렇게 좋아했나 보다”는 얘기까지 하며 “돈을 받으면 한번 쏘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다음날 만난 C모양이 낙심한 표정으로 이번 전단지 광고모델을 할까말까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C모양은 흥분한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 글쎄, 개 사료 광고 모델인데, 개를 좋아하시니까 모델료를 1년 치 개 사료로 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하는 거 있죠”

결국, 모델료를 개밥으로 주겠다는 얘기였다. 참 별일이 다 있는 연예계다.

그리고 연예인들이 바쁜 이유는 꼭 방송 스케줄 때문만은 아니다. 방송으로 인기를 얻으면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 많아지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무진장 친한 척하며 맥주 잔이라도 부딪쳐야 할 때가 많다.

각종 행사에 무보수로 뛰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런티를 받는 일도 많다. 인기가 많을수록 물론 보수도 높아진다. 회갑이나 칠순잔치는 물론이고 각 업소의 개업이라든지 홍보행사, 창업파티 등등 그야말로 연예인들의 짭짤한 부업거리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연예인은 벤처회사 개업파티를 진행해주고 출연료 대신 주식을 받았다가 나중에 그 주식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대박이 터지는 바람에 돈방석에 앉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나도 방송국에 있다 보니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연예인 섭외를 부탁 받기도 한다. 대부분 칠순잔치 때 부모님들이나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부르기를 원하는데 내가 적당한 출연료를 얘기해 주면 예상보다 높았던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방송3사의 프로그램에 MC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유재석이 완전 무명이었을 때의 일이다.

방송에 데뷔는 했지만 번듯한 출연프로도 없이 방송국 언저리만 맴돌고 있을 땐데 뜻밖에도 행사섭외가 하나 들어왔다. 친구의 삼촌이 운영하는 정육점을 홍보하는 행사였는데 그래도 연예인이라니까 부탁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요즘이야 웬만한 동네 구멍가게에도 여러 가지 이벤트 행사를 열어 늘씬하고 예쁜 도우미 언니들을 동원해서는 하루종일 신나는 댄스음악을 틀어놓고 현란한 춤동작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불러들이지만 당시엔 정육점을 선전하는데 연예인까지 부른 건 확실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무명이었지만 유재석은 혼신의 힘을 다해 ‘생쑈’를 해가며 행사를 이끌었고 난생 처음 박수와 환호성도 받아봤다. 일이 끝난 후, 출연료는 얼마나 주려나 잔뜩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의 삼촌이자 정육점 사장님은 ‘수고했네’ 하며 뭔가를 손에 쥐어주더란다.

집에 돌아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확인해보니까 신문지에 둘둘 싼 돼지고기 2근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첫 행사의 첫 출연료가 돼지고기 두근이었던 셈이다.

입력시간 2002/12/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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