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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기에도 원칙과 예절이 있다"

하영은 누드모델협회장…내면연기 중요한 순수예술

12월 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누드모델협회 사무실. 점심 시간을 조금 앞두고 한 남성이 조심스럽게 협회 문을 두드린다. 다음날 있을 실전에 대비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다.

잠시 후, 남성은 갖가지 동작을 선보이는 강사를 따라 포즈를 취하기 시작한다. 야릇한 포즈가 나올 때면 쑥스러울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두 눈을 반짝거리며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있지만 조만간 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직장은 모델 일을 하기 위해 다니는 임시 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협회에 찾아와 포즈나 현장 요령 등을 배운다”며 “조만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델일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누드 모델이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업 주부는 물론이고 전문직 여성, 심지어 샐러리맨 남성들까지 속속 이 같은 대열에 동참하는 추세다. 누드모델협회에는 “어떻게 하면 모델이 될 수 있냐”는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기현상이 극심한 불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분석한다. 이명구 성인문화 평론가는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데다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젊은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까지 지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직여성 입문 늘어

누드 모델 입문처라고 할 수 있는 한국누드모델협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누드 모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지금까지 가입한 회원만 200명이 넘는다. 물론 이같은 수치는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모델까지 합치면 적게 잡아도 700명은 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누드모델의 전직 또한 화려하다. 대학생에서부터 주부, 60세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이다. 최근에는 스튜어디스, 간호사, 에어로빅 강사 등 전문직 여성들의 입문이 늘고 있다.

하영은(34) 누드모델협회 회장은 “누드 모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젊은 여성들로부터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여러 절치를 거친 테스트 후 합격하면 누드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은 10대들의 문의도 많다는 점이다. 이 경우 보통 카드 빚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적당히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게 협회측의 설명이다.

하 회장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누드 모델을 시켜달라’고 떼를 쓸 때가 가장 당황스럽다”며 “누드 모델은 만18세 이상만 가능하기 때문에 돌려보내지만 요즘 10대들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물론 옷만 벗는다고 해서 무조건 누드모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로 누드모델 경력 11년째인 하 회장은 “옷만 벗으면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모델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고 말했다.

실제 누드모델협회 회원 200명 중 고정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열손가락 내외다. 나머지는 유동적인 편이다. 반짝했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이곳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하 회장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직업관 부재를 지적한다. 옷만 벗으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의식이 지나치게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사회적 인식 변해야

그러나 옷을 벗는 데에도 나름대로 ‘원칙’과 ‘예절’이 있다는 게 하 회장의 생각이다. 요컨대 벗는다고 해서 다 벗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가락에서 발뒤꿈치 근육 하나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미세한 동작이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성한 체력도 누드모델로 대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한가지 포즈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하지 않는 수치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돈만 보고 쫓아온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내용이 ‘소귀에 경읽기’다. “옷만 잘 벗으면 되지 뭐가 그렇게 복잡하느냐”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요즘 하 회장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일거리가 부쩍 줄어버린 것이다. 누드모델이 활동할 수 있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림 모델에서부터 사진 모델, CF 및 영화 대역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업계가 부쩍 위축되고 있다. 하 회장에 따르면 누드 모델의 수입은 나라의 경조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연초나 연말에는 물량이 거의 없다. 특히 대선과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밖에도 주식이 폭락하거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거리가 거의 없다.

물론 이 경우 시간이 해결해준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누드모델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은 그렇지 않다.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여전히 ‘누드 모델=인터넷 성인물의 모델’ 정도로 생각한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작가들조차 이같은 편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 회장은 “현장에서 작가들이 음란물에서나 볼 수 있는 ‘에로틱한 포즈’를 요구해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몸매ㆍ외모 중시는 잘못된 시각

작가들이 ‘쭉쭉빵빵’ 모델만을 선호하는 점도 그렇다. 솔직히 이럴 때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누드는 얼굴이나 몸매 뿐 아니라 눈빛 하나에서도 이미지가 바뀔 수 있는 순수 예술이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가슴이 적은 모델이나 뚱뚱한 모델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몸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게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이 외모가 좋은 모델만을 선호한다.

하 회장은 모델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을 갈고 닦는 것만이 이같은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누드 모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 회장은 “얼마전 누드모델 선발을 미끼로 여대생을 성폭행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며 “협회를 통해 입문할 경우 이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

입력시간 2002/12/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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