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거리 자른 부시, 얼굴마담 전진배치

美 경제팀 스노-프리드먼 투톱체제

“Don’t pick fights” (싸움 좀 일으키지 마시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말 상원 연설을 앞둔 폴 오닐 전 재무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내뱉은 말이다. 오닐 장관이 하원에서 경기부양책의 규모를 1,000억 달러로 책정, 통과시킨 데 대해 “쇼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미국 언론은 물론 집권당을 발칵 뒤집어 놓자 부시 대통령이 분노, 장관을 질책한 것이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에서, 그것도 자신이 최고 당면과제로 여기고 있는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사안을 놓고 경제수장이 딴죽을 걸었으니 오닐 장관이 얼마나 부시 대통령의 눈밖에 났을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예정된 퇴진

12월 6일 오닐 장관의 경질 소식이 알려지자 전세계 외신들은 부시 대통령이 그동안 오닐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워싱턴 포스트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 회장 출신의 오닐을 일약 재무장관에 기용했던 부시 대통령이 그 대가로 지난 2년 간 전임 재무장관이었던 ‘루빈의 망령’에 시달렸다고 보도했다.

오닐은 월스트리트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다. 온통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시세 전광판 앞에서도 그는 ‘펀더멘털’ 타령만 되풀이해 투자자들의 미움을 샀다. 제조업 출신으로 금융에 무지한 그를 두고 미국에는 재무장관은 없고 상무장관만 2명 있다는 농담이 회자됐다.

오닐이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먼저 물러나는 장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오닐의 사임 소식은 급락하던 주가를 급반전으로 돌려놓을 만큼 호재가 됐다.

그는 심지어 공화당 상원 의원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9ㆍ11테러 이후 미국 경제를 논의하는 상원 청문회에 한번도 초청받지 못했다. 금융의 생리와 현안을 무시한 그의 좌충우돌식 발언은 국제 금융시장의 최대 돌출변수였다. 부시 측근들은 마이크 앞에 선 그를 두고 “총을 갖고 노는 어린이”에 빗댔다.

여기에 백악관과 의회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로런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보좌관도 일을 그르치기 일쑤였다. 미국 언론들은 린지 수석이 도발적인 태도와 이상주의에 치우쳐 의회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켰다고 혹평했다.

두 사람의 스타일에 지친 부시 대통령에게는 새 경제팀을 그리는데 확고한 인사원칙이 있었다. 경제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시장(market)’의 신임을 얻으면서 신중한 화법으로 의회와 언론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전제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닐과 린지와는 정반대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실물경제와 금융의 이상적 결합

결국 부시 대통령은 존 W 스노 CSX사 회장을 신임 재무장관에, 스티븐 프리드먼 전 골드만삭스 회장은 백악관 경제수석보좌관에 낙점했다. 스노-프리드먼 투톱 체제에 대해 백악관은 메인 스트리트(실물 경제)와 월 스트리트(금융)를 잇는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스노 신임 재무장관은 학계에서 출발해 경제부처와 기업현장을 두루 거친 경제 전문가로 실용적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얻고 있다.

오하이오주 톨레도 출신으로 조지워싱턴대 법학석사와 버지니아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메릴랜드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교수를 역임한 스노 장관은 제럴드 포드 미 행정부 시절에는 교통부 차관보를 역임했으며 89년부터 동부 지역 최대 철도회사인 CSX 총수직을 맡았다.

부시 대통령이 그에게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자리를 맡긴 것은 무엇보다 의회와 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폭넓은 인간관계에 점수를 줬기 때문. 실제로 그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과도 격의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실물경제 인사로 정평이 나 있다. 골수 공화당원이지만 그에게 개인적인 반감을 품는 민주당 의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언론들도 스노 장관의 발탁은 오닐 전 재무장관이 부족했던 기술, 즉 TV와 의회에서 부시 정책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인간관계에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던 월 스트리트와의 신뢰 회복은 프리드먼 신임 경제수석의 몫이다. 프리드먼 경제수석은 30여년 이상 월스트리트에서만 잔뼈가 굵은 정통 금융맨이다.

새로운 경제팀의 진용을 바라보면서 부시 대통령은 물론 미국 경제전문가와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른바 ‘루빈효과’다. 1992년 경제수석에서 95년 재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루빈 장관은 당시 월스트리트에는 마법사와 같은 존재였다.

월스트리트의 절대적 신뢰를 받았던 그는 경제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예지력으로 사상 최대의 호황장을 이끌어내면서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재선의 기쁨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월스트리트는 내심 프리드먼 경제수석에게 기대를 거는 눈치다. 골드먼삭스에서 20년동안 루빈과 한솥밥을 먹은 그를 두고 월스트리트는 ‘공화당의 루빈’이라는 신뢰를 보내고 있다.


부시 감세정책 메신저역할

그러나 그들의 행동반경에는 적지않은 제한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백악관은 경제팀 교체와 관련, 누가 후임으로 임명되든 기존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정책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를 정확하게 전달할 ‘메신저’에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경제팀의 전격 교체는 경제적 판단보다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경제팀 교체가 전쟁에는 이기고 경제를 다스리지 못해 재선에 실패한 아버지 부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부시 대통령의 대선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부시 대통령의 준비된 대선용 경제정책을 말썽없이 효과적으로 대변해 줄 얼굴마담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당장 새로운 경제팀은 내년 초 부시 대통령이 내놓을 야심찬 감세정책을 의회와 투자자에게 설득하는 작업을 맡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 연두교서에 1조3,550억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면세 및 배당액에 대한 기업 감세 방안 등을 통해 경기부양을 이끌어낸다는 감세안은 부시 대통령을 재선 성공으로 이끌 ‘히든 카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스노 재무장관과 프리드먼 수석이 오래 전부터 감세정책과는 배치되는 ‘균형예산론’을 신봉해 왔다는 점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스노 장관은 1999년 CNN과의 회견에서 감세는 특별히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며 세제개혁이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밝히는 등 재정긴축에 바탕한 균형예산 입장을 견지해왔다.

워싱턴포스트는 10일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조차 이들이 예산적자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표명해 왔던 점에서 과연 감세정책을 알릴 부시 정권의 메신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병주 기자

입력시간 2002/12/23 11:19


김병주 bj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