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기동대 24時, 얽힌 세상 푸는 강철미인

영하의 거리 녹이는 흰 모자의 천사들… 40대1 경쟁 뚫은 인재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종로경찰서 4층, 이곳은 금남(禁男)의 구역이다. 서울지방경찰청기동단 제1기동대 98제대 소속의 여경 기동대원들의 근무지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2팀 소속 여자 순경 12명이 단정한 제복으로 갈아입는다. 머리에는 흰 모자를 쓰고 손에는 하얀 장갑을 낀다. 퇴근길 교통 정리에 나서기 위해서다.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후반, 여고를 막 졸업한 듯한 앳된 얼굴도 눈에 띤다. 제복을 걸치지 않았다면 이웃집 여동생들로 느껴질 것 같은 친근한 모습의 어여쁜 처녀들이다.

12명은 여경기동대 2기 동기생들이다. 지난 4월 여경기동대에 선발된 새내기 순경들이다. 10월 중순 서울 종로경찰서 여경기동대에 배치됐다. 첫 임무가 교통지도다.


고된 교통정리, 시위현장에도 투입

이들의 교통 정리 근무지는 교통 혼잡이 극심한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씩 매캐한 자동차 매연이 가득찬 거리에서 출퇴근으로 한창 바쁜 차량들을 정리한다. 매서운 겨울철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지만 미소를 머금고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향해 흰 장갑의 양손을 흔든다.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 한 시간을 쉬지 않고 양손을 흔들고 나면 온 몸이 뻣뻣해져요. 마치 로보캅이 된 것처럼 몸이 굳어지는데, 그래도 내 손짓 하나로 얽힌 차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뿌듯해요.”

백희정(26) 순경의 말이다. 몸은 고달프지만, 시민들과의 만남은 늘 즐거운 일이다. 버스 기사 등 낯선 운전자들과도 밝은 미소로 눈인사를 나누다 보면 영하의 날씨에도 마음은 한없이 포근해진다. 이따금씩 “추운데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냐”고 건강을 염려해주는 오토바이 운전자들도 만난다.

이제 경력 두 달의 초보 교통 순경이라, 당혹스러운 경험도 많지만 의젓하기만 하다. 전송희(24) 순경은 “앰뷸런스가 출동한 긴급 상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했다”며 “앞으로 각종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체계적으로 익힐 것”이라고 다짐했다. “힘든 일을 괜히 선택했다는 후회는 들지 않느냐”고 묻자 “막연히 제복 입은 모습을 동경했다가 실제로 거리에 나와 많은 시민들을 대해 보니 생동감마저 느껴져 좋다”고 이지영(25) 순경은 말했다.

아직은 좀처럼 ‘단속’에 나서지는 않는다. 원활한 교통 소통을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교통신호를 무시하는 거리의 무법자들을 만나면 쫓아가 응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단속으로 인해 많은 시민들의 발이 묶일까봐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곤 한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 여경의 얼굴에다 담배연기를 뿜어대고는 내빼는 악질 운전자도 있다.

집회나 시위가 있는 날에는 거리로 나서 ‘폴리스 라인’을 잡는다. 현장의 질서 유지와 교통 관리, 노약자 보호 등이 주 역할이다. 시위대와 경찰들 사이에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아도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과열된 시위대도 이들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면 대개 싸워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선다. 대립된 감정을 풀면 정겨움이 솟아나는 법이다.

“농민대회가 열렸을 때였어요. 시골에서 올라오신 아저씨들이 저희들을 보고 꼭 딸 같다며 배 고플 때 먹으라고 떡을 건네주셨어요. 며느리 삼고 싶다는 분도 계실 정도로 너무 예뻐해 주시더라고요.”

여경들을 직접 대해본 시민들은 대개 여성스러움에 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막연히 여경이라면 우락부락한 선머슴형 스타일을 떠올린다. 이지영 순경은 “여경 중에는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손색 없는 미인들도 많다”며 “경찰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얕잡아 보는 것은 금물이다. 여경 제복을 입기까지 모두 6개월간 중앙경찰학교에서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쳤다. 기본 소양교육은 물론, 21km 산악행군과 강도 높은 사격 훈련 등 경찰에게 요구되는 각종 기술을 모두 익혔다. 여경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는 일체의 외출이나 외박도 없이 여경 숙소에서 먹고 자며 훈련했다. 훈련이 끝나면 전원이 태권도, 검도, 합기도 등의 무술 유단자가 된다.


봉사정신과 자부심으로 ‘똘똘’

기동대원들은 어렵게 탄생한 여경 중에서도 더욱 탁월한 기량을 나타낸 인재들이다. 무려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 당연히 자부심도 대단하다. 원혜련(27) 순경은 “기동대원으로 수도 서울을 지킨다는 긍지가 높다”고 말했다.

왜 하필이면 경찰이 되려고 했을까? 그 동기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활동적인 특성을 살리면서 공익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경찰시험을 준비해 여경이 된 팀의 막내인 최은하(21) 순경은 “강원도 강릉에서 학교를 다니던 고 2때, 폭설 때문에 집에 가기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경찰아저씨가 친절하게 집까지 데려다 준 경험을 잊을 수 없어 지원했다”고 귀띔했다.

광주과학기술원 연구원 출신의 이은영(25) 순경은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게 우선 좋고, 특히 기동대원은 일반 경찰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니까 더욱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마음씨도 따뜻하고 착하다. 매주 수요일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서울 노원구에 있는 장애인 학교인 ‘정민학교’를 방문한다. 몸이 불편한 학생들의 수업을 돕고, 밥도 먹여준다. 어려운 이웃에 봉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찾아갔다가 오히려 배우고 돌아올 때가 많다.

이은영 순경은 “장애가 덜 심한 아이들이 조금 더 심한 아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 받았다”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깊은 사랑을 베풀겠다”고 말했다.

험한 경찰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이들이라 다소 미숙한 점도 눈에 띄나 발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경기동대 2팀장인 이은정 경장은 “대원들은 워낙 우수한 인재들이라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업무를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틀림없이 고된 업무를 이겨내고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경찰로 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 '캡'… 고학력자 지원 봇물

여경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 최근 여경 20명을 뽑는 ‘2002년도 여자 순경 2차 모집’에는 무려 1,138명이 지원, 56.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것은 물론, 경찰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확인된 것이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여파로 공직 선호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8년의 69대 1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원자의 학력도 대학재학-졸업 이상이 85%로 고학력화 추세도 뚜렷하다.

여경이 되기 위한 기본 자격은 키 157cm, 몸무게 47kg, 시력 0.8 이상의 미혼 여성이다. 나이는 18세 이상 27세 이하.

시험은 신체검사와 필기시험(경찰학개론 등 5과목), 체력검정, 적성검사, 면접 등 모두 5단계를 거쳐야 한다.

99년에 여경시험에 낙방한 경험이 있는 원혜련 순경은 “한 번 떨어진 후 계속 미련이 남아 다시 도전했다”며 “경찰시험도 정보 싸움이다. 일단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발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가산점 부여 혜택이 있는 관련 자격증 등을 차근차근 따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12/23 14:08


배현정 jh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