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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그레이존

인간성을 상실한 역사의 희생자

나찌에 희생된 유태인에 관련된 영화는 참으로 끈질기게 생산되고 있다. 나찌의 만행은 같은 지구상의 인간임을 부정하고 싶을만큼 악독했지만, 유태인의 추적과 고발 역시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세계적인 히트작 못지 않게, TV용 영화도 헤아리기 힘들만큼 양산되고 있다.

최근 가장 감동적으로 본 유태인 수용소에 관한 영화는 팀 블레이크 넬슨 감독의 2001년 작 <그레이 존 The Grey Zone>(18세, 메트로)이다. <마이너리 리포트>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씬 레드 라인> 등에 조연으로 출연한 바 있는 배우 출신 감독 넬슨은 네 번째 연출작인 <그레이 존>의 제작, 각본, 편집까지 아울렀다.

또한 독일 장교로 분한 하비 카이텔도 제작에 참여했다. 유태인 학살 관련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유명 배우를 많이 기용하여 절제된 연출을 함으로써 오히려 강렬한 슬픔을 안기운다.

영화 도입부 자막에 의하면 나찌는 가스실로 보낸 유태인 시신과 유품을 처리하기위해 유태인으로 구성된 '존데르코만도 Sonderkommando'라는 노예 집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4개월에 한 번씩 교체되었다.

즉 동족을 발가벗겨 가스실로 보내고, 시신에서 금이빨과 시계 등을 빼내 정리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작업에 종사하는 4개월 동안만 생명이 연장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임을 알게된 '존데르코만도'는 소각장을 폭파시키기로 한다.

1944년 가을, 폴란드의 브레제진카 근방 비르키나우 수용소 소각장에서 일하던 폴란드인과 헝가리인으로 구성된 '존데르코만도' 13개 팀 중 12개 팀이 이 반란의 주역이다. 근처 중화학 공업지에서 일하던 유태인 여성 두 명이 화약을 빼돌리는 조역을 맡았다.

이같은 사실은 수용소에서 인체 실험을 했던 독일 의사 조세프 멩겔의 보조였던 미클로스 니스즐리 박사가 쓴 'A Doctor's Eyewitness Account'와 헝가리인 '존데르코만도' 12명의 증언으로 후대에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넬슨은 먼저 무대 공연을 했고, 다시 영화로 옮긴 것이다.

<그레이 존>은 이 어두운 역사를 밝히면서, '존데르코만도'를 일방적으로 영웅시하거나 독일 장교를 악당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폴란드와 헝가리 유태인은 서로의 국적을 들먹이며 반목하고 질시한다. 동족을 죽이는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자책하고, 서로를 헐뜯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가운데, 소녀 한 명을 살리기위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마치 사형을 기다리는 감옥 창살 안으로 날아든, 병든 새 한 마리를 치유해 날려보내고 싶은 심정처럼 묘사된다.

가스실 시체더미에서 숨쉬는 소녀를 처음 발견한 호프만(데이비드 아퀘트)이, 간신히 정신을 차린 소녀에게 들려주는 넋두리는 '존데르코만도'의 심경을 대변한다. "그 노인이 시체 태우는 일을 시작한 첫 날. 자식과 손자, 손녀들의 시신을 보게됐지. 그들을 불구덩이에 처넣어야했고, 20분만에 온 가족은 사라졌지. 노인은 자살을 기도했지만 다시 살아났고, 우리는 노인의 소원대로 그를 죽여준거야. 내가 맨 처음 너를 발견했을 때, 왜 살리려고 했는지 나도 몰라. 그러나 지금 난 네가 꼭 살기를 바래"

"독일 민족만 살아남을 것"이라면서도 끊임없이 술을 마셔대며 두통을 호소하는 독일 장교 무스펠트(하비 카이텔),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인이 와도 우리 유태인을 죽일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압바르미츠(스티브 부세미), 아내와 딸을 살리는 조건으로 인체 실험에 참여했던 의사 니스즐리 등, 모두 어두운 역사의 희생자들임을 <그레이 존>은 회색 톤으로 전한다.

옥선희 비디오 dvd 칼럼니스트 oksunny@ymca.or.kr

입력시간 2002/12/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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