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전나무

매년 이맘 때면 전나무들의 세상이 된 듯 하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반짝이는 온갖 장식을 하고 선 전나무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물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드는 나무는 전나무가 아니다. 전나무 집안 나무들이다.

하지만 전나무의 위풍당당한, 그래서 더할 수 없이 수려한 모습을 보려면 숲으로 그것도 깊은 숲으로 가야 한다. 균형이 잡힌 이등변 삼각형의 수형에 진초록의 강한 색깔과 곧은 줄기, 가지런하고 섬세한 잎새… 전나무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염된 공기와 치렁치렁한 장식이 아닌 차갑도록 시린 겨울 하늘아래 맑은 숲에서 훨씬 돋보인다.

전나무는 높은 산에서 자라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침엽수 가운데 하나이다. 오대산, 설악산을 비롯하여 북부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지만 남부지방에서도 높은 산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다 자란 나무의 높이는 30~40m까지 굽지 않고 아주 곧게 올라간다.

이 줄기에 달리는 가지는 수평으로 퍼지듯 달리고 가지마다 손가락 한두마디쯤 되는 다소 짧은 바늘잎이 마치 빗살모양으로 가지런히 달린다. 사월이면 일반인들은 꽃으로 보기 어려운 수꽃과 암꽃이 가지 끝에 달리고 시월이면 열매가 익는데 이 역시 날렵하고 잘생긴 솔방울로 하늘을 향해 달리므로 아주 힘차고 늠름해 보인다.

도시로 나온 전나무들은 제가 살 곳이 아닌 까닭에 제대로 모습과 빛깔을 내지 못하므로 전나무를 잘 만나려면 조금 멀리 떠나는 것이 좋다. 가깝게는 국립수목원(광릉)으로 가는 길 목, 그 안으로 들어와 호수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숲이 좋다.

가장 멋진 전나무숲길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숲이 아닐까. 일주문에서부터 이어지는 그 숲길을 찬찬히 걸으며 보는 전나무의 기개, 진한 나무냄새… 그 길을 걷노라면 세상의 잔잔한 걱정거리는 충분히 덮어 버리고 맑은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만 하다.

전나무는 젓나무로도 많이 쓴다. 일반적으로 전나무 많이 부르지만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젓나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잣을 생산하는 나무가 잣나무이듯 젓나무에서는 하얀 물질이 나오는데 이 물질을 예전에 ‘젓’이라고 불렀으므로 젓나무가 옳은 이름인데 발음대로 쓰여지게 되어 전나무가 되어버렸으니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나무는 관상적인 목적이외에 약용으로도 이용하는데 민간에서 잎을 신경통을 비롯하여 여러 증상에 쓰며 감기에 걸렸을 때 목욕탕에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굽거나 마디가 많지 않으며 더위에도 잘 섞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한 문헌에는 “전나무의 줄기가 조금이라도 굽었더라면 그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염려의 말이 적혀있을 정도이다.

예전에 기둥과 대문이 유난스레 높은 대가집에서 대청 앞 전나무에 시렁을 매고 가지를 잡아당겨 그늘을 만들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 아름다웠다고 한다. 전나무를 곁에 심을 수 있는 그 시대의 환경 조건과 이를 이용할 줄 알았던 풍류가 부럽다.

입력시간 2002/12/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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