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38] 북마리아나제도 로타(Rota)

윈시의 숲과 해변에서 맛보는 여유의 쾌감

뜨거운 태양과 우거진 녹음, 환상적인 빛깔의 바다에서 느림의 미학, 게으름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준비된 섬 로타. 로타에서 지내는 동안은 일이나 걱정거리는 물론 나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쉼표 같은 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북마리아나제도 3형제 가운데 둘째 격에 해당하는 섬 로타(Rota). 크기로 따져 사이판이 맏이라면, 로타는 둘째, 티니안은 막내로 보면 적당하다. 위치 상으로 보자면 사이판과 괌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판 혹은 괌에서 경비행기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일부러 마음먹지 않고는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티니안은 작지만 사이판 바로 앞에 있어 페리나 스피드보트 등으로도 쉽게 갈 수 있지만 로타는 거리도 있고,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찾는 이가 적고, 그래서 조용하다.

로타는 섬 크기에 비해 인구가 적고 개발된 곳도 극히 일부여서 마치 무인도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원시적인 느낌 그대로 남아있는 숲과 해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땅. 그렇기에 로타로 떠나는 여행은 무인도를 찾아 나서는 탐험대처럼 마냥 설렌다.


느림의 미학

로타 공항에 내리면 2층 짜리 아담한 건물과 열대의 더운 열기, 리조트에서 마중 나온 현지인들 몇몇이 전부인 한가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덥기 때문인지 사람들 행동도 우리네보다 두어 박자는 느리다. 시간을 느리게 소비하는 사람들. 어쩌면 이런 여유를 느끼기 위해 우리는 남국의 섬 그것도 조그마하고 바쁠 것 하나 없는 섬을 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타에 도착하면 우선 이곳 사람들처럼 느리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굳이 애쓰지 않아도 좋다. 저절로 이런 느림의 미학에 익숙해 질 것이다.

파도 소리 혹은 눈부신 아침 햇살에 잠을 깨고,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고 그 다음은 마음이 끌리는 데로 명소를 찾아 나서거나 마을을 둘러보거나 해변을 거닐면 된다. 책을 여러 권 준비해 가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야자수 그늘에서 읽는 것도 좋다. 한 여름처럼 더운 날씨라 하더라도 그늘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동안은 그렇게 덥다는 느낌이 없다. 가족들이 같이 움직일 수도 있고 아이들은 전문 보모가 돌보는 아이 프로그램에 맡기는 것도 괜찮다.

워낙 여행자들이 많지 않고 인구도 적기 때문에 어디를 가던지 사람들과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다. 특히 명소는 여행자들만 찾는 곳이지 섬 주민들은 자기네 생활 반경 안에서만 머물기 때문에 식당 같은 곳이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다.

로타에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누구나 인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낯선 차가 아는 체를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것은 섬주민이나 여행자나 마찬가지. 만남의 반가움을 이곳 사람들은 바로 표현한 것뿐이다.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가게에서, 호텔에서도 서로 마주치게 되면 웃음이나 눈짓으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한 그 인사가 점점 이곳의 매력임을 알게 된다.


티없는 원시 자연

조류보호구역, 타가스톤 채석장, 스위밍 홀, 송송 마을 전망대, 과일농장, 로타동물원, 코랄가든 등 명소를 꼽자면 꽤 많다. 하지만 이곳들을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다. 몇 군데 중요한 곳만 둘러보거나 아예 명소관광을 하지 않아도 크게 아까울 것은 없다.

물론 하나같이 아름답고 자연의 경이가 느껴지는 것들이지만 로타는 관광을 위한 곳이 아니라 휴양을 위한 섬이므로 충분하게 쉰 다음 마음이 끌리면 찾아가면 된다. 그래도 꼭 가봐야 할 곳을 꼽아야 한다면 조류보호구역, 타가스톤 채석장, 스위밍 홀 정도. 세 군데를 모두 둘러보는 데 하루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조류보호구역(Bird Sanctuary)은 말 그대로 로타의 야생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둔 곳이다. 바위 절벽 아래 오래된 정글이 있고 그곳을 둥지로 삼아 여러 종류의 새들이 살아간다.

여행자는 입구에 있는 절벽 전망대까지만 다가갈 수 있다. 보호구역으로 설정하기 이전부터 깎아지른 절벽과 거친 해안선을 가진 바다가 사람들의 출입을 완전히 차단해 준 덕에 다양한 종류의 조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타가스톤 채석장(Taga Stone Quarry)은 티니안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은 타가 하우스의 돌기둥에 쓰이는 돌을 캐내던 곳이다. 로타에는 이런 돌들로 지은 집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학자들은 이곳에서 돌을 캐서 티니안이나 사이판, 괌 등지로 운반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돌기둥은 높이가 3∼4 미터에 무게가 몇 톤이 넘을 정도로 거대하다. 특별한 연장도 없이 돌을 깎아내고 다듬었을 옛사람들의 기술이 놀랍다.


거칠지만 조화로운 생활

자연이 로타에게 준 선물, 스위밍 홀(Swimming Hole). 이름 그대로 수영장이다. 단,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해변에 형성된 수영장이라는 게 특이하다. 로타의 해변은 백사장보다 바위와 산호초가 더 많다.

스위밍 홀은 산호초와 바위가 둥그렇게 파도를 막아준다. 산호초 바깥에서는 아무리 거칠게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스위밍 홀에 닿을 무렵에는 잔잔하게 바뀌어 있다. 해변 쪽으로는 모래가 깔려 얕고 바다 쪽으로 갈수록 깊어져 발이 닿지 않는다. 얕은 쪽은 모래가 고와 가족들끼리 놀기에도 그만이다.

로타 사람들은 주말이면 스위밍 홀로 피크닉을 온다. 주변이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고 바비큐 그릴에 정자식으로 지어둔 방갈로까지 이용할 수 있어 가족나들이 장소로 그만인 셈이다.

로타의 가장 큰 마을인 송송 마을에서 서쪽 항구를 지나가면 로타동물원, 일본군이 쓰던 대포, 과일농장 등이 나온다. 과일농장은 여행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인데 농장 견학과 열대과일 시식을 겸할 수 있다.

미리 신청하면 과일만 이용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주는데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들이라 신선하다. 망고, 파파야, 스타애플, 구아바, 샤워삽, 코코넛, 팬션프룻 등 이름도 낯선 것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코코넛 사시미. 코코넛을 잘라 주스는 마시고 안쪽에 붙은 보들보들한 섬유질에 간장 소스를 떨어뜨려 먹는데 이를 코코넛 사시미라고 한다.

농장에서는 송송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타이핑고트산과 서부 항구, 그 사이에 놓인 짙푸른 바다와 농장 바로 아래쪽의 코랄가든까지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다.



우리 입맛에도 딱맞는 로타의 전통요리

로타 여행의 백미는 훼손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빼 놓은 수 없는 것이 바로 로타의 별미들이다. 사이판이나 티니안에도 원주민 고유의 전통음식을 만드는 식당들이 있지만 맛을 아는 이들은 로타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코코넛 크랩은 코코넛 껍질 속에 들어가 산다고 해서 이름 붙은 게의 일종. 선셋 빌리아 호텔 & 레스토랑(Sunset Villia Hotel & Restaurant)에서 잘 한다. 송송 마을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테테토비치 인근의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코코넛 크랩 외에?다양한 전통요리를 선보인다.

또 한군데 전통요리 전문점은 통가통가카페(Tonga Tonga Cafe). 송송 마을 초입에 자리잡은 이 식당은 저녁에만 영업을 하는 곳이다. 워낙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 예약을 하지 않으면 테이블을 구할 수 없을 정도다.

촛불을 밝혀 은은한 조명을 만들고,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커다란 창으로 자연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통가통가카페의 대표적인 메뉴는 칼라귄과 챠우더. 칼라귄은 생선이나 닭고기 등을 레몬, 파, 고추, 생강 등으로 간을 한 것으로 새콤하면서도 독특한 맛이다.

비프챠우더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데 쇠고기와 우리나라 고구마와 비슷한 맛을 내는 얌이라는 채소를 코코넛 밀크에 넣고 간을 맞춰 푹 삶은 것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깊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더 좋다.

요리를 먹을 때 같은 나오는 티티야스는 둥글게 구운 얇은 빵으로 밥 대신 먹는다. 요리를 싸 먹거나 국물이 있는 요리에 찍어 먹으면 된다.

차모로족의 전통요리가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이유는 매운 고추 같은 양념을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다. 티니안과 로타의 기념품 가운데는 매운 고추를 다져놓은 칠리소스가 인기 있다. 아주 적은 양에도 눈물이 쏙 날만큼 매운데, 한국에서 매콤한 양념을 만들 때나 라면 끓일 때 조금씩 넣어 먹어도 좋다.




☞ 항공 아시아나항공은 하루 한편씩, 대한항공은 월, 수, 금, 일요일에 사이판행 직항편을 운항한다. 사이판과 로타 구간에는 PIA와 프리덤에어 2개의 항공사가 하루 3∼5회 정도 경비행기를 운항하고 있다. 인천∼사이판은 4시간 정도, 사이판∼로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공항에 내리면 예약해 놓은 리조트에서 마중을 나온다.

☞ 현지교통 로타 섬 내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개별적으로 섬 여행을 하고 싶다면 렌터카를 이용한다. 공항에 렌터카 사무실이 있으므로 공항에 도착해 바로 차를 빌릴 수 있다.

☞ 기후 북마리아나제도는 7월부터 10월까지는 건기, 11월부터 6월까지는 우기에 속하며 연중 고온 다습하다. 옷차림은 간편한 여름 복장이면 된다. 햇빛이 강렬하므로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긴다.

☞ 리조트 로타 리조트 & 컨트리클럽이 로타 최고의 숙소다. 편안한 객실과 골프장, 스파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이밖에 로타호텔, 선셋빌리아 호텔 등 아담한 숙撚俑? 많다. 제일 큰 마일은 송송 마을에 가면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 작고 친절한 호텔을 구할 수 있다. 북마리아나제도 관광국 한국사무소(www.visit-marianas.co.kr)에서 로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여행상품 문의는 시티항공여행사 www.joinstour.com ☎02-778-7300

글·사진 김숙현 여행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12/24 16:1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