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합천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장경각은 과학, 불심 샘솟는 '법보사찰'

경상도 내륙에 솟은 가야산(1,430m)은 석화성(石火星)이다. 불꽃이 길길이 날뛰며 공중으로 치솟듯이 바위들이 솟아 있다. ‘산은 천하의 절승이고 지덕은 해동에서 제일이다’라는 칭송을 받고도 남을 만큼 매력있는 산이다.

가야산이 내품는 위대한 생명력은 해인사와 하나될 때 온전히 발휘된다. 구절양장으로 뒤틀린 홍류동계곡의 깊고 깊은 속내에, 펑퍼짐하고 너른 땅을 갈무리했고, 그 안온한 터에 해인사를 품었으니 가히 천하명당이다.

홍류동계곡에는 늙을수록, 허리가 휘어질수록 굳센 생명력을 발휘하는 홍송이 계곡을 가득 채워 솔향기가 진동한다. 더러는 바위 벽에 붙어 삶에 대한 질긴 집착을 보여주고, 더러는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가야산의 주인처럼 계곡 가운데 홀로 우뚝하기도 하다.

소나무와 집채만한 바위, 하늘로 솟구친 바위절벽이 어울려 절경을 빚었으니 누군들 그 경치를 외면하고 갈 수 있겠는가. 하여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은 무릉도원을 꿈꾸며 식솔을 데리고 홍류동계곡으로 들어왔다.

술과 시, 송죽심기를 즐기며 혼탁한 서라벌의 말년을 비관하던 그는 어느 날, 갓과 신발만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이 신비롭기 그지없는 최후를 두고 후세의 사람들은 최치원이 마침내 신선이 되었다고 여겼다.


신라 대학자 최지원의 혼

홍류동계곡은 최치원의 신비로운 입적으로 유명세에 가속도가 붙었고, 음풍농월 깨나 즐긴다는 후세의 선비들은 앞다투어 이 계곡을 찾았다. 농월정에 앉아 소나무와 바위를 희롱하며 흐르는 무심한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면 숲 속 어딘 가에서 조롱과 비웃음을 머금은 최치원이 슬쩍 쳐다보고는 유유히 사라질 것만 같다. 농산정에는 최치원의 쓴 시가 새겨져 있는 치원대, 혹은 제시석이란 석벽이 남아 있다.


스님이여 청산 좋다 이르지 말게 산이 좋다면 왜 다시 나오나 먼 훗날 내 종적 눈여겨 보게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 -최치원이 남긴 ‘입산시(入山詩)’-


법보사찰 해인사. 해인사란 이름만으로도 만인의 불심을 한데로 끌어 모으는 마력을 지녔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 순응과 이정이 나라의 도움을 얻어 창건했으며 신라 화엄 십찰(十刹)의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고려 초기에는 주지 희랑화상이 후백제를 버리고 고려 창업에 일조한 공로로 왕건이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았다. 조선 태조 8년(1399)에는 강화도 선원사에 소장하던 고려 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이관함으로써 후대까지 법보사찰로 존엄과 숭상을 받고 있다.

해인사(海印寺)는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삼은 도량이다. 화엄경에는 화엄사상의 요체를 암시하는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개념이 있다. ‘바다에 도장을 찍는 절’이란 해인사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해인삼매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바다를 잠재우고 청정한 불법으로 선정을 닦으면 우주의 참 모습이 그 바다에 도장처럼 찍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


‘살아있는 부처’ 성철스님의 기상

화엄의 바다에 취한 곳에서 선승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 고려시대에는 희랑, 균여, 의천 같은 화상들이 선풍을 드높였다.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 유정이 머물렀고, 무애행의 극치를 이룬 근세말 최고의 선승 경허스님이 생의 말년을 보냈다. 어디 그뿐이랴. 십년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용맹정진한 ‘살아 있는 부처’성철 스님의 기상과 드높은 선풍이 어린 곳이 바로 해인사다.

해인사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가 팔만대장경이다. 몽고의 침략을 받은 고려가 불법의 힘으로 왜적을 물리치고자 만들었다는 팔만대장경은 천년 세월 뒤에도 찬연한 빛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대장경판을 습기가 차지 않고 썩지 않도록 보관한 장경각의 놀라운 과학성이다. 자연의 무수한 위협으로부터 600년 동안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불가사의한 건축술은 오늘날에도 연구 대상이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것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장경각이다.


△ 길라잡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대구까지 간 후 금호분기점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탄다. 20km쯤 가면 옥포분기점. 이곳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해인사IC로 나온다. 1084 지방도를 이용해 20분쯤 가면 해인사에 닿는다. 서울에서 5시간 걸린다.


△ 먹을거리와 숙박

이름난 절집 앞에는 식당들이 진을 치기 마련이다. 해인사 입구의 식당가에서 이름난 집은 홍도식당(053-932-7318)이다. 해인사 경내를 돌고 난 후 허기진 배를 움켜 쥐고 가면 공기밥 두 그릇은 기본으로 비우기 마련인 곳이다.

주 메뉴는 된장찌개와 더덕구이, 버섯요리, 생선, 도토리묵 등 나오는 산채정식(9,000원)이다. 해인사 입구에 해인사호텔(053-933-2000)과 국제여관(053-932-7382), 산장별장(053-932-7245)을 비롯해 숙박시설이 많다.

입력시간 2002/12/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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