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소비지상주의를 고발한다


■ 어플루엔자
존 더 그리프 등 지음/ 박웅희 옮김 /한숲 펴냄.

이 책은 값비싼 옷으로 치장한 예쁜 여자 환자와 한 의사의 대화를 화두로 던지며 시작한다.

“몸에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여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럼 왜 이렇게 기분이 엉망일까요? 커다란 새 집을 장만하고 차도 최신형으로 사고 새 옷장도 구입했어요. 직장에서는 봉급도 크게 올랐어요. 그런데도 아무런 흥이 나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생각이 들어요. 도움이 될만한 약은 없을까요?”

의사는 “당신의 병에는 치료할 약이 없어요”라는 머리를 가로 젓는다.

놀란 여자. “무슨 병인데요.” 의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플루엔자예요. 신종 유행병입니다. 감염력이 극히 높아요. 치료는 가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어플루엔자’는 풍요로운을 의미하는 어플루언트(Affluent)와 유행성 독감인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가 사전에 오른다면 풀이는 이렇게 될 것이다.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이 책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존 더 그라프가 제작, 1997년 공영방송 PBS TV에 방송돼 반향을 일으킨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환경과학자 데이비드 왠과 미국듀크대 명예 경제학 교수 토마스 네일러가 보강해 2001년 펴냈다. 저자들은 소비지상주의를 고발하고 대안으로 제시하려고 애쓴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나 전세계 자원의 25%를 소비하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25%를 배출하고 있는 어플루엔자의 진원지이다. 어플루엔자에 ‘감염’돼 미국인들은 한 주에 6시간을 쇼핑에 할애하면서도 아이들과는 40분밖에 놀아주지 않는다. 2000년 한해 동안 미국의 가계는 평균 7,564달러의 카드 빚을 졌고 대학생들조차 평균 2,500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저자는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어플루엔자를 퇴치하기 위해 검약생활 프로그램, 자발적 단순성 운동, 자연에 접하는 야생생활, 친환경적 제품개발, 공동마을,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등의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쇼핑과 소비의 천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남 얘기’는 아니다. 세계 최고의 저축률을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IMF체제 이후 미국발 어플루엔자에 감염돼 가계가 삽시간에 빚더미에 깔려 ‘내채(內債)대란’의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어플루엔자를 퇴치하자!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12/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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