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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프레소] 베이시스트 허진호

세상은 숨은 진주를 알아봤다

“2001년 5월 제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론 브랜튼이 당시 출연 중이던 클럽 ‘올 댓 재즈’로 달려 오더군요. 연주를 듣고 난 브랜튼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해 보자고 했지요.” 베이시스트 허진호(32)가 첫 만남을 돌이킨다.

한 켠에서 솔로 악기들의 뒤를 받쳐 주는 베이스는 결코 화려한 악기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신예 재즈 피아니스트 브랜튼(36)의 귀는 당장 그의 솔로 라인을 알아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국내 재즈팬에게 친숙한 드러머 크리스 바가(35)와 함께 송년 콘서트 ‘Love In Jazz’로 그 동안 쌓아 온 음악적 교분을 입증한다.

‘반달’, ‘섬집 아기’ 등 한국 동요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재즈로 만든 곡도 선보인다. 12월 28~29일 문화일보홀.

그는 아직도 경남 사투리를, 그것도 원단으로 쓴다. 그러나 재즈에 미쳐 집안의 탐탁치 못한 시선에도 불구, 미국까지 가서 정통 재즈를 배워 오고야 만 것이 바로 그 ‘촌놈’의 뚝심 때문이었다.

부산 초량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통기타를 만지던 아들이 영 못마땅했던 그의 아버지는 급기야 부산서중 시절, 기타 3대를 연거푸 박살 내는 것으로 할 말을 대신했다. 그러나 아들은 한술 더 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더니 기타보다 더 귀한 악기인 베이스로 바꿨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베이스 교본이 없던 때 그는 광복동 일대의 헌 책방을 뒤져 일어판 베이스 교본을 구해 일어를 아는 사람들을 졸라 가며 책을 뗐다.

레드 제폴린 류의 하드 록에 미쳐 있던 그는 동아대 체육 교육학과에 입학, 학내 그룹 사운드 ‘옥타브’에서 베이시스트로서의 행보를 뗐다. 1학년 1학기에 입대한 그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내 군악대 단원으로 변신했다.

행사용 음악은 물론, 영관급의 회식 때는 각종 뽕짝을 연주해 흥을 돋우던 시절이었다. 일등병 시절, 그는 엉뚱하게도 재즈 뮤지션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음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공부한 후배에게는 사역을 면제시켜 주는 등 혜택을 줘가며 손끝에 피멍이 들도록 하루 8시간까지 연습했다. “동료가 휴가가거나 제 외박 때는 레이 브라운이나 폴 챔버스 등의 앨범을 꼭 부탁했지예.”

제대하자마자 자퇴서를 썼다. 부산서 콘트라베이스를 배울 수 있는 데가 없을 바에야 본고장에 가서 제대로 배우자는 결심 때문이었다. 5남매의 막내가 내린 결정에 가족 회의가 열렸고, 절대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부산 MBC가 주최한 ‘해운대 축제’에 나가 베이스를 연주해 딴 상금 100만원을 모두 내놓고 영어를 파고 드는 막내의 열정앞에 부모는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경남 산청 땅, 그의 가문에서 첫 유학생이 탄생한 것이다.

1996년 가을, 그는 보스턴 버클리(Berklee) 음대의 베이스 연주자 과정에 입학했다. 3학년부터는 교내 빅밴드와 4인조 캄보 활동 등으로 생활비까지 벌었다. 번 돈 대부분은 재즈에 재투자됐다. 블루 노트, 빌리지 뱅가드 등 유명 재즈 클럽으로 달려가 책으로 알고 있던 대가들의 연주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 보고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경험도 했다.

세상은 자신을 알아보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의 스탠더드 모음집 ‘Time After Time’와 재즈 전문지 MM Jazz의 ‘We Get Requests’ 등의 CD에서 확인된 유려한 베이스가 바로 그의 것이다. “평생 연습하고 클럽 연주하다 조용히 가고 싶다”고 말하며 그는 멋적게 웃었다.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12/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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