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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

"우주보다 더 큰 것은 사람의 마음"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42) 교수는 소문난 야행성이다. 1986년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시절부터 시작해 요즘도 낮을 낮처럼, 밤도 낮처럼 살아간다. 새벽 2~3시 퇴근은 ‘조퇴’에 가깝다. 동이 튼 뒤 퇴근하다가 갓 출근한 수위와 마주치는 날도 적지 않다. 해 아래에 출근해 별과 함께 퇴근한다.

혼자서 뭘 하는 것일까. 최근에 그가 펴낸 책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 그 답이 있다. 이를테면 이 책은 그의 책상 위에서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한 서면 보고다. 큰 줄기는 ‘고천문학’이라는 과학적 역사 추적 이야기지만, 행간에는 공부의 재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학자의 숨소리와 발자국이 생생하게 찍혀 있다.

작년부터 인터뷰를 예약해 제법 긴 시간을 기다려 온 것도 바로 그 같은 열정의 ‘진화과정’이 궁금해서 였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는 발행 1주만에 서점가의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식을 아는 것보다 지식을 하나하나 찾고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제 이야기를 보고 학자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만화영화 ‘ 아톰’보며 과학자 꿈 키'

박 교수가 천문학 연구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23년째다. 어릴 적 TV에 나온 만화영화 ‘우주 소년 아톰’을 보면서 과학자를 꿈 꾼 어린 시절이 있다. 거기에 하얀 가운을 입고 천문대를 지키던 ‘강 박사’가 있었다. 아톰보다 그 아톰을 만들어 낸 강 박사가 되고 싶었다.

호기심으로 몸살을 앓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실과’교과서 마지막에 실린 ‘광석 라디오 만들기’를 혼자 시도했다가 성공한 뒤 과학 실험의 재미에 빠져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내내 집에서 실험기구를 껴안고 살았다. 라디오나 손전등 등 눈에 띄는 것들마다 해체하고 뜯어 부수는 통에 웬만해서는 모든 것을 받아주시던 교사인 어머니조차도 “네 손에는 옥니가 돋혔냐”며 혀를 찼다.

소박하지만 자랑스러운 자신만의 간이 실험실도 있었다. 책상 한 귀퉁이에 비커, 알코올 램프, 시험관 등 기초 실험도구를 몇 가지 올려놓은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소년에게는 가슴 뛰는 공간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형이 친구로부터 빌려온 잡지 ‘학생과학’을 만난 뒤부터는 더욱 실험종류가 다양해졌다. 전자석을 이용한 전종(電鐘)에서부터 트랜지스터 라디오, 연필의 흑연과 탐침을 이용한 간이 전자오르간, 모터로 움직이는 간이 삼륜차, 기중기 등 난이도도 점점 높아졌다.

와중에 소동도 많았다. 염산에 아연을 녹여 발생시킨 기체(수소)에 불을 붙여 수시로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고, 로케트를 만들 때는 추진동력으로 쓸 화약을 빻다가 옆에서 화학실험을 동시 진행 중이던 알콜램프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어 옮겨 붙으면서 자칫하면 집 한채를 거덜낼뻔 한 일도 있다.

한여름 선풍기를 쐬다가 발전기를 모터와 연결해 영구 동력을 얻어내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실험에 성공해 부모님의 팔자를 고쳐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실패한 전력도 있다. ‘에너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이미 이같은 개념의 ‘영구기관’이란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았다.

실험 재료비가 필요해도 차마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가 죄송해 중1때 신문배달을 나서기도 했다. 당시 성적은 전교 1등을 넘나드는 수준.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대한 무언의 반항’으로 오해해 눈총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문방구와 철물점이 위치한 시장골목은 그의 놀이터였다.

워낙 뻔질나게 일대를 서성이다보니 한번은 철물점 주인으로부터 도둑질을 위해 염탐하는 소년으로 오인받아 애꿎은 봉변을 당했다. 초등학생의 용돈으로 사기에는 너무나 비쌌던 알콜램프나 비이커. 노량진 집에서 대방동까지 걸어가 찾아낸 과학기자재 상점 앞에서 물끄러미 쇼윈도만 바라보다 풀 죽어 돌아오던 날들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천체망원경 만들어 별자리 관측

별자리를 관측하기 시작한 것도 중학교 때 직접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내면서 부터였다. 몇 해만에 돈을 모아 렌즈를 사고, 망원경의 몸체인 경통은 PVC파이프로 해결했다. 완성된 천체망원경은 성능도 모양도 제법 그럴싸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 뿌듯해 밤마다 그것으로 직접 밤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대입준비로 더 이상 전처럼 실험을 즐길 수는 없게 된 후에도 새벽 또는 밤길에 학원이나 집으로 향할 때면 하늘의 별들이 벗이 되어 주었다.

“그 때까지도 저는 과학분야를 공부하겠다는 진로를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철학에 심취한 친구가 제 짝으로 앉게 되면서 그 친구의 영향으로 철학 책을 읽은 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그른 건지 가치가 흔들리는 겁니다.

철학도 과학 못지않게 아주 진지하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구요. 나중에는 과학과 철학 두 가지를 두고 진로문제로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둘 다 놓치고 싶지는 않지만, 과학을 먼저 하면 철학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과학 중에서도 자연 전체를 가장 포괄적으로 다루는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학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지요.”

1979년 서울대에 입학, 국내 천문학계의 3세대가 되었다. 서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90년 미국 프린스턴대 천체물리과학과에서 우주론 분야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 이어 캘리포니아 과학기술대학교(캘텍) 물리학과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92년에 귀국해 모교의 강단에 서게 되었다.

“사실 저는 친구들에 비해 이해력과 기억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수재형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런 제 한계를 알기 때문에 일단 알게 된 것은 어떻게든 다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머릿속에서 곰곰이 생각하며 되새깁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그건 왜 그럴까, 이제 보니 이건 좀 이상하구나 하고 그 안에서 조금씩 의문들이 생깁니다. 그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에서 점점 더 지식이 확장되는 거지요. 친구들보다 더디기는 하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제 것이 됩니다.”

박 교수의 연구 업적도 대부분 비슷한 길을 밟았다. 캘텍 시절에 발표한 ‘은하의 공간분포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법’도 아주 단순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계산방식은 우주모형 검증에 직접 적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워낙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돼 온 것이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하던 어느날 ‘왜 관측자료로 어떤 우주모형이 맞는지 바로 알아보려 하지 않는걸까’ 이상해 지도교수에게 용기를 내 물었다. 교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고 했다.

그 교수는 학계에서 손꼽히는 세계적 대가였다. 그 같은 대학자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학생인 자신이 알아낼 수 있으랴 싶어 더 이상 알아보기를 포기했다. 그런데 몇 해뒤 캘텍 연구원이 되었을 때 그곳에는 놀랄만큼 풍성한 관측자료가 쌓여 있었다. 보자마자 떠올린 것이 바로 몇 해전 포기했던 그 의문이었다.

그처럼 풍부한 자료라면 직접 답을 찾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지만 주저없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완성된 박 교수의 연구성과는 세계 학계에 발표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컴퓨터사용 때문에 뒤바뀐 밤과 낮

야행성으로 살게 된 계기도 다소 엉뚱하다. 이것은 당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유수의 언론에도 크게 소개됐던 박교수의 대규모 우주모형 시뮬레이션 개발에 얽힌 뒤얘기다.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진행된 이 연구는 태초의 우주 환경이 진화된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적, 검증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워낙 그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세계 제1을 자랑하는 프린스턴의 슈퍼컴퓨터도 한번 박 교수가 이 프로그램만 가동했다 하면 곧장 학교의 메인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려 이를 함께 연결해 쓰는 다른 연구원들의 터미널들이 죄다 먹통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로그램을 띄우고 나면 영낙없이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연구원들이 복도로 몰려나와 웅성대는 상황을 맞아야 했다. 연구를 포기할 수도, 다른 연구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없는 진퇴양난. 그 때 생각해낸 묘안이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난 자정 이후부터 새벽 시간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 약 2년간 밤과 낮을 바꾸어 살았다. 몰라보게 체중이 줄었지만, 원했던 결실은 미련없이 거두었다.

아직은 생소하다 할 고천문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작은 호기심에서부터 비롯됐다. 고천문학이란 사서나 유물 등 역사적 사료만으로는 검증하기 힘든 역사의 사각지대를 고대의 천문자료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접근해 풀어내는 학문이다. 마치 법학을 돕는 의학이 법의학이듯, 역사학을 돕는 천문학이 고천문학이라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선배 천문학자인 고 라대일 박사와의 술자리에서 오갔던 학문적 담소들을 진지한 연구로 발전시켰다. 논문이 발표된 지 9년이 지난 요즘까지도 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해 있는 단군조선 시대와 삼국의 위치 추적 결과가 그렇게 태어났다.

“우주론과 역사학은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우주의 과거사를 밝히는 게 우주론이면, 인류의 과거사를 밝히는 게 역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상만 다를 뿐 지난 역사의 시나리오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모두 흥미진진한 분야입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나 집요한 호기심으로 치자면 2남1녀중 장남이 특히 박 교수를 닮았다. 중학생인 장남은 지금도 아버지만 보면 귀를 ‘마이크’삼아 졸졸 따라다니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퍼부어 대 박 교수를 곤혹스럽게 한다.

아이가 6살 때 이들 부자가 나눈 이야기가 있다. 꼬마가 아버지의 밥상 앞에 앉아 책에서 읽은 우주 이야기를 꺼낸다.

“은하보다 더 큰 게 있냐”는 질문이 1탄이다. 은하군과 은하단에 대해 설명해준 뒤에도 숨돌릴 틈 없이 다음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은하군과 은하단보다 더 큰 것은요?” “초은하단보다 더 큰 것은요?” “우주거대구조보다 더 큰 것은요?”마침내 부자는 우주까지 도달했다. 이번에는 “우주는 얼마나 크냐”고 묻는다.

“아주 커. 끝없이 무한해” 마지막 질문이 나온다. “그럼 우주보다 더 큰 건 뭐예요?” 세상이 알아주는 천문학자 아버지가 잠시 말문이 막힌다. 얼마 뒤 식사를 다 마친 뒤 아버지가 마침내 답을 내놓는다. “현배야, 우주보다 더 큰 것은 사람의 마음이야.” 그 광활한 우주를 껴안고 박 교수는 살아간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12/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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