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H'(에이:치)

리얼리즘 강조한 본격 하드보일드 스릴러

영화 'H'에서 H는 무슨 뜻일까, H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연쇄살인범 '현'의 이니셜임과 동시에 영화속 살인사건이 열쇠이기도 하다.

'H'의 메가폰을 잡은, 이종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박종원 감독의 <송어>에서 연출부를 거치며 착실히 연출수업을 받아온 유망주다. 이제까지 <텔미썸씽>을 비롯해 간간이 스릴러 영화들이 있어 왔지만 크게 성공했던 경우는 없었다.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H'는 화려한 케스팅에 비해 스토리의 치밀함이 부족했던 영화 <텔미썸씽>의 한계를 극복하고 완성도와 흥행성을 모두 겸비하는 스릴러로 기획된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품격있는 시리얼킬러(연쇄살인범) 영화들(양들의 침묵, 세븐, 레드 드레곤 등)이 하나의흥행장르로 구준히 제작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영화의 다양화와 반전을 위해 탄탄한 구성으로 만든 스릴러 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H'는 그간 한국의 스릴러와는 달리 스토리분만 아니라 제작부분에도 철저한 리얼리즘을 강조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살인사건을 리얼하고 충격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장장 4일에 걸쳐 부산시 전역에서 모아 들인 600톤의 쓰레기로 재창조한 2만평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

악마적인 연쇄살인범에게 생명력을 주기 위해 3,000여 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감옥을 만들었다. 처참한 살인을 다루는 만큼 실제 시체 12구와 살인현장에서 발견되는 사람의 손가락, 귀 같은 신체와 1,000만원을 들여 조달한 인공피 등으로 인해 영화 속의 살인현장은 실제보다 리얼하게 다가온다.


슬프고도 감성적인 인간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스릴러들이 주로 이성과 논리에 바탕을 두고 사건해결에 초점을 맞춘다면, 'H'는 사건해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1년전 6번의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자수하여 수감중인 연쇄살인범 신현(조승우), 1년 후 또 다시 사건이 반복되자 신현을 찾아온 담당형사 미연(염정아)과 강(지진희).

영화는 신현과 두 형사간의 팽팽한 심리전 속에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각 인물들의 가슴 속 상처들이 드러나며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낙태수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친모로부터 태생적으로 버림받은 아이 신현, 젊은 미혼모 어머니를 언니라고 부르며 자란 강 형사, 신현으로 인해 약혼자를 잃은 미연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범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 묘사되지 않는다. 오히려 범인과 형사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서로 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H'는 단순히 잔인한 영화가 아니라 차라리 슬프고 감성적인 영화이다.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스릴러의 필요충분조건은 뭐니뭐니 해도 매력적인 범인이다. 뛰어난 범인이 등장하면 그만큼 영화의 긴장과 스릴은 증폭되기 때문이다.

영화 'H'의 범인 신현은 역대 유명한 연쇄살인범 한니발 랙터(양들의 침묵), 존 도우(세븐) 등과는 도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해맑은 청년의 모습 속에 악마적 광기와 카리스마르르 지닌 신현, '죽음만이 모두에게 유일한 구원'이라 주장하며 6명의 여자를 죽인 후 버젓이 자수한 대한한 확신범이다. 생명을 유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신현이 던지는 분노의 메시지를 듣고 있다 보면 어스새 선과 악의 경계는 무너져 버린다.

요 몇 년 사이 충무로에는 '배우가 없어서 영화가 엎어진다'는 말이 돌 정도로 배우기근 현상이 심각하다. 몇몇 스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가 하면, 스타의 인기에 편승해 캐릭터와 무관한 캐스팅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화 'H'는 이런 스타 위주의 캐스팅 경향에 파격을 기했다. 우선, 염정아를 여주인공으로 하고 TV드라마(줄리엣의 남자 등)에서 일약 차세대 스타로 부상한 지진희를 남자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했다.

이어, 아직 젊지만 영화와 연극계에서 연기파 배우로 확고히 입지를 굳히고 있는 조승우를 매력적인 범인으로 캐스팅헤 연기력과 신선함의 조화를 꾀했다. 영화 'H'의 성공여부는 새로운 스타탄생과 함께 기존의 스타 캐스팅 경향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감성적 스토리 전개가 흥

이 영화는 범인이 아주 똑똑하다는 점과 감옥에 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직접 연쇄살인사건응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 '양들의 침묵'과 설정이 너무도 흡사하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혹시 저 사람이 범인?"하고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 의혹이 결말에 맞아 떨어져 다소 맥 빠지는 느낌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는 감성적인 부분을 살리려 노력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스릴러의 특성상 감성적인 부분이 스토리라인을 끌어가는 형태를 취한다면 다소 어설픈 느낌을 줄 수 있다. 이 영화에는 그런 느김이 있다. 스릴러에 감성적 요소를 반영하는 테크닉이 부족하다. 또 결말 부근에서 스토리가 다소 신파류로 흘러 아쉽다.

'H'는 극장가 최고의 성수기인 12월 19일 외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개봉하여 관객에게 한국스릴러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입력시간 2002/12/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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