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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카테쉬전투에서 람세스2세는 완패했다


■ 히타이트
비르기크 브란디우 등 지음/ 장혜영 옮김/ 중앙M&B 펴냄

고대 이집트의 최전성기를 구가한 람세스 2세는 ‘건축의 대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비도스, 카르나크, 룩소르, 아부심멜, 라메세움 등 이집트 전역에 수많은 건축물을 축조하고 내부를 자신이 거둔 혁혁한 승리의 장면들을 묘사한 상형문자와 그림들로 도배했다. 전공의 핵심은 재위 5년(기원전 1286년 추정) 히타이트와 격돌한 카데쉬 전투였다.

카데쉬 전투는 이집트 및 오리엔트 지역의 패자로 최대 번영기를 구가하던 이집트와 지금의 터키 지역의 맹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기와 전차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히타이트가 시리아 영유권을 놓고 벌인 대회전이었다.

3,000여년전에 벌어진 양대 제국 간에 벌어진 인류 최초의 세계 대전이었다. 지금까지의 정설은 이집트의 압승. 67년에 달하는 치세 기간 동안 자신을 ‘히타이트의 정복자’로 미화한 람세스 2세의 주장은 벽화 등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반면 히타이트는 이 전투를 끝낸뒤 1세기만에 홀연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히타이트’의 저자들은 카데쉬 전투의 승리자는 히타이트이며 람세스 2세의 이집트는 완패했다고 주장한다. 카데시 전투 이후 시리아의 중부와 북부를 히타이트가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승리했다면 당시 역사상 최대의 전투 현장을 히타이트에게 내어주었을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전투 장비를 보아도 보면 철기 무기를 사용한 히타이트가 청동제 무기를 사용한 이집트보다 월등했다. 저자들은 히타이트의 무왓탈리시가 람세스 2세의 대군을 격퇴한뒤 이집트까지 진격해 점령하지 않고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은 터키 지역에서 이집트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히타이트 동쪽에 아시리아라는 강국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망각의 늪에 빠졌던 히타이트는 19세기 초 아랍 유목민 베드윈 족장인 이브라힘에 의해 역사의 무대로 복귀한다. 그가 남긴 ‘시리아 성지 기행’을 근거로 아시리아의 유적으로 알려졌던 하투샤(현재의 보가즈쾨이)가 사실은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독일의 학술전문 프리랜서인 저자들은 히타이트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수도 하투샤가 왜 절정기에 갑자기 폐허가 됐는지 등 베일에 가려진 히타이트의 세계를 최신 고고학적 성과에 근거해 소설처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김경철 차장 kckim@hk.co.kr

입력시간 2002/12/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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