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노무현과 조지 W 부시

어떻든 한반도에는 ‘북풍’(北風)과 ‘미풍(美風)이 바로 맞부딪치는 ‘갑짝’ 바람(돌풍의 북한표현)은 일어나지 않게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후 가급적 빨리 편리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노무현 당선자가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신문인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LA 타임스가 노무현 당선자를 ‘자유주의적 인권변호사’라고 호평했다. ‘자유주의적’(liberal)이 “모든 인간이 똑 같은 기회를 가지는 사회구도에서 개인 자유의 존엄과 변화에 대해 개방을 명백히 하는 것”이란 자유주의 연맹이 규정한 의미로 쓰일 때 더욱 그렇다.

미국의 주류 신문은 조지 W 부시를 “온정적인 보수주의자’라고 부른다. ‘보수주의적’(conservative)이란 자유연맹에 의하면 “변화에 반대하며 사회적 문제를 전통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며 경제문제에 특히 ‘보수적’이나 점차 자유주의로 기울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조지 W 부시에 ‘온정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가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2002년 10월 평양에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진행중이라고 시인하게 한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ㆍ미 두 정상의 만남에 낙관과 긍정을 보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과 잘 연결된 단일국가임이 증명 됐다. 기술적으로 경쟁력 있고, 국민은 세련되었다. 15년전에는 (1987년 6월 전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군부가 군부를 택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국민은 직선을 원했지만…” 켈리 차관보는 1987년 6월 그때, 레이건 정부의 백악관 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이었고 82년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후 국무부 동아시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에게 12월 19일의 한국 대통령 선거가 6월 항쟁 당시 부산의 ‘자유주의적 변호사’였던 노 당선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아무리 한반도에 정치의 ‘회오리’나 ‘돌개’바람이 불어와도 평화라는 미풍(微風)으로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1987 6월~2002 12월까지의 두 나라 시민의 세계의식, 자기인식의 발전도를 다시 고찰하면 해답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1993년 조지 W 부시의 선친인 조지 부시가 백악관에서 물러난 후 시사주간지 타임은 ‘무엇이 성공하게 했느냐’라는 정치수필기고가 리차드 벤 크래머의 책을 그 해의 좋은 책 1위로 뽑았다. 1,051쪽의 이 책은 조지 부시 부통령과 마이클 두카키스 메사추세츠 주지사, 게리 하트 민주당 상원의원 등이 ‘출전’했던 88년 대통령 선거전후를 시시콜콜하게 다룬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과 패배 까지 이들 3명의 일생과 선거전략이 깨알 같이 그려져 있다.

이 ‘무엇이…’에는 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로라 여사와 함께 30줄 가량 나온다.

“(1986년 10월 8일) 아버지 부시 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그의 정치적 본향인 텍사스 휴스턴의 실내 야구장 애스트로 돔을 찾았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내셔널리그 결승전의 시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500마일 떨어진 미드랜드에서 석유사업을 하던 조지 W 부시는 아내와 그리고 50여명의 친구와 함께 왔으나 아버지 옆 좌석은 동생 젭(후에 플로리다 주지사)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아버지를 향해 달려 가려 했다. “젭의 자리가 내 자리야. 저 참모장 녀석이 내 자리를 바꿨다”고 고함쳤다. 아내 로라의 “여보!”라고 만류하는 바람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관중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의 멋진 시구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 부시는 본부석에 돌아온 후 텍사스의 석유재벌 인사들로부터 아들이 “일을 잘 하고 있고 정치에 꿈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아이는 나처럼 흥분하지 않고 극기할줄 압니다. 자기 절제가 우리 집안의 전통이지요”라고 했다.

이런 조지 W 부시는 한국의 노무현 새 대통령이 한국 20대의 60%, 30대 60%, 40대의 44%, 50대의 28%가 지지한 대통령 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여론조사에서(2002년 7월~8월 PEW 조사)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53%로 최근 미국과 국교가 트인 베트남의 71%보다 낮다는 것에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대테러 정책에 대한 찬성도는 24%로 파키스탄의 20%와 비슷했다. PEW는 결론으로는 “젊은 세대들이 반미의 근간이며 미국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을 가보지 못한 노 당선자는 유념해야 한다. 대선이 한참일 때 PEW가 12월4~8일 미국인 1,205명을 대상으로 이라크과의 전쟁을 앞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기 및 전쟁찬성도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부시의 인기도는 61%로 안정세(공화당계는 88%)였다.

이라크 전쟁에는 30세 이하 세대의 69%, 65세 이상의 50%가 전쟁에 찬성했다. ‘유엔을 도와야 한다’가 85%, ‘주요동맹과 협력 해야 한다’가 58%, ‘고립주의를 고수해야 한다’가 40%에서 20%인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 고립주의에서 탈피해 세계화 내지 국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강했다.

어떻든 ‘자유주의자’인 노 당선자는 ‘보수주의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세련된 한국인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입력시간 2002/12/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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