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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에 '피라미드 꽃뱀' 비상

사이버 공간에 '피라미드 꽃뱀' 비상

미모의 여성 내세운 신종 다단계 수법

사이버 공간에 ‘피라미드 꽃뱀’ 주의보가 발령됐다. 피라미드 꽃뱀이란 남성의 ‘늑대성’을 교묘히 이용해 하위 사업자를 포섭하는 신종 다단계 수법이다. 전통적인 다단계는 친구나 평소 안면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사냥을 벌였다.

그러나 경찰의 집중 단속이 계속되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사냥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채팅으로 연결, 오프라인서 유혹

내년 초 졸업 예정인 대학생 김모(27)씨는 얼마전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불법 피라미드 조직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채팅에서 만난 여성과 오프라인 만남을 약속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채팅을 통해 알게 된지 1주일 정도 됐을 겁니다. ‘얼굴이 궁금하다’며 상대 여성이 만날 것을 제의하더군요. 저도 상대가 누굴까 궁금했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어요.”

두 사람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씨의 상상대로 앞에 앉은 여성은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성격도 붙임성이 있고 쾌활한 편이라 김씨는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김씨의 ‘장밋빛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던 여성이 솔직하게 자신의 의도를 털어 놨기 때문이다.

김씨는 “신문이나 TV에서 보던 일들을 내가 겪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해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설득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문제의 회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이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피라미드 꽃뱀’이 헌팅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수법은 ‘우회 전술’. 처음에는 절대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채팅을 하는 것처럼 위장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접근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 비로소 본론을 꺼낸다. “얼굴이 궁금하다”“한번 보고싶다”는 등의 말로 부추겨 오프라인의 만남을 유도한다.

공정위 특수거래보호과 홍대원 사무관은 “인터넷을 통해 다단계 사업자를 모집하는 제보가 가끔 들어온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꽃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류는 대학생. 은행 등을 통해 최고 300만원까지 학자금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의 경우 학생들에게 대학생 학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기관을 알선해주기도 한다.

실제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대학생으로만 구성된 피라미드 조직을 적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4,000명의 회원 중 98%인 3,900명 정도가 대학생이다. 회사에서 소개해주는 캐피탈이나 상호신용금고를 통해 가입비를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이같은 대학생 조직들이 4∼5개 정도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강남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불법 다단계 회사는 금전 만능주의의 대표적인 폐해”라며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동거ㆍ밀월여행등 파격조건 내세워

쉽게 넘어오지 않을 경우 동거나 밀월여행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이 경우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만나는 장소는 고속터미널이나 역으로 정한다. 약속장소에서 상대를 만나면 “깜박 잊고 온 것이 있다”는 식으로 사업장 주변으로 유인한다.

사정이 이렇자 사이버 공간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포털사이트의 경우 게시판 전담반까지 구성해 24시간 감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불량 게시물이 발견될 경우 그 자리에서 삭제할 뿐 아니라 글을 올린 당사자에게도 경고문을 보낸다.

드림위즈 김정수 팀장은 “인터넷 게시판이 혼탁해지면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선량한 네티즌들”이라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량 회원에 대해서는 과감히 퇴출시키는 방법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피라미드 수법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터라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다단계 피해접수 전문 사이트인 안티피라미드(www.antipyramid.org)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업체들이 ‘채팅과 선물로 상대에게 호감을 줘라’‘밀월여행 등 과감한 제안을 하라’ ‘경찰에 걸렸을 경우 무조건 피해자라 발뺌하라’는 등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의 경우 회원 확보를 위해 잠자리까지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법 다단계에 대한 단속이 계속되자 비교적 감시가 덜한 사이버 공간으로 몸을 피한 것으로 분석한다. 서울지검 형사6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10월부터 8개 기관이 공조해 다단계 업체들을 상대로 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단속을 벌일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연말 맞아 동창회 참석하는 다단계족 눈살?

유난히 모임이 많은 연초나 연말은 ‘다단계족’들에게 있어 사업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동안 연락이 뜸한 학교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동창회 참석을 권하고 있다.

이들은 술자리를 피하지 못해 고민하는 일반 샐러리맨들과 달리 헌신적으로 망년회나 송년회에 참석한다. 모임이 없는 경우 아이러브스쿨 등 동창회 사이트에 들어가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다양한 방법으로 포섭작전에 돌입한다. 친구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측은파’, 의리를 강조하는 ‘의리파’, 노골적으로 사업을 권유하는 ‘막무가내파’ 등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눈에 거슬리는 게 사실이다. 친구들의 안부에는 관심도 없고 ‘다단계 예찬론’에 온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일부 다단계족은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직장인 김모(34)씨는 “아이러브스쿨 등 동창회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동창회를 자주 가진다”며 “그러나 친구들 중 상당수가 다단계 사업을 권유해와 곤혹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

입력시간 2002/12/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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