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노무현 후보 당선의 의미

12월 19일 대통령선거 결과가 밝혀짐으로써 제16대 대통령 선출을 향한 험난하고도 긴 여정은 이제 종료됐다. 결과는 48.9%의 득표율을 기록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46.6%의 득표율을 보였지만 2.3%포인트의 격차로 대통령 당선에는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3.9%를 획득함으로써 진보정당으로서의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극적인 것이었다. 올해 4월 민주당의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전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방선거에서의 패배와 민주당 내부의 흔들기 그리고 한일 월드컵 이후 정몽준 후보의 부상으로 후보 사퇴 직전의 막다른 궁지에까지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몽준 후보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했고 선거 막판 정몽준의 지지 철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했던”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후보는 마침내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이 한국정치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 대중, 특히 젊은 세대가 한국정치의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선거과정 내내 김대중 정권에 대한 ‘부패정권 심판론’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유권자의 요구는 김대중 정권 심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 전체에 대한 심판, 즉 노무현 후보가 내세웠던 ‘낡은 정치’ 청산의 요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서 ‘낡은 정치’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정치를 말한다. 우선 그것은 정치가 주로 사회의 기득권층만을 대표하거나 정치인들 스스로가 특권적인 지위를 갖는 정치를 의미한다. 다음으로 그것은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패하지 않을 수 없는 특징을 보여준다.

나아가 유권자에 대한 공적 책임성에서 벗어난 그러한 정치는 정치인들의 사적 이해에 따른 구태의연한 작태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갖는 낡은 정치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다름아닌 지역주의정치였다. 선거 때 지역감정을 동원하기만 하면 되었던 지역주의정치에서 그들은 공적 책임성을 지닌 정치인이기보다는 사적 이해에 따른 특권적 존재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낡은 정치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낡은 정치가 장기화될수록 그것은 그 부정적 결과를 누적시켰다. 그리고 그 누적된 결과는 그것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바로 그 시점에서 새로운 정치의 요구로 분출하게 됐다. 2002년 대통령선거는 바로 그러한 분출의 계기였고, 노무현 후보의 등장은 바로 그러한 분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험난했고 극적인 반전을 거듭했던 것은 낡은 정치가 그러한 분출을 억제하고자 했던 과정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동요였다. 그러나 그러한 동요에도 불구하고 낡은 정치 청산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는 마침내 노무현 후보를 통해 자신을 분출시키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위로부터의 낡은 정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의 분출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지역주의정치에 근거한 낡은 정치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해줄 정당성과 그 동력을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곧장 새로운 정치 구축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새로운 정치 구축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굳건히 뿌리 내리게 만드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앞으로의 과제이며 그것은 어쩌면 그 출발보다 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한국정치

입력시간 2002/12/3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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