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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318일간의 버스여행 '미애와 루이'

[이 여자가 사는 법] 318일간의 버스여행 '미애와 루이'

"삶은 떠남으로서 얻어지는 가치가 훨씬 많아요"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돌아온 장 루이 볼프(프랑스인ㆍ40), 최미애(37)씨 부부. 이른 아침 이들 부부가 사는 서울 이태원의 자택을 찾았을 때 눈 앞에 들어온 놀라운 광경에 한 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2평 남짓해 보이는 거실은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부부가 한 식구로 여기는 애견 ‘꼬꼿(그레이트 데인 종)’과 꼬꼿이 11월에 낳은 강아지 9마리. 여기에 한 달 전쯤 부부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 전격 입양(?)된 도둑 고양이 ‘미야옹’ 등이 어울려 집안을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 결국 인터뷰 화두는 이들 부부가 아니라 ‘개’ 가족이 됐다.

“친구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강아지 똥ㆍ오줌 치우느라 바쁘게 지낸다고 해요. 아기라면 기저귀라도 채울텐데 강아지는 그럴 수도 없잖아요. 강아지 9마리를 키우는 일이 애 9명을 키우는 것보다 더 힘이 드네요.”

한국인 아내 최미애씨의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나은 편이다. 강아지들이 어미 개의 젓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한동안은 어미 개가 난산으로 치료를 받는 탓에 이들 부부가 젖병에 우유를 넣어 3시간에 한 번씩 먹여줬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는 그녀의 말이 빈 말이 아닌 듯 싶다. “자식보다 더 귀하게 키웠다”는 이들 부부에게 남은 문제는 강아지들을 좋은 주인에게 분양하는 일이다.

“생각해보세요. 이 강아지 아홉 마리가 다 커서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지옥이 따로 없죠. 덩치가 워낙 커서 집안에서 한 마리만 키우기도 힘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우리에 가둬 놓고 키우려고 하는데 그런 곳에는 절대 줄 수 없어요.

‘그레이트 데인’이라는 이 개는 사람하고 같이 살아야지 따로 두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거든요. 개 중에서 유일하게 자살하는 개가 바로 이 종이래요.”


패션모델과 프랑스 사진작가의 만남

2002년 7월 13일 버스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장 루이ㆍ최미애 부부는 매우 숨가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최씨는 유라시아 대륙을 일주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두 권으로 책(미애와 루이, 38일간의 버스여행ㆍ자인)으로 펴냈고, 사진 작가인 남편 장 루이는 당장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했다. 11월에는 일주일간 프랑스 문화원에서 ‘여행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여행기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이라는 책에서 세련된 글솜씨를 선보인 최씨의 본업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홍콩, 파리, 일본을 거쳐 지금은 한국에서 활동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에 자신의 얼굴에는 전혀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삶이 자연스레 배어있는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얼굴이죠. 나이가 들어서 주름살 하나 없이 가꿔진 얼굴은 매력이 없어요. 세월의 흔적까지도 자신의 매력으로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아요. ”

결혼 전에는 잘 나가는 패션모델이었다. 어릴 때는 182cm라는 큰 키 때문에 주위의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1987년 패션 모델로 데뷔한 뒤론 큰 키가 오히려 장점이 되고 남편과 만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내외 컬렉션에서 이신우, 이세이 미야케, 앙드레 꾸레주 등 세계의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 쇼를 가지며 톱모델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결혼은 모델업계에서 자연스럽게 ‘모델 은퇴’로 받아들여졌다.

“모델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결혼을 한 뒤론 자연스레 일이 없어졌어요. 외국에서는 나이 든 모델들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데, 아직 한국은 아니에요. 안타까운 점이죠.”

그러고 보니 머리에 두건을 두른 모습이 무척 감각적으로 여겨진다.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훨씬 젊게 보인다. “아줌마 메이크업에, 아줌마 머리하면 저도 딱 아줌마에요.”

프랑스인 남편 장 루이와의 만남도 일을 통해 이루어졌다. 1989년 서울 충무로의 한 에이전시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셔터‘를 누르는 사람과 ‘피사체’로 인연을 맺었다. “처음 본 순간, 선한 인상을 풍기는 그 남자가 아주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는 최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온통 그 남자의 얼굴만 떠올랐다”고 한다.


열정으로 하나 된 부부

두 사람은 일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분방한 사고를 지닌 서로에게 무작정 끌리면서 1992년 결혼했다. 3년간의 동거생활까지 합쳐서 벌써 13년째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그 동안 도쿄, 방콕, 홍콩, 파리 등을 오가며 살았다.

그 사이에 아들 이구름(9ㆍ아이가 스스로 지은 한국 이름), 딸 릴라(3ㆍ불어로 라일락이라는 뜻)도 태어났다. “마음이 아주 따뜻하지만 고집도 센 프랑스 남자와 살고 있다”는 최씨. 한때 남편과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인생의 전부를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지 확신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아기가 울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아주고 달래주기에 바쁘잖아요. 근데 루이는 ‘아기가 우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냉담하게 대하는 거에요. 아니 아기가 뭘 안다고 그러는지 섭섭했죠.”

언어의 벽도 컸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도 부부의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때 ‘다름’의 차이를 절감한다. 그래서 아들 이구름과 딸 릴라에게는 항상 한국말로 얘기를 주고 받는다. “루이에게는 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을 아들에게는 다 할 수 있어요. 언제나 엄마의 든든한 ‘대변자’가 되어주죠.”

그래도 최씨는 개방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남편 장 루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큰 행운임을 잘 안다. “음식을 못 하는 아내를 구박하지 않고 스스로 요리를 다 맡아서 하고, 아이들 교육까지 섬세하게 챙겨주는 자상한 남편”이라며 “시집 잘 간 것 같다”고 웃는다.

자유와 변화에 대한 남다른 갈망도 이들 부부의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1998년 서울 이태원에 정착, ‘아뜰리에 고구려’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착실하게 살았던 이들은 일상에 지쳐가면서 ‘방랑기질’이 슬슬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루이와 나는 일에 미쳐 살았어요. 잠자리에 들어서도 우리의 화제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패션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한국의 패션업계는 우리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한국인 고유의 것을 만들어 보자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외국 잡지를 쉽게 모방하려고만 했어요. 일에 지쳐가면서 지금 떠나지 않으면 다시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문에 여행을 하게 된 거예요.”


남편에게 한국의 美 보여줄 것

최씨의 고향 서울에서 장 루이의 고향인 프랑스 파리까지 여행 일정을 잡고 1,005만원짜리 중고버스를 개조해 캠핑카로 만들었다. 2001년 8월 30일, 인천항에서 중국 다롄항으로 향하는 페리호에 그 캠핑카를 실으면서 이들의 318일간의 여행은 시작된다. 두 아이는 물론, 애견 ‘꼬꼿’도 함께였다.

이들은 여행길에 ‘뷰티 프로젝트’라는 사진 작업도 병행했다. 중앙아시아 지역 다양한 여인들의 ‘메이크업’한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주어 기쁨을 주기도 했다.

오지에서 문명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최씨는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것, 단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불쌍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은 정작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어요. 나는 그들 앞에서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다시금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최씨는 조만간 남편에게 한국의 숨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나라의 외딴 섬과 산골 마을로 가족여행을 떠날 생각이라고 한다. “삶에는 늘 위험과 실패가 동반되게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삶이란 따분하고 무력할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도전 정신이 참 값지게 느껴졌다.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 1ㆍ2

이태원에서 스튜디오를 경영하던 최미애ㆍ장 루이 볼프 부부는 2001년 8월, 전 재산을 처분해 돌연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여행도 그냥 여행이 아니다. 중고버스를 타고 오지를 여행하는 말 그대로 ‘모험’의 질주다.

게다가 어른들도 힘든 여행길에 여덟 살난 아들 이구름과 두 살이 채 안된 딸 릴라, 몸무게 45kg에 달하는 애견 꼬꼿까지 데리고 간 만만찮은 여정이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 같은 모험의 결행 이유다.

이들 가족의 별난 세계여행이 최근 두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1ㆍ2’(자인 출판)다.

당초 이들의 여행 계획은 부인의 고향인 서울에서 남편의 고향인 파리까지 가는 편도 여행이었다. 먼 나라 사람끼리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만큼 각자의 고향을 오가는 여행은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파리에서 마음을 바꾸어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버스를 타고 여행하겠다는 대단한 결심을 한다. 결국 이들의 여정은 프랑스-터키-이란-파키스탄-인도-네팔-티베트-중국으로 이어진다. 한국에 무사히 도착한 것은 2002년 7월, 꼬박 318일에 걸친 여행이었다. 1권은 서울-파리 구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2권은 파리-서울 구간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들의 여행은 차라리‘고행’이었다.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어린 딸까지 온 가족이 1년 가까이 길 위에서 살았다. 부부는 불 같은 싸움도 벌이고, 죽을 고비도 수 차례 넘겼다. 보드카에 취한 남자들의 이유 없는 공격에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부패한 경찰과 맞닥뜨리며 분노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도중에 여행 경비가 완전히 바닥나는 바람에 네팔에서는 온 가족이 꼬박 4일 동안 라면만 먹으며 버티기도 했다. 최씨는 “자기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을 한다 싶어 눈물을 흘리며 라면을 끓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문명에 때묻지 않은 오지의 현지인들을 만나는 기쁨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다. 특히 티베트 사람들의 가난 속에서 가족은 오히려 삶의 희망을 느꼈다. “물질적으로 궁핍하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가치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이들도 험난한 자연 속에서 늘 무언가에 도전하는 정신을 조금씩 배워간다.

이들 가족의 여행은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다. 여행지의 이국적인 풍물 외에도 이 가족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유로운 삶에 대해 눈여겨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사막의 전경과 귀여운 아이들 모습을 담은 남편 장 루이의 사진은 이 여행기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2002/12/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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