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윌리엄 사파이어의 남북한 보기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인 에릭 알터만은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를 ‘워싱턴 최고의 논객’, ‘미국 논객 왕국의 왕’이라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말에 대해’를 쓰고 있는 사파이어는 정치용어의 어원을 밝힌 ‘정치용어 사전’의 저자 이기도 하다. 이 ‘사전’에는 박동선 사건을 ‘코리아 게이트’라고 그가 명명 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정치지도자의 주요 덕목인 결단을 내리는 행위를 그는 ‘나는 한국에 간다’(I shall go to Korea)로 표현하고 있다. 1951년 아이젠하워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중국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전선에 곧바로 날아가 전쟁을 해결 하겠다는 연설을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이런 사파이어가 12월 26일자 ‘북한:중국이 낳은 아이’라는 칼럼을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한국에 그다운 경고를 보냈다.

먼저 한국과 일본의 경우 북한이 핵 제조를 시인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햇볕정책이란 엉성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도 북한의 핵 보유와 확산이 큰 문제가 아니란 듯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50년간 한국의 자유를 지켜온 미국은 클린턴의 포용정책을 답습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되었는데도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따졌다.

사파이어는 목소리를 높였다. “첫째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철수해야 한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며 100만명이 넘는 북한군이 침공할 남한을 방어해야 하는 인질이 아니다. 우리는 남의 나라를 지키기 전에 우리나라를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방어 해야 한다.”

그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후진타오는 이웃인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과 미사일이 워싱턴이나 도쿄나 서울만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다. 그 미사일이 북경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알터만은 사파이어가 미국 논객 중 가장 많이 읽히고 돈을 잘 버는 칼럼니스트가 된 첫 번째 비결은 간단하고 명백하게 논지를 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칼럼은 일반적으로 극우 보수적이지만 알터만은 사파이어를 극우 입장에서 극우를 비판하는 온건보수주의자로 보고 있다.

그로부터 비판을 받은 극우인사는 레이건 대통령 재직시 CIA 국장이었던 윌리엄 케이시, 카터 정부 시절 예산국장이었던 버트 랜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등이 있다.

그는 칼럼니스트이면서 추적기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처럼 취재하며 칼럼을 쓴다. 1973년 닉슨의 연설문 작성자에서 스스로 물러난뒤 ‘백악관 시절’이란 책을 출간하려 했을 때 출판사는 사파이어의 글이 형편없다고 핀잔을 주었을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뉴욕 타임스 발행인이었던 펀치 설즈버거는 그를 칼럼니스트로 채용했고 2년 계약이 끝날무렵 “재주가 별로”라며 재계약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때 사파이어는 고개를 숙인 채 앞에 놓인 전화기를 쳐다봤다. “바로 이거다. 워싱턴에 내가 아는 사람들을 전화로 취재해 그걸 칼럼에 쓰자. 그럼 칼럼은 살아 숨쉴 것이다.”

그의 칼럼에는 철학이나 논리나 주장보다 사실이 있고 생활이 있다.

이제 그는 북한과 이를 상속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 한국의 노무현 당선자를 그의 칼럼에 사용할 취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에게 북한은 전체주의의 공산주의 국가이며 지도자 김 위원장은 ‘비이성적인 전제자’다. 또 그는 노무현 당선자의 성인 ‘노’를 ‘Rho’라고 칼럼에 표기하면서도 노 당선자를 ‘No’라고 발음하며 ‘클린턴의 포용정책 답습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알터만은 미국의 언론이 ‘논객의 언론’이라며 지금 미국은 윌터리프먼, 제임스 레스턴에 이어 사파이어의 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가 미국의 논평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되려면 남과 북의 지도자들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갖추어져야 할 것 같다. 이는 평화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1/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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